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처받기 쉬운 체질인 것인지도
어떤 일을 마음에 오래 두는 편이 아니다. 누군가와 어떤 일로 감정이 상해 대치하는 시간이 길게 이어졌더라도 시간이 오래 지나고 나면 그때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건지 세세한 정황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끔 나조차 다 잊어버린 어떤 사건을 실제 그 일에 연루되지 않고 옆에서 보기만 한 사람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 마치 그 장면을 녹화해 둔 사람 마냥 경이로운 기억력으로 묘사하여 다시 한번 그 힘든 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가 있다면, 그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의 뇌 속에 녹화된 테이프를 마구 헝클어트리고 싶어진다. 잊을 건 잊자. 특히나 남의 일이라면. 어쩌면 그런 놀라운 기억력을 지닌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불확실한 기억을 가지고 대충 뭉개려는 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잘 잊고 사는 나에게도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잊히지 않는 타인의 말이 있다. 주로 그 말을 듣는 순간 날카로운 면도칼에 베인 것 같은 쓰라림을 느꼈을 때, 그런데 말한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웃는 얼굴로 다음 대화를 이어나가니 베인 쓰라림을 혼자 급히 수습하고 말았을 때, 그리하여 그 쓰라림은 면도칼을 휘두른 이에게 아무런 사과도 받을 수 없이 그저 내 몫으로 던져졌을 때, 결국 그것은 두고두고 나 자신을 자책하게 하는 시간으로 이어지곤 했다.
큰 아이를 출산한 후 아이를 시댁에 데려다 놓고 다니던 회사에 복직했을 때였다. 같은 부서 팀장은 자신의 사생활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주로 똑똑하고 예쁜 두 딸에 대한 자랑이었다. 그는 전업주부로 아이들 육아와 교육에 전념하고 있는 자신의 아내에 대한 프라이드도 대단했다.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나는 그의 완벽한 가정에 대한 경탄과 부러움을 적당한 추임새를 넣어가며 표현하곤 했다. 그건 내가 결혼 전부터 잘해오던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일을 하러 나와 있다는 것을 잠시 망각했던 그의 말은 어느 날 나에게 날카롭게 꽂혀버렸다. 여느 날처럼 그저 시답잖은 이야기 끝이었다. 그의 말에 아무런 악의는 없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까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해. 엄마가 안 키우는 애들은 뭐든 문제가 있더라. 그래서 우리 애들은 맞벌이하는 집 애들이랑은 못 어울리게 해.”
그의 얼굴에는 대한민국 표준이자 중산층 4인 가정을 혼자 힘으로 벌어 이끌어 간다는 자부심이 잔뜩 어려있었다.
다음 장면은 이 장면에서 십 년 정도 시간이 흐른 후였다. 큰애를 다 키워놓고 뒤늦게 둘째를 낳아 어린이집 영아반에 보내던 무렵이었다. 집 근처에서 작은 학원을 운영하던 시기였다. 우리 집 근처에 이사 오게 된 지인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점심을 함께했다. 그날도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허둥지둥 약속 장소에 나갔다. 지인은 그때 임신 중이었는데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다짐했다.
“저는 박사 학위까지 있지만 제 애는 제가 직접 키우려고 해요. 아이 육아보다 더 중요한 건 없는 것 같아요.”
박사는커녕 석사학위도 없이 꼴랑 학사 학위 하나 가지고 일을 하겠다고 육아를 팽개치고 나와 있는 나는 또 마음에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 그 말을 하던 만삭 임산부의 결의에 가득 찬 표정, 웃음기 가득하던 그 눈빛,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해맑던 얼굴이 여전히 선명하다.
다시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났다. 일 년에 한 두어 번 애써 시간을 맞춰 만나는 친구들이었다. 내가 일하며 아이를 키우느라 전전긍긍했던 지난 시간에 그들은 아이들을 키우는 데 전념했다가 뒤늦게 이런저런 일을 시작하여 현재 나를 제외한 모두가 사회인이다. 나를 잊은 걸까? 한 친구가 쉰을 앞둔 나이에도 사회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본인들에게 무척 자부심이 느껴졌던지 불쑥 이렇게 말했다.
“야, 우리 나이엔 일이 있어야 해. 안 그러면 빨리 늙고 인생이 더 우울해져.”
30년 넘게 알아온 절친이라 그 친구의 됨됨이를 안다. 절대 누군가 아프게 하려고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워킹맘으로 살던 그때도, 전업맘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도 나는 이런저런 말에 쉽게 상처받고 그 말을 곱씹으며 자책하는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그들의 말이 아니었다. 그들의 말을 듣고 생겨난 내 감정이 문제였다. 내 감정은 전적으로 내가 수습해야 한다. 내 감정은 내 책임이다.
누구도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려고 작정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들의 말을 다시 곱씹어보니, 그들의 말은 오히려 그들 자신을 위해 하는 위로에 가깝다는 걸 알겠다. 나 역시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려고 작정하고 어떤 말을 해 본 기억이 없다. 타인의 의도를 왜곡한 건 나 자신이다.
타인의 말이 아팠다면, 대체로 그 말이 나의 아픈 곳을 건드려서이다. 그건 내 허약한 자존감이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불안이기도 하다. 20년 전에, 10년 전에, 일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었다면, 흔들릴 수 없이 확고한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면 그런 말 따위에는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허투루 지금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았더라면 친구의 말도 되새김 없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어떤 말이 아팠다면 나의 상태를 점검해 봐야 한다. 혹, 상대의 말이 정말 배려가 없다 여겨진다면, 배려 없음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문제이니 내가 고민할 일이 아니다.
이 달콤한 시간은 워킹맘으로 살아가던 과거에 얼마나 꿈꿔왔던 시간인가?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 나의 일상이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나의 마음이 날마다 시간의 세례를 받아 조금씩 더 단단해지도록. 누가 뭐라고 하건 흔들리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