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한강, 문학동네(2011)
칼은 일반적으로 단절, 적의, 갈등 같은 의미들을 떠오르게 한다.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1899~1986)의 유언으로 시작한 《희랍어 시간》(2011)에서 ‘칼’은 인간과 인간이, 인간과 세계가 단절되어 온전히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다.
주인공 남자는 유전적인 질병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15살에 독일로 이민 갔다가 17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아카데미에서 희랍어를 가르친다. 그와 세계 사이엔 실명(失明)이라는 칼이 놓여 있다. 주인공 여자는 17살에 말을 잃었다가 낯선 언어인 불어 ‘비블리오떼끄’를 발음하게 되면서 다시 말을 하게 된다. 20년 후 갑자기 다시 말을 할 수 없게 되자 17살 때처럼 낯선 언어를 배움으로써 다시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희랍어 수업을 듣는다. 여자와 세계 사이엔 실어(失語)라는 칼이 놓여 있다.
희랍어는 남자와 여자를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그러나 희랍어는 고대의 언어로 이미 죽은 언어, 소통할 수 있는 언어적 기능을 갖지 못하는 언어다. 그 희랍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로 남자와 여자의 만남은 이뤄진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 새를 내보내려다 다친 남자를 여자가 돕게 되면서 둘의 관계는 시작되며 소설은 끝이 난다. 어둠과 침묵 속에서 여자가 남자의 손바닥에 글씨를 쓰는 것은 고독한 두 존재가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가장 따뜻한 장면이다.
우리가 보는 것이 과연 진짜일까? 우리의 언어가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떠한 감각과 언어로도 세계와 타인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소통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길은 없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이해하고 연결되려고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 때때로 우리는 외로움과 고독과 절망 가운데 한순간 빛나는 이해의 순간을 선물 받기도 한다. 그 빛을 위안 삼아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소설 마지막에서 남자와 여자의 몸짓은 그런 의미로 보인다.
《희랍어 시간》의 문장은 시적이다. 함축과 여백, 사유가 가득하다. 밀도 높은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깊은 감정 때문에 책장을 빨리 넘길 수 없다. 단단하고 건조한 논리의 언어가 아닌 감정과 사유가 결합된 문학적 언어가 보여 주는 세계는 더 아프고 더 아름답다. 세계와 우리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칼을 치울 수는 없어도 수용하며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한강(1970~ ) 작가는 2024년 대한민국 작가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