변화를 위한 도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by 낮별

우체국에 다녀왔다. 우체국까지 걸어가면서 마지막으로 우체국에 가본 적이 언제였나 떠올려봤다. 3년 전, 큰 아이 입대하고 처음 몇 번 이것저것 필요할 만한 것들을 사서 보내주느라 가봤었구나. 뭘 사서 보냈는지 까맣게 잊어버린 걸 보면 딱히 없어도 될 것들을 굳이 사서 보냈었나 싶다.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 보고 싶은 마음, 어떻게 지내나 궁금함, 택배를 꾸리면서 느꼈던 내 마음만 또렷이 기억나는 걸 보면 군대 보낸 아들을 둔 엄마의 애타는 마음을 보낸 셈이다.


우리 동네에 있는 우편취급소는 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다. 지하주차장을 통해 후문 밖으로 나섰을 때, 코끝에 훅 와닿는 달콤한 향기를 느꼈다. 그것을 느낌과 동시에 내 뒤에 따라 나오던 젊은 여자 둘이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아, 아카시아 꽃향기다!” 실은 내가 먼저 내지른 탄성이기도 했다. 소리 없이. 사방에 아카시아 꽃향기가 진동하는 5월이다. 올해 유난히 꽃향기가 진하다. 코끝에 맴도는 향기와 함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우편취급소에는 방문객은 하나도 없이 직원 셋이 노닥거리고 있었다. 내가 3년 만에 방문했듯 요즘 직접 우체국을 찾을 일이 별로 없어지긴 했나 보다. 도어투도어 택배 시스템에 더해 동네 편의점에서도 택배 접수가 가능하고, 어지간한 일은 온라인으로 다 처리해 버리니 외국에 택배를 보내거나 등기우편을 접수하는 일 등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체국을 직접 찾을 필요가 없어졌다. 하릴없이 노닥거리던 직원들은 내가 입장하자마자 수다를 멈췄고 그들의 시선은 일제히 나를 향했다. 공기 중에 숨 막히는 정적과 한가한 무료함이 뒤섞여서 여기서 일하다가는 서로 수다라도 떨지 않으면 숨 막혀 죽거나 심심해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 갔다. 번호표 뽑는 기계가 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기 인원 0명인 상태로 내가 번호표를 뽑기 무섭게 나를 호출했다.


“둘 다 등기우편으로 보내주세요.” “빠른 등기로 보내드리면 될까요?” 빠르면 얼마나 빠를까 궁금해하면서 그러라고 했다. 대학원 두 곳에 입학원서를 보냈다. 이건 진짜 내 인생에서 엄청난 사건이다. 그동안 마음만 있었지 쉽사리 시도해 볼 생각을 못 했던 일이다. 너무 바쁘게 일하고 있어서, 경제적으로 부담돼서, 나이가 많아서, 아이가 어려서 이런 등등의 핑계로 미루고 혹은 외면했던 일이다. 여전히 경제적으로 부담되고 심지어 나이는 더 많아졌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많아졌고 아이가 좀 자랐다는 점 때문에 용기를 낸 건 아니다. 이렇게 계속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다가는 나에 대한 환멸감으로 제대로 살 수 없을 거라는 위기를 느꼈다.


일을 그만두고 지난 10여 년간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공부하고 책 읽는 삶을 지속해 왔다. 그렇게 하다 보면 뭔가 길이 보이겠지 싶었다. 그 시간도 분명 의미는 있었다. 때론 즐겁고 보람되기도 했다. 하지만 늘 제자리였다. 앞으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제자리에서 머문 채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틈에 그들과 똑같이 섞여 있었다. 그러니까 대학원 지원을 결정한 나의 선택은 그들의 무리에서 한 발 나가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내 삶이 조금은 달라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두 곳의 대학원은 각각 다른 분야이다. 하나는 상담심리대학원, 하나는 문예창작대학원. 이렇게 완전히 다른 분야를 지원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자면 나는 내가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이고 정성을 들이고 고민했던 그 지난한 과정을 다 설명해야 하는데 그 과정은 너무 힘겨워서 글로 남기고자 복기하는 것조차 버겁다.


참으로 오랜만에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나는 나의 삶을 되돌아봤다. 자기소개서의 목적은 당신들의 기관에 적합한 인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이러니 나를 뽑아야 하지 않겠냐고 한껏 나를 자랑질하며 뽐내야 할 텐데, 별 것 없는 경력과 긴 공백기를 애써 변명하고 나니 한없이 초라한 글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공들여 화장을 해도 예뻐지지 않는 얼굴 같았다.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는 작은 동기를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이 도전에 의미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도전의 결과가 어떤 방향으로 나를 이끌게 될지 알 수는 없다. 그저 삶이 조금 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 신체의 퇴화와 통증에 그만 집중하고, 그래서 그만 불안해하고, 마음과 노력을 쏟아도 좋을 가치 있는 다른 것에 에너지를 쏟으며 살고 싶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진동하는 5월, 이 도전을 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분히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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