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친해지는 기술, 질문.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나에 대해 궁금한가요?
나는 하브루타를 만나면서 ‘질문’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질문 만드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나는 왜 질문 만드는 것이 어려울까?’가 가장 큰 핵심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항상 정해져 있지 않았다. 이유는 상당했다. 어떤 상황에서건 답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정답을 정하려고 하는 틀에 매여 있으니 답을 내기 위한 질문이 어려웠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 이후로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질문에 대한 답은 유연하게 바뀔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정답은 없다는 말’이 체감되었다. 물론 정답을 요구하는 질문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에게 더 어려운 것은 해답을
찾는 질문이었던 것이었다. 그 해답조차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용납이 안되었던 것이다.
나는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을 만나면서 내 나이를 모를 정도로 오래 산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이들을 다 키운 5,60대 어머니들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시켜봐야 소용없다고 말하는 걸 자꾸 직접 만나기 때문이다. 소용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엄마의 욕심이 아이의 마음의 성장을 막을 수도 있다는 건 인정한다. 과외를 할 때, 공부를 잘하는 아이 옆에서 코치만 하는 건 재미가 없었다.
이 일이 이 친구에게 도움이 될까?
이 일이 나에게 도움이 될까?
학습 루틴이 잡히고 돈을 벌고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공부가 힘든 아이들을 코치하며 함께 울고 웃으며 믿어주고 응원을 했을 때 비로소 내가 하는 일이 재미가 있었다. 아이들의 마음이 성장하는 게 보이면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아이들도 엄마들도 변하는 게 눈에 보였다. 심지어 내가 변해갔다. 과거의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인가에 대해 자신이 없었지만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그런 내가 좋다.
질문이 어렵다고? 어렵지도 쉽지도 않다. 다른 사람에게 던졌던 의문을 나 자신에게 먼저 하면 된다.
나는 나에게 무엇이 궁금한가?
왜 질문이 어려운가?
나는 좋은 사람인가?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인가?
나는 왜 이 글을 쓰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