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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마지막날 반복되는 소동과 소란

일주일 같은 하루

by 몽쉐르 Mar 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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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떠난 느린 시간들(17화)


ATM을 찾아 헤매다

어제 돈을 적게 찾아서 오늘 쇼핑할 현금이 필요했다. 구글 지도로 ATM을 검색해보니 근처에 몇 군데 표시되었지만, 막상 가보면 아무것도 없는 곳이 태반이었다. 아내에게 가족들의 이동을 맡기고 나는 홀로 ATM을 찾아다녔다.

더운 날씨 속에서 30분 넘게 뛰어다녔다. 이마에 맺힌 땀이 흐르고, 등에선 땀이 흠뻑 배어 나왔다. 낮에 구찌터널을 다녀온 탓인지 온몸이 무겁고 피로가 쌓여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다리가 뻑뻑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전에 반드시 현금을 찾아야 했다.   

  

벤탄 시장으로 가는 길

브런치 글 이미지 1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콘 마트에 들렀지만, 삼촌과 이모는 살 만한 물건이 없다고 하셨다. 결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벤탄 시장으로 가기로 했다.

택시를 타려고 했지만, 퇴근시간이라 도로는 차들로 가득 막혀 있었고, 빈 택시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치는 것보다 걷는 것이 낫겠다 싶어 시장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이미 다들 피곤한 몸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벤탄 시장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나는 ATM을 찾아 다녔다. 구글 지도에서 VP Bank가 표시된 곳을 찾아가 봤지만, 또다시 허탕이었다. 지도엔 존재하지만, 현실에선 사라진 ATM들. 무더운 날씨와 끝없는 수색에 점점 지쳐갔다. 결국, 확실한 ATM이 있는 곳까지 가서 돈을 찾은 후, 벤탄 시장으로 향했다.     


흥정의 재미

브런치 글 이미지 2

가족들은 이미 시장에 도착해 쇼핑을 하고 있었다. 이모와 삼촌은 건망고를 비롯한 여러 물건을 흥정하고 있었지만, 가격 차이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능숙한 듯 가격을 제시했고, 그제야 쉽게 흥정이 마무리되었다. 마치 베트남에서 여러 번 쇼핑해본 사람처럼 행동하니 더 수월했다.

이후에도 삼촌과 이모가 여러 가지 물건을 살 때마다 흥정을 도왔다. 시간이 부족해 조급한 마음이 들었지만, 최대한 원하는 가격에 맞춰드리고 싶었다. 일부는 내가 예상한 가격보다 비싸게 샀지만, 시간과 체력을 고려하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아쉬웠던 건 경연 삼촌이 모자를 구입할 때였다. 급한 마음에 충분히 5만 동에도 살 수 있는 모자를 15만 동에 구매한 사실이였다. 그래도 삼촌은 만족해하셨고, ‘저렴하게 잘 샀다’며 흐뭇해하셨다. 가격보다 중요한 건 결국 마음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갑작스러운 실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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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은 밤 9시 25분 비행기로 다낭으로 이동해야 했다. 삼촌과 이모는 12시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서둘러 호텔로 가 짐을 챙겨야 했다.

여덟시가 되어 쇼핑이 끝나고 다 함께 모이기로 했지만, 외숙모가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은 외숙모께서 카페에 가서 쉬고 있다고 했지만, 문제는 정확한 위치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휴대폰 배터리가 없었던 외숙모는 가족들에게 카페 위치만 전했지만, 다들 쇼핑에 집중하느라 제대로 듣지 못했던 것이다.

모두 함께 찾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다른 가족들은 호텔에서 기다리게 하고, 외삼촌이 직접 찾으러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외숙모의 소식이 없었다. 초조해진 외삼촌은 혹시 화장실에 갔다가 길을 잃었거나, 심지어 납치된 것이 아닐까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침착하게 생각했다. 나라면 어디로 갔을까? 예상되는 카페를 찾아갔다. 그리고 한 카페 창가에서 문밖을 바라보고 있는 외숙모를 발견했다. 다행이었다.

외숙모를 모시고 호텔로 가는 길, 마침 영권 삼촌을 만났다. 삼촌은 화가 난 듯 "왜 말도 없이 사라지셨냐"고 했고, 외숙모는 "카페 위치를 미리 알려줬다"고 답하셨다. 분위기가 어색해질 것 같아 나는 "찾았으니 괜찮다"고 웃으며 중재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다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

서둘러 호텔로 가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도 삼촌과 이모께서 봉투를 건네셨다. "여행하는 동안 고생이 많았다"며 용돈을 챙겨주신 것이다. 조카 눈치 보느라 편히 쉬지도 못하셨을 텐데, 오히려 나를 챙겨주시는 마음에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공항으로 가는 그랩 택시 안에서야 겨우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얼굴과 등에 흐른 땀이 식으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 다 해결됐다."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놓았다.     

체크인을 하려니 1인당 7kg의 기내 수하물이 허용되었고, 20kg짜리 짐 두 개를 추가로 구매했었다. 한국에서는 짐을 개별적으로 측정했지만, 여기서는 여섯 명의 짐을 한 번에 측정했다. 초과된 무게를 조정했지만, 1~2kg 정도는 봐줄 줄 알았는데 인정사정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무게 제한을 초과하지 않았다.

발권 후 비행기 지연 문자가 왔다. 원래 9시 25분 비행기였으나 10시 40분으로 변경되었다. 급하게 공항에 왔던 것이 아쉽고 허탈했다. 미리 알았다면 좀 더 여유롭게 움직였을 텐데.

카페에 들러 시원한 음료를 마셨다. 하루 종일 흘린 땀 때문인지 물 한 병을 단숨에 마셨고, 커피 얼음을 와그작 씹어 먹으며 겨우 시원함을 느꼈다. 긴장이 풀리자 기진맥진해졌다.

그때 삼촌의 비행기도 지연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원래 12시 10분 비행기였지만, 1시 30분으로 늦춰졌다. 마사지가 끝난 삼촌과 이모는 너무 시원했다며 만족해하셨다.     


선물 소동

하지만 곧바로 문제가 또 발생했다. 다낭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경연 삼촌에게 전화가 왔다. 삼촌이 호치민 국제공항에 도착했는데, 마사지샵에 한국으로 가져갈 선물들을 두고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이미 비행기 탑승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직접 해결할 수 없었다. 대신 "내가 나중에 다시 호치민에 오면 찾아서 보내드리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삼촌은 당장 선물을 받고 싶어 하셨다.

나는 마사지샵과 직접 연락할 방법을 알려드렸다. 다행히 마사지샵 직원 중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분이 있어 소통이 가능했다. 비행기 이륙 전에 다시 확인하니, 마사지샵 직원이 한국으로 가져가 택배로 보내주기로 했다고 했다. 안심하며 탑승했는데, 활주로로 이동하는 도중 삼촌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다 해결된 줄 알았는데 또 나에게 방법이 없겠냐고 물으셨다. 순간 당황했지만, 영권 삼촌이 전화를 다시 걸어 "모든 게 해결되었으니 걱정 말라"고 하셨다.  

   

마침내 다낭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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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 활주로를 움직이는 동안 경연 삼촌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정말 괜찮은 거냐?" 나는 이미 모든 것이 해결되었음을 설명했고, 영권 삼촌이 다시 나서서 삼촌을 안심시켜 주셨다. 이제야 진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감았을 뿐인데, 어느새 다낭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들려왔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짐을 찾아 나왔고, 그랩을 불러 하루 묵을 호텔로 향했다.

그랩 기사님은 카카오톡 연락처를 주며 다낭에서 다른 곳으로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연락 달라고 하셨다. 가격도 저렴해 보였고, 다음 이동을 위해 한 번 이용해볼까 싶었다.

한시장 근처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한 피곤함. 그리고 깊은 안도감. 이렇게 긴 하루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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