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나 Mar 06. 2021

백 명의 내가 있는 곳이 엄마의 천국일까

이모가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예쁜 너희를 두고 엄마가 어떻게 갔을까”라고 했다. 그 말에 엄마가 신랑을 포함한 우리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우리 OO 두고 어떻게 가”하고 울부짖던 날이 떠올랐다.


나는 엄마가 나를 진짜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기에 엄마가 우리를 두고 가는 마음이 어땠을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엄마가 너무 속상했을 텐데 어떡하냐고 울자 신랑은 그건 니가 천국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어머님은 천국에서 더 잘 지내고 계실 거라고 했다.


거긴 내가 없잖아, 하자, 

거긴 니가 한 살부터 백 살까지 백 명 있을 거야, 라며,


그래서 너의 과거 현재 미래까지 다 한꺼번에 보시면서 OO 백 명이랑 놀고 계실 거라고, 

OO가 백 명 있는 게 얼마나 천국이냐며 엄마가 얼마나 행복하시겠냐고 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이 말도 안되는 궤변이 희안하게 위로가 되었다.


진짜 내가 나이대별로 백 명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시공간을 초월하고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행복과 안정을 주는 곳이 천국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일까,


엄마가 그런 곳에서 나와 같이 있는 마음으로 잘 지내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어렴풋한 안도감이 들었다.

   



엄마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반복해서 했던 말이 "엄마, 천국에서의 하루가 여기서의 백 년이래. 가서 잠깐만 구경하고 있으면 우리가 금방 갈 거니까 걱정마." 였다. 엄마는 그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었다.


엄마를 안심시켜주고 싶어서 내가 수도 없이 꺼내놓은 말이었지만 이게 진짜 진짜라면, 엄마는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인사를 나누고 친구들과 안부를 전하고 오빠네 강아지를 만나 반가워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갈 거고, 이제 나만 이 곳에서 남은 몇십년을 어떻게든 버텨내는 일만 남은 거다.


언제 한순간에 끝날 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것쯤은 그 언제보다 잘 아는 지금이지만, 혹시 별 탈 없이 살게 된다면 내가 지금부터 아이를 갖고 낳아서 나와 엄마가 함께 한 30년을 살고 난 후에도 아직 내 나이가 60대다.


지금은 하루 하루도 너무 힘이 든데, 그 긴 세월을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벽이 막막하다 못해 껌껌하다.


짧은 인생을 아쉬워하는 엄마한테 매번 “엄마, 이생은 찰나야, 찰나. 누구나 아주 잠깐 왔다 가는건데 뭐”라며 별거 없다고 왜 그걸 모르냐는 듯 진심으로 믿으며 유세를 떨던 나는 어디로 간 건지..  




하지만 엄마에게 약속한 것이 한 가지 있다.                                               


“엄마, 내가 어느 날 알아차리고 깜짝 깜짝 놀라는게 내가 엄마랑 똑같은 표정을 짓는거야, 어느 날 뭐라고 말하고 나서 ‘앗 이거 엄마가 하던 말인데’ 싶고! 내가 이렇게 엄마랑 성향도 생각도 다 비슷하니까, 앞으로 내가 인생을 엄마랑 같이 살면서 엄마 마음을 다 느낄게.


사람들이 애기 낳으면 엄마 생각이 더 많이 난다는데, 그 때마다 슬프다고 생각 안하고 엄마가 나 키울 때 어땠는지 말로 다 못해준 것들 내가 다 겪으면서 엄마랑 공감하는 거라고 생각할게.


엄마 내가 엄마 마음 알아주는 거 제일 좋아하잖아, 엄마 외롭지 않게 내가 살아가는 내내 엄마의 인생을 다 공감해줄게." 라고 하자 엄마는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약속했다? 엄마 인생이 한 번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네" 라고 웃어 보였다. 





그 약속을 지키는 순간들마다 내가 얼마나 더 울게 될 지는 아직 모르겠다. 어쩌면 이 시간들을 잘 보내고 나면 나중에는 이 그리움이 슬픔으로만 남지 않고 추억이 되어 따스하게 웃어낼 수도 있겠지.


친구가 말해준 것처럼 지금은 나를 힘들게 하는 엄마와의 수많은 기억들이 나중에는 오히려 나를 살아가게 할 힘이 되어주는 때가 너무 늦지 않게 와줬으면 좋겠다.


인생에서 늘 행복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던 나는 더 이상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없어져버린 것만 같고, 그저 이생에서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든 버텨내야 하는 것만 같았는데, 이렇게 적다 보니 이것 또한 엄마와 함께하는 날들이라면 내가 행복해야 엄마한테도 좋은 걸까 싶기도 하다.




엄마는 백 명의 나와, 나는 내 안의 엄마와,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의 날들을 잘 채워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 우리 그렇게  따로 또 같이 잘 지내다가, 금방 만나서 다 이야기하자. 어떻게 지냈는지.


이전 01화 육아휴직 중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