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는지 질문을 하려면 그 질문에 따르는 대답에 일말의 책임감을 가져야만 한다. 그래서 힘들게 지내고 있을 것을 짐작하면서도 어떻게 지내는지 차마 물어보기가 힘들다. 죽을 지경이라는 대답을 듣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대화를 마무리할 자신이 없다. 많이 아픈 사람에게도 요즘 어떠한지 안부를 물어볼 용기가 없다. 내 힘겨움에 더해 타인의 힘겨움까지 얹기가 싫기도 했다. 각자 자신의 힘겨움을 감당하며 사는 거지 뭐, 이렇게 정당화하며 내 고통을 타인에게 전해주는 것도, 타인의 고통을 내 삶 안으로 들여놓는 것도 꺼려진다.
잘 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연락하기가 힘들다. 바쁠 것 같고, 나의 연락 따위는 그다지 반가워하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내가 먼저 그들에게 선을 긋는 선제적 방어 자세 탓이다. 이어질 인연이라면 한가한 어느 날 내 생각이 문득 나겠지, 생각에서 그치고 말 인연이 될지, 전화번호 목록을 뒤져 안부를 전하는 수고를 할 인연이 될지 그건 그들에게 넘겨두자. 이렇게 인연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해 버리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점점 혼자 놀기에 익숙해진다. 그래도 가끔 사람이 그립기도 하다. 그 순간을 외로움이 찾아오는 순간이라고 여긴다. 외로움이 찾아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외로움은 반가운 손님이다. 외로움 덕분에 사람들의 안부를 진심으로 반갑게 맞이한다. 아직은 외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안심이다.
어제 너무 오랜만에 친구의 안부전화를 받고 마음이 조금 설레고, 고맙기도 했다. 마음이 많이 아팠던 친구다. 잘 지내고 있냐는 안부를 물을 수 없어서, 내 연락을 피하는 것 같아 몇 달을 내버려 뒀었다. 조금 회복된 듯 씩씩한 목소리로 내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애쓰지 않아도 만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있다.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찾아오면 나도 전화번호 목록을 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