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친구의 개념이 모호해진다.
나는 20대부터 친구가 많았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놀라온 적응력과 친화력으로 웬만하면 모두 친해졌다.
엄마는 나에게 국회의원 나가려고 그러냐며 핀잔을 줄 정도였으니 참 내가 생각해도 그때의 나는 사업을 해도 잘했을 것 같다.
그러던 내가 아이를 낳고 변하기 시작했다.
연락할 수 있는 친구들은 변하지 않은 듯했지만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한정적으로 변하였다.
초반에는 멋모르고 예전처럼 약속 잡아 나가기도 하고 아이를 데리고 움직였었는데 그들의 이야기에 참여할 수 없었고 아이를 보러 간 것인지 친구를 만나러 간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들과의 약속은 줄어들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아이가 문화센터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아이 친구 엄마들과 관계를 갖게 되었다.
나이도 지역도 성향이 달라도 아이가 친구이면 우선 같이 어울리는 참 이상한 구조이다.
요즘은 조리원에서 어울리지 않아 사라져 가는 문화중 하나인 조리원 동기는 나에게 군대동기를 넘어서는 끈끈한 전우애를 만들어줬다. 아는 것도 없는 초보엄마들끼리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같이 울고 웃고
아이 덕분에 자의 반 타의 반 집에 갇혀서 핸드폰으로만 소통하는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안쓰러워하며 함께하게 된다.
그렇게 조동과의 끈끈한 우정은 아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관계가 서원해지고 아이의 동네친구엄마들과 관계를 다시 시작한다.
그러다 맘 맞는 엄마들을 만난다는 것은 참 큰 축복이다.
그렇게 10년을 지내다 보니 일을 할 때는 직장동료들도 있고 나의 지인들이 있었는데 퇴사하고 보니 점점 내 지인이 아닌 아이의 지인과 관계하는 느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친구 없어?"
흠.... 그 순간 쪼그라든 나의 인간관계가 드러나는 것 같았다.
친구: 오랫동안 함께 어울려 가까이 지내는 사람. 또는 친하게 사귀는 사람 <보리국어사전 中>
그렇다. 국어사전에도 친구가 굳이 같은 나이일 필요 없고 가까이 살필요도 없고 누굴 통해 알게 되어야 한다는 것도 없고 아무 조건이 없는데 괜한 나의 10년의 육아생활에 피해의식처럼 너를 통해 알게 된 나의 인연이 나의 것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아이에게 당당히 말한다.
"나도 친구 있어!!!"
오늘도 나와 라이딩을 다니는 아이친구엄마와 조리원동기들 어린이집시절 엄마들에게 좋은 인연이 되어 주어 나와 친구가 되어주어 고맙다며 마음을 전해야겠다. 그리고 오랫동안 연락 못했던 지난 내 친구들에게 연락 좀 돌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