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credible Honeymoon>의 기획을 마치며
에밀 졸라의 <Pot Luck>을 읽은 지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워낙 어둡고 막장틱한(?) 작품이어서 그럴까. 아직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분위기를 환기하고, 팍팍한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조금 밝은 분위기의 작품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에디스 네스빗이라는 작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 위해 네이버와 구글에 열심히 검색했다. 국내에 출간된 그녀의 작품에는 『모래요정과 다섯 아이들』, 『기찻길의 아이들』, 『보물을 찾는 아이들』등이 있었다. 그녀는 '어린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판타지 소설'을 쓰고 있었다. 비록 힘들게 살아가지만 희망을 잃지 않는 아이들에게 꿈같은 미래를 선사하는 작품들이었다. 그때, 성인들에게도 밝고 희망찬 소설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성인이라고 해서 항상 어두운 작품만 읽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 중 성인을 타깃으로 잡은 소설을 찾아다녔고, 아마존 평점과 책 소개란을 통해 작품의 분위기를 가늠했다. 그녀는 어른과 아이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본 사람이었다는 것, 아동 문학을 집필할 때 현실적인 어린이들의 모습을 그려낸 작가라는 점을 유념하면서. 아마존과 해외 책 리뷰 사이트를 둘러본 뒤, 밝고 희망찬 미래를 지향하면서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소설, <The Incredible Honeymoon>을 기획하기로 결심했다.
빅토리아 시대를 풍미한 여류 작가들
네스빗은 1858년에 태어나 1924년에 사망한 작가로, 빅토리아 시대(1837-1901) 시대에 유년기와 청장년기를 보냈다. <The Incredible Honeymoon>은 빅토리아 여왕이 사망한 1916년에 출간되었으나 인생 대부분을 빅토리아 시대 때 보냈기 때문에 빅토리아 시대의 작가라고 봐도 된다고 생각한다.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했던 시기,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며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아시아, 아프리카에 거대한 식민지를 거느리고 전 세계의 돈을 끌어 모아 거대 자본을 축적한 덕택이었다. 모아 놓은 돈으로 금융개혁과 석탄 개발을 실시했고, 증기 기관의 발명과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화를 하기도 했다. 그 결과, 1인당 국민 소득과 인구수가 증가했고 참정권이 확대되면서 국민들의 권한이 커져갔다. 이때, 여성 인권도 같이 신장되었고, 샬롯 브론테,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같은 작가들이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당시 여성들은 교육과 사회생활에서 제약을 받았기 때문에, 그녀들이 출세하는 길은 부잣집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는 것뿐이었다. 제인 오스틴이나 샬롯 브론테 같은 여류 작가들의 작품도 '신데렐라 로맨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조지 엘리엇 같이 이러한 사회의 요구에 반기를 드는 작가들도 등장했다. 에디스 네스빗이 집필한 성인 소설도 주로 로맨스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여성의 자립이나 주체성을 강조한 경우가 많다. <The Incredible Honeymoon>의 캐서린도 아버지가 정해준 남자와 혼인을 거부한다. 그녀는 결혼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연애할 때는 남자가 마음에 안 들면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결혼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 에드워드와 '남매'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같이 여행을 떠난다([번역활동 1년째]번역으로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신혼여행, [번역활동 1년째]번역으로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가짜여행 참고). 집안의 권위자였던 아버지와 고모들의 말을 거역한 캐서린. 그녀의 행동을 보고, '가부장제에 대한 반기'라고 하면 너무 멀리 간 걸까?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비추지 못한 빈민들
하지만 네스빗은 이 시대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1인당 국민 소득이 증가하면서 전문직에 종사하고 메이드를 거느리는 국민들도 생겼으나, 상당수의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허덕이며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더구나 기계가 발전하면서 노동자들이 실직자로 전락했고, 런던 뒷골목에는 빈민촌이 형성되었다. 한쪽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스테이크를 썰어먹지만, 다른쪽은 빵 한 쪽도 먹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The Incredible Honeymoon>은 영국의 어두운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에드워드와 캐서린은 가짜 결혼식을 치른 뒤 그들에게 펼쳐질 미래를 상상한다. 그들은 나무 냄새가 흘러 나오는 집에서 돼지, 소, 칠면조, 오리 등을 키우며 두 사람이 오붓하게 저녘 식사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다가, 빵을 얻기 위해 두 사람을 쫓아오던 아이들을 떠올린다. 그 아이들은 평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다. 집에 있는 가구도 변변치 못하다. 캐서린은 그들은 좋은 가구를 사 줄 수 없을지 고민하지만, 에드워드는 좋은 가구라고 해 봤자 기계로 옛날 제품을 모방한 것밖에 없다고 하면서, '예술'이 사라진 현실을 지탄한다. 아마도 그는 기계로 인해 가구도, 사람도 공장의 부품이 되어버린 현실을 지탄하는 것 같다. 이들이 시골생활의 낭만을 추구한 이유도 이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시골이란 정말 낭만적이기만 할지 의문이 든다. 농부들은 지주의 착취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시로 몰려들었는데, 정작 도시로 인구가 몰려서 인건비가 낮아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베이컨주의자가 아니야
<The Incredible Honeymoon>을 보면, 에드워드와 캐서린은 셰익스피어 유적지에서 베이컨주의를 비판하기도 한다. 두 사람은 왜 베이컨주의를 부정적으로 생각했을까? 베이컨은 최초로 경험에 입각한 '귀납법'을 주장한 사람으로 베이컨주의는 사실적인 정보에 입각하여 자료를 수집한 뒤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실험과 객관적인 이해를 통해 공리적인 이익을 추구한 사상이다. 베이컨은 자연이 무한한 자원이기 때문에 인간을 위해 자연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탐구할 수 있고, 신이 이러한 자유를 보장해준다고 믿었다. 베이컨주의는 과학 혁명을 촉발시켰으나, 자연을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도구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환경주의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두 사람은 셰익스피어의 유적지를 통해 돈과 명성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비판하다가, 그들을 보고 자연을 인간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베이컨주의를 떠올린 게 아닐까.
이처럼 네스빗은 주로 판타지 문학을 쓰지만,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The Incredible Honeymoon>의 경우 판타지가 나오지 않는다). 『보물을 찾는 아이들』에서는 어머니의 부재,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난하게 사는 아이들이 나오는데,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여러 나라를 떠돌며 지낸 작가의 경험이 투영되었다고 본다. 그녀는 페이비언 협회의 에디터로서 사회주의에 관해 강연을 하고 기사를 기고하기도 했다. 페이비언 협회는 영국 지식인들이 모인 사회주의 협회로, 자유무역을 반대하고 보호무역주의와 토지 국유화를 주장하였다. 특히, 토지 국유화의 경우, 지나친 빈부 격차로 인해 건의한 일종의 소득 분배 정책이었으니, 페이비언 협회는 빈민들의 현실에도 관심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네스빗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결혼 후에 남편이 천연두에 걸리면서 홀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몸이었다. 평탄치 않았던 현실 때문에 사회주의에 몸을 담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심을 추구하는 어른들
하지만 네스빗의 작품은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그녀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어린아이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으로 가난한 현실 속에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았다. <The Incredible Honeymoon>의 주인공들은 20대 초반의 어른이지만(20세기에는 10대 후반이 되면 어른 취급을 받았다), 마음은 어린아이였다. 캐서린과 이모를 만난 뒤 떨어진 손수건을 보며 캐서린의 손수건이길 바라는 에드워드, 남매처럼 행동하느라 전전긍긍하는 그들, 우정인지 사랑인지 헷갈려하는 마음, 신사적인 슐츠에게 살짝 질투를 하는 에드워드, 가짜 결혼식을 하느라 추레한 웨딩복을 입었으나 모여든 사람들을 보며 진짜 결혼식을 꿈꾸기도 하는 두 사람, 공장을 꾸려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하겠다는 야망(?)을 품는 에드워드 등을 보면 중간중간 웃음이 나온다.
이들을 보며 한 때 알라딘, 라이온킹, 라푼젤, 겨울왕국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섭렵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사극 드라마를 즐겨 보던 나는 왜 갑자기 디즈니에 빠졌을까? 내가 유치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알라딘과 겨울왕국의 관객이 천만 명을 넘어서고, 프라모델과 피규어 매출이 5~6% 늘어난 지금, '유치한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닌 것 같다. 유튜브에서 라푼젤이나 주토피아에 관한 영상만 봐도 설렌다면서 좋아하는 사람 일색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힘든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고, 자신의 삶을 즐기는 욜로 족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그러나 옛날에 좋아했던 작품을 보며 향수를 느끼고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100년 후에도 울림을 주는 그녀의 글
네스빗은 현대 판타지 문학을 창조하고, 다이애나 윈 존스, C.S. 루이스, J.K. 롤링 같은 후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작가이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영국에서 에디스 네스빗의 작품이 꾸준히 읽히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되어서도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았지만, 애정 어리게 사람들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이 작품에 살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작품을 통해 에디스 네스빗이라는 작가가 한국에도 알려지기를 바란다. 어쩌면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21세기 한국인에게 숨 돌릴 틈을 줄지도 모른다.
*네이버 블로그에도 게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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