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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쉐르 Sep 25. 2024

내가 뭘 하고 있었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주의와 정보 처리의 어려움으로 인해 기억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가끔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다. 문득 자리에 앉아보면 내 앞에 놓인 책은 펴져 있지만 나는 이미 딴생각에 빠져 있다. 분명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내가 왜 여기 앉아 있는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나는 언제나 끝없이 흘러가는 생각의 파도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헤매는 느낌이다.


ADHD를 가진 사람에게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이란 큰 도전 과제이다. 작업 기억은 뇌가 즉시 처리해야 할 정보를 잠시 유지하는 능력인데 나처럼 ADHD가 있는 사람들은 이 능력이 약하다. 방금 들었던 지시사항도 금방 잊어버리기 일쑤고 대화를 하다 보면 그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정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헷갈릴 때가 있다.


주말 아침, 책상에 앉아 브런치 글을 쓰려고 마음먹었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나와서 팽이를 돌리며 놀기 시작했고 나는 그 소리에 정신을 빼앗겼다. 아이들에게 "조용히 좀 놀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후 잠깐 뉴스를 읽다가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고 내가 왜 책상 앞에 앉아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런 경험들은 일상 속에 아주 많다. 예를 들어, 비 오는 날 우산을 가져갔다는 사실조차 잊고 버스에 우산을 두고 내린다. 우산을 가져온 기억이 나지 않으니 뛰어가면서 내가 무엇을 빠뜨렸는지 생각해 보기도 한다. 또 한 번은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다가 멋진 풍경을 보고 그에 집중한 나머지 내가 운전 중이라는 사실을 깜박한 적도 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가 많다.


무엇을 하려 했는지 자주 잊어버리다 보니 여러 일을 동시에 시도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끝내지 못할 때가 많다. 해야 할 일은 점점 쌓이지만 끝내지 못한 일도 그만큼 늘어난다. 마치 손에 잡히지 않는 모래알처럼 집중과 계획은 쉽게 흩어져 버린다. 메모를 해놔도 정작 메모지를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기 일쑤다.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방과의 대화는 전에 말한 내용을 기억해야 원활하게 이어 나갈 수 있는데 나는 상대방이 말한 내용을 종종 잊어버린다. 아내가 "그거 내가 아까 말한 거잖아"라고 할 때 내가 무엇을 들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한다. 나는 아침마다 지하 주차장까지 몇 번씩 왔다 갔다 한다. 자동차 키나 휴대폰을 항상 잊고 오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물건을 자주 잃어버렸던 습관은 여전하다.


하지만 약을 먹으면 이런 현상들이 깔끔하게 사라진다. 대화할 때는 머릿속에서 할 말들이 쭉 나열되는 느낌이 들어 더 논리적으로 대화를 있어나갈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의 이야기도 잘 기억하게 되어 흔히 말하는 '티키타카'가 가능해진다. 해야 할 일을 메모지에 적어두면 이제는 그 메모를 잘 보관하고 계획대로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물건도 잊어버리지 않고 잘 챙기게 되었다.


ADHD 환자는 집중할 때 '계획에 의한 집중(Top-Down)'보다는 '자극에 의한 집중(Bottom-Up)'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즉, 정보를 단기적으로 유지하고 처리하는 데 있어서 큰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감각 기억(Sensory Memory)**은 외부 자극을 짧게 저장하며,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잊힌다.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은 주의를 기울인 정보가 약 5~15초 동안 유지되며, 반복하지 않으면 금방 사라진다. ADHD 환자들은 이 단계에서 특히 어려움을 겪는다.

**장기 기억(Long-Term Memory)**은 반복과 정교한 처리 과정을 통해 정보가 영구적으로 저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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