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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좋은쌤 Oct 30. 2022

나는 풀꽃이다

한껏 가치로와라

몇 년 전 이맘때, 햇살이 내려쬐는 퇴근길, 고사리 같은 막내의 손을 잡고 아파트 정원에 다다랐다. 

“엄마 잠깐만!” 막내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땅바닥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다.                    

개미, 공벌레, 무당벌레 등 거릴 것 없이 만져본다.  

‘아... 또 한참 걸리겠네...’ 기다리기 지겨워진 나는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곳에는 파랗고 노랗고 하얀 자그마한 풀꽃들이 피어있었다. 

“엄마!” 그 순간 함박웃음을 띤 아들이 자신의 손바닥을 보여주며 말한다. 역시나 새까만 공벌레 한 마리와 어떤 족속 일지 모르는 애벌레 두 마리가 비틀대고 있었다. 

“오늘은 제발 이 아기들 데려가면 안돼요?” 

당연히 안되지, 마음속으로는 딱 잘라 말하고 싶지만 애써 예쁘게 웃어 보인다.

“아기는 집에 데려가면 죽. 어. 요. 그러니 우리 땅에서 살도록 해. 주. 즈. 아!” 생떼 부리는 아이와 씨름하는 탓에 어느덧 풀꽃의 존재는 잊히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아이의 등원 길에 나도 모르게 아파트 정원의 풀꽃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모두 시들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아닌가. 서운했다. 미안했다. 잠시라도 너를 더 자세히 보아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이를 보내고도 한참 고개 숙인 꽃을 쳐다보았다. 

‘슬퍼...’     

다시 퇴근길,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가기 전 

“잠시만!!” 이번엔 내가 외쳤다. “엄마 왜?”

“풀꽃이야! 봐봐! 다시 피었다고!” 깡충깡충 뛰며 아이처럼 기뻐하는 나를 보며 막내는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엄마, 이 꽃 이름이 뭐야?”

“응? 꽃 이름??”

그제야 나는 꽃 이름도 몰랐구나 새삼 또 미안해졌다. 우리만의 이름을 지어주자! 아이와 나는 그날부터 매일 꽃을 들여다보고 인사하고 말을 걸어주었다.



     




나는 풀꽃이다. 큰 나무로 태어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어. 바람에도 잘 나부끼고 너무 작아 잘 보이지도 않지만 그 누군가는 나를 알아봐 줄 거야. 내가 너를 알아봐 준 것처럼. 특별한 이름은 아니지만 특별한 존재로 여겨주는 이가 있으니 나는 행복해. 

나는 햇빛과 그늘과 비와 바람에 감사해. 그늘이 지면 힘없이 고개를 숙이지만 햇빛이 나면 더욱 고개를 반짝 들고 에너지를 힘껏 받지. 


나는 현재에 감사해. 언젠가 내가 진짜 지고 없어지더라도 예뻤던 나를 기억해 주는 누군가가 있음을 아니까. 나는 겨우 ‘풀꽃’이지만 나는 가장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야. 이유 없는 존재는 없어. 나는 충분한 이유를 찾았어. 나를 발견해 준 너에게 기쁨과 행운을 안겨주었거든. 나는 충분히 가치로워. 그런 나를 알아봐 준 너 또한 아주 가치 있는 존재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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