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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 Apr 08. 2021

동생의 상견례

엄마, 주말에 동생 상견례를 했어.


우습게도 내가 이 결혼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전에 한 번 해봤다고, 그때만큼 긴장되지가 않더라.


부모님 인상이 참 좋아 보이시더라.

딸은 아버님을 닮았고 아들은 어머님을 닮았어.

역시나 사랑 많이 받고 자란 딸이구나. 좋다.


엄마도 봤으면 아마 나랑 비슷하게 느꼈을 거야.




내가 앉은 반대편에 거울이 있어서 내내 웃고 듣고 말하는 내 얼굴이 언뜻 언뜻 보였어.

그땐 몰랐는데 끝나고 나니

엄마 몫까지  해보겠다고 애쓰고 있던  모습이  피곤하게 느껴져서 속이 상하더라.


또 미안하다고 하지 마,

엄마 미안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야.


난 늘 엄마한테 뭐든 다 말하고 싶은데 엄마가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말 못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지도 말구.


내 표정과 자세의 잔상이 쉽사리 사라지지가 않아서

힘을 좀 더 뺐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라고는 해도 아무래도 긴장되는 자린데 그게 되나, 아냐  원래  그런  같아,

그런 거 아니야 애쓰느라 그런 거야,

혼자 또 한동안 생각이 핑퐁으로 갈팡질팡했어.     

                                    



아빠한테 혹시나 불필요한 말은 하지 말라고 당부를 해서 그랬는지 너-무 말씀을 자제하시더라고.

우리 쪽 대답 분위기인데 침묵이 느껴지면 나랑 동생이 말을 더 많이 하게 됐어.


그런 자리에서는 아빠가 실수를 안 하는 게 제일 좋은 거니까 괜찮은 걸로 쳐도 될 것 같아.

어딜 가나 남편 데리고 가면  불안하다고 우리 같이 낄낄댔었는데 다행히 엄마 남편 실수  했어!


내 남편이 내 맘에 걸리는 말을 해서 끝나고 와서 화를 좀 냈는데 엄마가 있었으면 엄마도 엄마 남편한테 불만인 부분이 있었을라나ㅎㅎ


별 건 아니구 그냥 나 혼자 좀 거슬렸던 거니까 걱정하진 말구.


아니다 엄마가 끝까지 물어보고 괜히 신경 쓸 거 같으니까 이건 그냥 말 안 해야겠다.




그래도 남편이 우리랑 같이 있다는  자체가 훨씬 든든했어.

엄마를 보낼 때처럼.


심쿵이가 MVP였던 건 말할 것도 없구.

예상했듯 어색해지면 심쿵이만 쳐다봤어 다들.

심쿵이가 다 했지 뭐.

앉아서 밥도 잘 먹고 적당한 타이밍에 웃어도 주고 적당한 타이밍에 칭얼댈랑 말랑해서 잘 마무리했어.


곧 걷겠다 이런 얘기 하다 보니까 여친네 오빠가 지금쯤 걷고 돌쯤엔 뛰어다녔다고 하시더라구.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나도 뭐든  빨랐댔는데 하고 엄마 육아일기를 찾아봤어.  보물.


왜 아빤 아무 말도 안 했지 싶다가

거기서 내가 빨리 걸은 걸 자랑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 동생 얘기도 아닌데.


그래도 엄마가 있었으면 맞장구쳤을 텐데 싶어서 잠깐 또 멍했어.


그 자리에서 제일 많이 긴장한 사람은 내 동생 같아 보였어.

그것도 뭔가 안쓰러운 느낌이었지만 생각해보니 당사자니까 당연히 그런 거지 뭐. 마음 쓸 거 없어.




엄마, 그나저나


아들 참 잘 키웠어.


엄마는 늘 걱정이 늘어지던 아들이지만, 그게 다 무색하게 참 잘 커서 이제 어엿한 예비신랑이야.


착하고 예의 바르고 따뜻하고 부지런하고 건실해.

(운동화를 좀 많이 쟁이는 게 단점이지만. 오랜만에 친정 가봤더니 지네가 사는 집인 줄 알았어.)


지금도 잘 지내고 있고, 가정을 꾸리고도 잘 살 거야.




엄마 덕분이야.


엄마가 잘 한 거야.


엄마 정-말 대단해.



엄마가 되고 나서야,

엄마도 엄마로서 인정과 칭찬과 격려가 늘 고팠을 거라는 걸 느끼게 되다니.

너무 늦었지.

내가 진작 더 잘 알아주고 더 많이 칭찬해줄걸.



엄마,

이렇게 잘 키워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전부 엄마가 이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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