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의 문장으로 보여준 작가의 의지

-《칼의 노래》, 김훈

by 김선우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 작가는 《칼의 노래》(2001) 첫 문장을 처음에는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로 썼다가 고심한 끝에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바꿨다고 한다. 조사 한 글자가 바뀌었을 뿐인데 작가는 두 문장이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했다. ‘꽃이 피었다’는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것이고, ‘꽃은 피었다’는 물리적 사실에다 그것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주관적 정서가 들어가 있는 것이라고.


언어를 부리는 일에 치열한 작가의 태도가 드러나는 일화다. 주격조사 ‘이’는 ‘산이 높다’ ‘눈이 온다’에서처럼 앞말이 서술어와 호응하는 주어임을 나타낼 뿐이다. 반면에 보조사 ‘은’은 어떤 대상이 다른 것과 대조되고(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문장 속에서 어떤 대상이 화제임을 나타내고(이 책은 내 동생이 빌려왔다) 강조(너에게도 잘못은 있다)의 뜻을 나타낸다. 보조사 ‘은’을 쓰면 주관적 정서, 의도가 드러난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되는 첫 문장은 《칼의 노래》에서 주관을 배제하고 사실만 남은 문장을 쓰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보여준다. 건조하고 간결한 문장은 아무리 참혹한 현실이라도 사실에 입각해 현실을 그려내겠다는 작가 태도의 반영이다. 철저히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사실만을 기록한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의 《난중일기》와 비슷하다. 수많은 승전에도 불구하고 파직되어 혹독한 신문을 받은 후 백의종군의 명령을 받고 풀려난 날의 일기에서조차 이순신은 억울함, 분노, 슬픔 따위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겨레 신문》(2024. 6. 21.)에서

《칼의 노래》는 성웅 이순신의 서사가 아닌 개인의 내면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면서도 감정의 과잉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날의 날씨, 먹는 일, 한 일, 있었던 일을 세세하게 서술한다. 그런 문장들은 전쟁이란 폭력의 세계에서 생(生)과 사(死)의 경계에 선 이순신이 백성과 가족, 자신의 목숨을 두고 세계와 오롯이 대결하는 인간적 고뇌를 더 잘 드러낸다. 눈부신 봄날에 이별하는 연인을 목놓아 울게 하지 않고 오히려 싱그런 풀빛과 흩날리는 꽃잎만을 묘사할 때 느껴지는 슬픔처럼.


《칼의 노래》는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직을 박탈당한 1597년부터 노량해전에서 총탄에 맞고 전사한 1598년까지 약 2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01년 동인문학상을 받았고 심사위원들은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는 평을 했다. 출간 6년 7개월 만에 100만 부 이상 팔렸고 독일, 일본, 대만 등에 번역 출간되었다.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가 20세기 이후 가장 뛰어난 문학작품만을 선정 출판하는 ‘전세계 문학총서’로도 번역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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