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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스키 Dec 22. 2021

하얀 불청객

“엄마! 흰머리 뽑아줘.” 


오 년 전쯤부터 정수리 오른편에서 새치가 하나둘 솟아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 흰머리가 생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당시에는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느닷없이 찾아온 하얀 불청객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너무 많이 쌓였다며 흰머리 원인을 일 탓으로 돌리고, 조금 쉬면 다시 없어질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웬걸. 일과는 전혀 상관없이 흰머리는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해 나갔고, 끝내 머리 곳곳을 장악해 버렸다. 이제는 밖에서 머리를 넘기는 행동조차 조심해야 할 정도다. 가르마를 바꾸면 그 아래로 새싹같이 짧은 흰머리가 정수리뿐만 아니라 옆머리, 윗머리, 뒷머리 사방에서 ‘까꿍’ 하고 얼굴을 내미니까 말이다.


'으… 끔찍해.'


흰머리를 향한 나의 마음의 소리다. 노화의 상징인 새치에 정복당한 머리를 볼 때마다 자기 관리에 소홀했나 싶어 실망스럽기도 하고, 짜증이 나기도 해서 흰머리를 발견하면 정말 참을 수가 없다. 그 즉시 쏙 뽑아내야 직성이 풀린다. 혼자서 하기 힘들 때는 족집게를 들고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그때마다 백발이 성성한 엄마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반응한다.


“이 나이에 자식 흰머리를 뽑고 앉았다니 나 원 참.”


그러는 것도 잠시, 바로 돋보기를 끼고 족집게를 건네받아 전문가 포스를 풍기며 못된 흰머리를 뿌리째 쫓아낸다. 우리는 흰머리 박멸 작업을 할 때마다 '백발의 부모가 자식의 흰머리를 뽑는 신세'가 불쌍한지. 아니면 '어린 나이에 남들보다 빨리 흰머리가 나는 자식'이 더 불쌍한지 같은 화제로 끝없는 설전을 벌인다. 언제나 결론은 없다. 확실한 한 가지는 엄마도 나처럼 아직 나의 흰머리를 감당할 준비가 안 되어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툴툴대면서도 열심히 뽑아주는 거 아니겠는가. 이 웃픈 광경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펼쳐지는데 그 덕에 가르마만 잘 유지하면 다행히도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반복해서 새치를 없애면 나중에 그 자리에 머리카락이 더는 자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많은 터라, 계속 뽑아도 괜찮을지 걱정이다. 그렇다고 뾰족한 해결법도 없는데 그냥 방치했다가는 <겨울왕국> 엘사처럼 머리가 세 버릴 수도 있다.


나의 고민은 새치를 나의 일부로 인정하는 날 해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나는 내일도 한 손에는 족집게를 들고, 거울 속에 비친 하얀 불청객을 보며 갈등하고 있을 게 뻔하다.

‘이걸 죽여? 살려?'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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