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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용수 Nov 04. 2024

11월의 햇볕

 

  11월 햇볕은 남 주기 아까운 햇볕입니다. 그런 소중한 햇볕으로 여름꽃은 자신을 

닮은 생명을 품습니다. 11월에는 떨어진 나뭇잎에서 일광욕이라도 하듯 가부좌를 

틀고 있는 곤충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안전한 곳에 알을 낳고 마지막 누울 곳이 11월 햇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산새는 날지 않고 숲을 배회합니다. 날아야 할 나비가 날지 못하고, 뛰어야 할 메뚜기가 뛰지 못한다는 것은 생명이 다했다는 것입니다. 

  11월에는 몇 잎 남은 잎조차 내려놓고 묵도하는 듯한 나무를 만날 때면 슬그머니

 다가가 안아봅니다. 비워낸 본연의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길가 산벚나무가 남쪽으로 가지를 길게 뻗어 있는 것은 가장 먼저 햇살을 받아 생명을 싹틔우기 위한 삶의 흔적입니다. 그래서 나무는 아무리 궁핍해도 생명까지 내려놓지 않습니다. 

  인디언 중 아라파호 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합니다. 

  11월은 다 거두어 버리는 매정한 달은 아닙니다. 새로운 생명을 품기 시작한 달입니다. 

  아직 떠나지 않은 새들의 맑은 소리가 들립니다. 까치밥으로 남겨진 홍시가 그들을 유혹합니다. 11월은 산책하기 좋은 달입니다. 몇 발자국 걷기만 해도 잡념이 사라지고 무거운 가슴을 내려놓기 참 좋습니다. 아침나절 뒷짐 지고 천천히 걷습니다. 아침햇살에 몸을 맡겼습니다.  저수지 제방에 앉아 한참을 물멍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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