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오빠 너무 좋고, 준비가 되었다면 당장 결혼하고 싶지만, 말했다시피 우리 집은 아니야. 우리 집 사정 알면 오빠 부모님도 반대할 수도 있고, 그리고 우리 아직 너무 어리잖아요."
"당장 하자는 거 아니야. 나도 석사 마치고 취업할지 박사까지 할지 아직 정하지도 못 했고, 최소 일 년 반은 있어야 결혼도 할 수 있을 거야."
"그럼 왜 갑자기 결혼 얘기를 한 거예요?"
"커플링 샀는데 끼워주면서 결혼하자고 얘기하고 싶었어. 난 너랑 무조건 결혼할 거니까. 나중에 정식으로 프러포즈하겠지만 미리 얘기해두고 싶어서 한 건데... 이렇게 바로 아니라고 할 줄은 몰랐네?"
나중에 알았다. 결혼하자는 말도 그의 어머니가 시켰던 거란 걸...
2004년 1월 말... 룸메이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다가(술, 남자친구, 청소 문제 등으로) 결국 그의 집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월 렌트비가 980파운드였는데 그의 집에서 매월 1,500파운드를 보내줬다. 계산해 보니 둘이 같이 살면 월 2,000파운드 정도면 나름 여유 있게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에게 월 1,000파운드를 낼 테니 지금 하고 있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라고 했다. 회사에서 일주일에 20시간씩 일하면서 매주 받는 돈이 400파운드였으니, 월 1,000파운드를 내는 건 어려운 게 아니었다.
일주일에 두 번은 평소 가보고 싶었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사 먹고, 그가 마시고 싶어 했던 비싼 와인도 가끔씩 사 먹고, 한 달에 한 번은 저가 항공이나 차를 렌트해서 가까운 유럽 여행도 다녔다.
그의 석사 2학기를 마무리한 4월, 영국의 봄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휴가지로 많은 검색을해서 알아낸 레이크 디스트릭트라는 지역에 리조트를 예약한 후 차를 렌트해서 교대로 운전을 하며 가고 있는데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
내가 운전하면 괜찮은데 그가 운전할 때마다 두통으로 평생 없었던 멀미까지 하게 되었다.
힘들게 6시간 이동하여 센터 팍스 리조트에 도착하였는데, 울창한 침엽수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자연에 압도당해서인지 컨디션도 곧 좋아졌다.
고급 나무로 지어진 객실에 들어와 경치를 보는데, 처음 보는 야생의 예쁜 새들이 쉴 새 없이 발코니 앞에 앉았다 떠나기를 반복하고 숲속에는 토끼들과 사슴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짐을 다 정리한 후 그가 따뜻한 커피를 건넸다.
한 모금 마시는데 속이 메슥거렸다.
"오빠... 나 두통이 너무 심하다. 일단 조금만 자고 나가요."
"그래. 요즘 너무 무리했나 봐."
그는 내 옆에 누워 챙겨 온 책을 읽었다.
나는 곧 잠이 들었는데, 비 오는 날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다가 수막 현상으로 차가 미끄러져 비명을 지르는 꿈을 꾸고 잠에서 깨게 되었다.
시계를 보니 저녁 6시가 넘어있었다.
배가 고파서 리조트 안의 레스토랑 메뉴를 확인하고 스페인 음식점으로 갔다.
주문한 음식과 와인이 나와, 빠에야부터 한 입 넣었는데 또 구역질이 났다.
"어떡해... 못 먹겠어요."
그는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보더니 웨이터를 불러 음식을 포장해 달라고 했다.
"여기까지 와서 나 때문에 오늘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미안해요."
"내일부터 재밌게 놀면 되지. 오늘은 마사지 받고 푹 쉬자."
객실로 돌아와 그가 포장해 온 음식을 먹기 위해 테이크아웃 박스를 여는 순간, 참을 수 없는 구역질로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했다. 방으로 돌아오니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하필 휴가 와서 감기 몸살이라니...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나오니 컨디션이 조금 좋아진 것 같기도 했지만, 다음 날부터 스파, 승마, 호수 투어 등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파라세타몰을 한 알 먹고 일찍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그가 한국에서 부모님과 통화하는 소리에 깼다.
내가 일어나 거실로 나오니 묘한 표정으로 내 팔을 끌어 자기 옆에 앉히더니 통화를 마무리했다.
"엄마가 매일 밤 11시면 서재에 들어가셔서 한 시간 동안 기도를 하시거든. 그런데 기도 중에 나랑 너 그리고 우리 아기까지 세 명이 보였대. 그러면서 혹시 너 임신한 거 아니냐고..."
"에이... 나 지금 생리하는 중인데 무슨... 그리고 우리 피임하잖아요."
"그러게. 우리 엄마가 기도 중에 환상을 잘 보는데 그게 소름 돋을 정도로 맞을 때가 많아서... 우리 정말 결혼해서 아기도 낳을 건가 보다."
그는 TV를 틀어주고는 키친에 가서 토스트를 굽고, 커피를 내려 테이블로 가져다주었다.
이상하다. 오늘도 못 먹겠다. 냄새가 너무 역하고 속에서 신물이 넘어왔다.
일단 먹는 것만 아니면 돌아다닐 만해서 주변의 유명한 호수를 보러 갔다. 사진으로는 담아지지 않는 아름다움... 왜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휴가지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배가 고프다고 하니 그가 핫도그와 콜라를 사 왔다.
"음... 맛있네."
"이제 먹을 수 있는 거야? 다행이다. 저녁은 진짜 맛있는 거 먹자."
숙소로 돌아와 소파에 누워있고, 그가 발코니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기 위해 문을 여는 순간, 훅 들어온 담배 냄새가 너무 역했다. 그러고는 화장실에서 또 토하고 말았다.
순간 겁이 났다. 뇌종양 걸리면 두통에 구토 증상이 있다는데...
그는 도저히 안 되겠는지 내일 당장 런던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아무래도 병원부터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아침에 일어나 컨디션이 나아지기를 바랐지만, 두통과 메슥거림이 더 심해져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런던에 도착했지만 다음 날은 일요일이고 월요일은 영국 공휴일인 뱅크 홀리데이라 GP를 가려면 화요일까지 기다려야 했다.
컨디션은 점점 더 안 좋아져서 냉장고 문만 열어도 구역질이 났고, 그가 매일 뿌리는 향수 냄새에도 머리가 아파 코를 막고 누워있어야 했다.
먹을 수 있는 건 콜라, 사이다, 환타... 탄산음료뿐, 다른 것은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났다. 휴가 가기 전 46킬로였던 몸무게가 4일 만에 43킬로가 되어있었다.
월요일 아침, 테스코를 다녀온다고 나갔던 그가 장을 봐온 비닐 속에서 뭔가를 꺼내어 건네주었다.
"임신 테스트기야. 아무래도 한번 해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찾아보니까 입덧 증상이랑 비슷해."
"근데 나 생리하는데...?"
휴가 가기 며칠 전부터 피가 조금씩 나왔다가 멈췄다가 또 조금 나오기를 반복해서, 이번 생리는 좀 이상하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사 왔으니 테스트는 해보자 싶어, 아침 첫 번째 소변으로 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고 쓰여 있었지만 무시하고 바로 했다.
그런데 바로 떠버리는 너무도 선명한 두 줄... 임신이다!
손이 벌벌 떨렸다... 한국에 있는 엄마 아빠가 기껏 공부한다고 외국 가더니 임신이나 했다며, 나를 부끄럽고 한심하게 생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이것 봐..."
"두 줄 나오면 임신인 거지?"
테스트기와 설명서를 번갈아 보던 그가 나를 꼭 안았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엄마가 기도 중에 본 게 진짜였네."
그의 어머니의 존재가 조금은 무서워졌다.
화요일이 되어 GP에 가서 임신한 것 같다고 하니 축하한다며 레터 한 장을 써주었다. 리셉션에 가면 대학병원으로 연결을 시켜줄 거고, 그 병원에 전화해서 등록하면 된다고 했다.
갈색 혈이 계속 나와서 생리하는 줄 알았다는 말을 하자 부정출혈인데 유산 가능성도 있으니 긴급으로 요청하겠다며 레터 한 장을 더 건네주었다.
리셉션에서 주는 두툼한 봉투와 함께 건네받은 번호로 전화를 했다. 마지막 생리 날짜를 묻고는 일주일 뒤로 진료일을 잡아주었다.
이 모든 상황들이 현실 같지가 않았다.
그는 입덧에 도움이 된다는 것들을 검색해 생강차, 레몬차, 바게트 등 내가 먹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을 가져다주었지만, 여전히 탄산음료 외에 모든 음식은 삼킬 수 없었고, 몸무게는 41킬로가 되었다.
눈물만 났다. 태교는 생각할 수도 없고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두통과 메슥거림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너무 힘들었다.
대학병원 진료 가는 날 아침,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가는데 피가 주르륵 흘러 발목을 타고 내려와 바닥까지 떨어졌다. 배도 아프고 어지러워서 욕조에 앉아서 겨우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그가 커피를 마시다가 급하게 싱크대로 치우려고 했다.
"오빠... 괜찮아. 이상하게 커피 냄새가 오늘은 역하지 않네. 입덧도 드디어 끝나나 봐요."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보는데 의사가 첫 임신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심장 소리도 안 들리고, 유산되어서 지금 자연 배출되고 있는 것 같다고... 열흘 뒤에 다 배출되었는지 확인하고 남아있으면 흡입해서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유산이라니..슬픈 느낌보다는 멍했다.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게 신기하긴 했지만, 걱정이 더 많았다. 부모님께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임신으로 결혼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에 대한 두려움, 더군다나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매일 누워만 있는 현실에 너무 힘들어 입덧이 끝나기만 기다렸는데...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없던 일이 될 줄은 몰랐다.
그는 많이 착잡해했다.
"나 때문에 힘든 일 겪게 해서 너무 미안해. 내가 더 조심하고... 흐윽... 미안해."
위로가 필요한 건 내가 아닌 그였다.
집에 오기 전 한식당에 들러 갈비탕을 먹었다. 입덧이 사라지니 밥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내가 임신한 것을 안 순간부터 담배를 끊었는데 앞으로도 피우지 않겠다고 했다. 다 본인 잘못인 것 같다며...
"그러지 마요. 오빠 잘못 아니고, 내가 너무 준비가 없던 상태라 몸이 약했던 것 같아."
집에 돌아오니 한국에서 그의 부모님이 보내주신 소포가 문 앞에 있었다.
흰색 면티 3장, 그가 부탁한 음악 CD 몇 장, 홍삼, 각종 반찬들...
그리고 코팅된 그림 한 장과 편지가 있었는데, 그가 그림을 급히 숨겼다.
물어보니 그의 어머니가 기도 중에 보았던 나와 그, 그리고 아기... 세 명을 그린 것 같다고 했다.
난 괜찮은데.. 그가 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 그림보다 사실 편지의 내용이 불편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축복받은 가정의 일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언제나 선하고 신실한 모습으로 살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사람이 되거라.'
여기까지는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다음...
'가난과 병은 죄로 인하여 받는 벌임을 명심하고, 네 마음에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늘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기억하거라.'
가난하고 병든 게 죄를 지어서라니... 그러다 그의 가족 중 누구라도 병에 들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 죄인으로 낙인을 찍는 걸까...
만약 인생에 시련이 생길 땐 어떤식으로 대처를 할지, 아니 무슨 기도를 할지 궁금했다.
"죄인?" 나의 말에 그가 대답했다.
"우리 교회 목사님이 강성이셔서 그렇게 생각해"
"그럼 그 교회에는 가난하거나 병든 사람 없어요?"
"음... 모르겠네. 태어날 때부터 다닌 교회인데 갑자기 안나오는 사람들도 많고 새로들어오는 사람들도 많고..."
묻고 싶었다. 사이비는 아닌지...
그렇게 하나님의 축복으로 병과 가난을 죄라고 말씀하셨던 목사님은 4년 뒤, 말기 간암으로 수술도 못 하고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