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쫄보다. 세상의 크고 작은 아픈 것을 모두 무서워한다. 예방접종 주사를 맞을 때, 치아교정 고무줄을 걸 때, 뭔가 통증이 오려는 느낌이 몰려올 때마다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 나는 머릿속으로 늘 똑같은 노래를 부른다. 벌써 거의 20년째. 이 세상에! 나의 너보다♬
이상하게 그 노래에 집중하다 보면 고통이 좀 참아지는 느낌이다. 심지어 출산할 때도 그 방법을 사용했다. (물론 실질적인 도움은 무통주사가 주었다.)
며칠 전 시술대에 누워 나는 또 속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제거 대상인 물사마귀의 위치가 눈가라서 마취크림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마취주사를 놓는다고 했다. 이 또한 살갗을 완벽히 둔감하게 해주지는 못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약간 울면서 참을 수는 있는 정도였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또 반복해서 그 노래를 불러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심쿵이가 햇살처럼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정말 내가 일부러 심쿵이 생각을 한 게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순간 암흑 속에 그 미소가 빛을 내며 나타난 그때, 되뇌던 노랫말은 잦아들고 심쿵이의 해맑은 표정만이 내 감은 눈앞에 가득 찼다.
통증을 참는 새로운 방법이 발견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마취주사의 고통을 참아보고 있던 중에 문득, 물음이 떠올랐다.
혹시.. 엄마도 이랬을까? 수도 없이 많은 시술과 수술을 받으며 겁이 나고 무서울 때, 엄마도 내 얼굴을 떠올리면 좀 나았을까? 그러면 좀 더 참아낼 수 있는 힘이 생겼던 걸까?
나 같으면 이미 벌써 못하겠다고 포기했을 것 같던 순간들에도 늘 그 누구보다 생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우리 엄마. 그런 엄마를 붙잡아 견디게 했던 건 혹시.. 나였을까?
엄마가 간이용 이동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향했다. 나는 장난이 묻은 목소리로 "어때, 잘 할 수 있겠어?"라고 말하며 엄마 얼굴을 가린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엄마는 "그럼~ 머리 잘 넘겨줘, 예쁘게. 그러면 수술 더 잘해주려나?”하며 씨익 웃어 보이고는 철문 너머로 들어갔다.
매번 그런 식이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왠지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독한 인간이 되어 키득키득 끝까지 장난을 치면서 엄마를 들여보내고 나면, 혹은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그제서야 혼자 몰래 울었다.
나는 늘 그런 나만을 알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 긴 세월 항상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던 엄마 또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종류의 치료들, 그중 아프지 않은 방법은 거의 없었다. 나는 그저 우리 엄마가 참 고통을 잘 참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었는데, 엄마라고 그게 무섭지 않고 아프지 않았을 리 없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는다.
우리가 놀라거나 힘들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그렇게 늘 웃어보였던 거다. 엄마 또한 나처럼 같이 낄낄 웃어 놓고는 돌아서서 울었을 거라는걸, 미처 몰랐다. 멍충이.
우리 모녀 모두, 서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연기를 하고 있었던 거였다. 내내 괜찮은 척, 다 괜찮아질 것처럼.
“끝났습니다. 고생하셨어요.”
그렇게 감은 눈앞 환한 심쿵이의 미소만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몇 분 안되는 레이저 치료를 참아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눈가도, 마음도,
아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