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다. 뿌리를 들어낸 삐쩍 마른 감나무가 집으로 왔다. 감나무는 식목일날 나무를 심으라는 학교 숙제 때문에 아버지께서 오일장에서 사 왔다. 나는 죽은 나무인 것 같아 표피를 손톱으로 살짝 눌러보았다. 나무는 푸른 속살을 보여주었다. 그 감나무를 아버지와 함께 꼭꼭 밟아 심었다. 그런 감나무를 새까맣게 잊은 지 50여 년이 지난 어느 날이다. 11월 바람이 집으로 휘몰아칠 때 작두샘 자리에서 집을 둘러보았다. 그때 푸른 하늘에 홍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 아버지”라고 탄식을 쏟아 낸 것이다. 홍시가 주렁거리는 감나무를 바라보면서 목을 타고 뜨거운 가래톳이 올라온다.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이다. 젊은 아버지랑 심었던 감나무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 것이다.
마른 감나무 잎사귀가 나뒹구는 텃밭에서 아버지의 하얀 고무신 뒤꿈치가 어른거린다.
“공기 들어가지 않게 잘 밟아 주어야 죽지 않는다.”라며 하얀 고무신을 신고 밟으셨다,
“몇 년 후에는 홍시가 열릴 것이다.”
“아 아버지, 꽃처럼 홍시가 열렸습니다.”
홍시가 열릴 때면 아버지는 얼마나 심한 몸살을 앓으셨을까. 큰아들을 되뇌고 사셨던 아버지가 홍시를 따는 날이면 홍시 하나를 큰아들에게 얼마나 먹이고 싶으셨을까? 언젠가 아버지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텃밭에 홍시가 열렸다. 한번 다녀가라” 하시길래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인 줄 알았던 그 간절한 아버지의 마음이 이제야 들린다. 한 번도 아버지랑 같이 먹어보지 못한 홍시를 아버지가 떠난 지 15년 만에 뜨겁게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