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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맨데이 Feb 28. 2024

안녕, 나의 머리카락

지루함이 아닌 풍족함으로

일단 내 머리 스타일의 역사를 말해보자면 인생의 반 이상이 단발이었다. 물론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학교가 좀 엄격했어서 나의 선택이 아닌 타의로 단발이긴 했지만(혹시 오해하지는 마시라 나이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거기에 불만은 없었다. 나 또한 단발이 편했으니...


대학교에 들어가고 꾸미기 시작했을 즈음 모든 여대생들이 그렇듯 머리를 기르고 파마도 하고 탈색도 좀 하고 염색도 하고 싶었다. 염색하고 파마하는 게 뭐 그렇게 큰일인가? 고등학교라는 족쇄에서, 입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며 사회인이 되기 전 자유를 마음껏 누려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이런 자유는 개복치인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지루성 두피염이 처음 발병하면서부터 상태가 많이 좋아진 후에도 두피에 많은 신경이 갈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 겪은 일이 너무 끔찍했으므로, 그래서 염색이나 펌을 시도하는데 소극적이었다. 정말 하고 싶어 탈색을 도전했을 때도 두피에서 1cm를 띄워 시크릿 투톤으로 진행을 했다. 전체 탈색은 꿈도 못 꿨고 지금 와서는 다행히 이렇게 신경 쓴 덕분에 7년을 벌었다는 생각도 든다.


현재에 와서는 다시 지루성 두피염이 발병하고 2개월 만에 열심히 길렀던 머리를 잘라 결국 단발로 돌아왔다.  매일 약을 바르고 케어하고 찬바람으로 말리는 루틴이 추가되면서 도저히 긴 머리를 감당할 수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결국 나의 길었던 머리카락을 보냈다. 다시 긴 머리로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다른 사람들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 새삼 일상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돌아보는 요즘이다. 특히 요 몇 년 사이 회사를 다니고 주위를 둘러보며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집중이 되어있었고 금전적으로, 신체적으로 좋은 컨디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욕심이 앞서 있었다. 휴일 아침에 일어나 카페에 가서 고소한 커피 향을 맡으며 커피를 마시고 그에 곁들여 빵을 먹고, 햇살이 좋은 날에는 햇빛을 맡으며 거리를 거니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구경하고,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며 나를 발전시키는 이러한 일상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햇빛이 비치는 날에는 햇빛을 피해 가고 빵 없는 커피를 마시며 비가 내리는 날에는 간지러움에 괴로워하고 집중력을 잃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일상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반복되어 돌아오는 지루함으로 느낀다. 풍족해서 모자람이 없는 나날이지만 마음속에는 그 풍족함이 전달되지 않을 때 '지루함'과'결핍'이 자라난다. 그러나 '일상'이라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시간인 것일지도 모른다. 지루함은 반대로 부족함이 없는 단어임을 깨달으면 좀 더 우리의 일상을 건강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부재 속에서 이런 감사함을 느끼지 말고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마음을 좀 더 풍성하게 채우며 살아하는 나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개복치들에게 풍족함이 곁들길 바라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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