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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이고 비판적인 자기 평가의 힘-1

경기침체와 긍정 주문 세뇌하기

by 양벼락 Apr 30. 2024
안녕, 나 양벼락이야.


요즘 비가 좀 내렸지? 나는 물리적 저기압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는 신체를 가지고 있어서, 늦잠 잤다 하면 비 오는 날이더라. 이번 주는 시작부터 비가 내렸어. 덕분에 나는 아이들 등원은 다 남편에게 미룬 채 늑장을 부렸고, 주말~월요일 동안 세 군데에서 제안서 탈락 소식을 받으면서 그 바운스에 몸을 맡기는 하루를 보냈어. 손이 가는 대로 책도 읽어보고, 소파에 찌그러져 앉아서 핸드폰으로 이것 저것 찾아 보고, 거실의 불을 다 꺼 놓고 먹먹한 구름을 보며 멍도 때려보고, 엘디프 카톡 방에 실없는 농담이나 늘어놓으면서 시간을 다소 허비했지.


어떤 사람들은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현재의 실패에 literally 영향을 받지 않기도 해. 참 멋져. 자신에 대한 풍부한 믿음이 있다 보니까 이 모든 것은 과정일 뿐이고, 나는 타인과 경쟁하는 것이 아닌 어제의 나와 경쟁해서 더 나은 오늘의 나를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지. 자신의 단점보다는 장점에 초점을 맞추면서 일을 진행하는 타입의 사람들이다 보니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아. 무언가를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번 건 지나갔고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너무너무 부러워하는 멘탈이야. 그런데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되더라고.


오늘은, 사업을 하면서 늘 내 옆에 함께하는 '실패'를 대하는 내 태도를 글감으로 삼아볼거야.

다소 기쁜 주제는 아니지만 (그리고 언제나처럼 아무도 읽지 않겠지만ㅋㅋㅋㅋ) 한 번 떠들어볼게!


사적인 듯 예술적인, 덕업일치 - Issue No.5


경기침체와 긍정 주문 세뇌하기

콩알 만한 간을 가진 CEO

지난 편 덕업일치에서 떠들어 댄 내용을 다시 상기해보면, 나는 그렇게 큰 도전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큰 실패도 안 해봤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아. 융자나 투자를 받는 등 큰 도전을 안 한 이유는 겁이 많아서라고 이실직고 했던 기억도 나네. 개인적으로 실패를 받아들이는 내공이 부족하다 보니 두려움이 큰 것 같아. 내가 사업하면서 더 뼈저리게 깨닫게 된 것이 있어. 나는 내가 닥친 문제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분석하고 '타인과 나의 비교'를 통해 내 단점을 정확히 찾아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할 것인가 고민'하는 방식을 택하며 살아왔더라고. 원인을 분석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주 당연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 과정이 가진 가장 큰 단점은, 비교와 반성이 무조건 수반되는 방식이라는 점이야. 말이 좋아서 반성이지 자책이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 그래서 내 지인들은 "너 그 정도면 충분히 잘 하고 있는데 왜?"라고 반문하지만 난 늘 내가 부족하게 느껴져.


근데 그 보수적이고 비판적인 성격이 나한테만 적용되겠어? 우리 멤버들의 업무의 빈틈을 발견하고 수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내 업무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해. 오타, 줄간격 맞추기, 사진 각 맞추기, 용어, 색깔 같은 사소한 부분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인 운영의 흐름을 잡아주거나 업무를 진행하는 방법을 개선하거나 새로운 기준이나 방법을 생각해내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도식화, 문서화 등)로 만들어서 공유하거나 새 사업을 구상해서 추진하는 것들이 내가 주로 힘을 쏟는 부분이야. 그러다 보니 눈에 보일 때마다 수정을 요구하거나 멤버들의 의견을 물어봐서 귀찮게 하곤 하지. 다행히 우리 멤버들은 나의 이런 부분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심지어 나의 이런 점을 잘 활용하는 성숙한 사람들이라서 우리 엘디프가 하하호호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거 같아.


그래서 나는 엘디프 안팎으로 일어나는 문제를 대할 때 보수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나의 이 습관을 맘 놓고 사용하고 있어. 이게 언제 미친 듯이 발현되냐면, 내 기준에서 아주 군침 도는 사업을 따내고 싶을 때야. 나는 제안서나 발표를 준비할 때 정말 나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나에게 질문을 해도 내가 설득력 있는 대답을 낼 수 있을 정도로 고민하고 연습하지 않으면 못 견뎌. (체력이 허락하는 한) 몇 날 밤을 새서라도 내 맘에 들 때까지 준비해. 특히 3분~5분 내에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PPT와 내 목소리로 전해야 할 때 가장 심장 쫄려하는 성격인데, 6시간이든 10시간이든 대본과 PPT를 수정하고 내 목소리를 듣고 또 들으면서 발표장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 중얼중얼 거리다가 들어가서 마이크를 들어.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제안하는 내용들은 좋은 점수로 통과가 되더라.


문제는 작년부터 내 태도에 문제가 생겼다는 거야.



임신, 출산, 육아. 그리고 경기침체.

엘디프를 시작할 때는 결혼만 한 홀몸(!)이었어. 자상하면서도 도전의식 있는 남편을 만난 덕에 안정적인 직장을 때려 치고 창업이라는 영역에 들어왔지. 개인사업자로 엘디프를 창업하고, 1년 후에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서서히 성장해온 엘디프와 나는 큰 산을 만났다. 바로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거야. 임신 기간엔 입덧과 현기증으로, 출산 때는 조산과 산후 출혈로, 육아는 쌍둥이 육아를 하게 되는 바람에 나의 2022년 1분기 성과에서 엘디프의 지분은 10%도 되지 못했어. 내가 하는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월말 저작권료 정산'인데, 12월 중순에 조산을 하고 산후출혈을 겪으면서 병원에 입원해있던 그 한 달만 제외하고 다시 정산 업무에 복귀할 정도로 회사에 대한 애정이 컸다. 1월 중순부터는 바로 재택을 시작했고 2월부터 주1회, 3월은 주2회 출근을 목표하면서 아이들을 키웠지. 4월부터는 내 인생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은인인 아이돌봄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 주2회 출근을 정착시킬 수 있었고 재택 근무도 나름 원활하게 했어. 몸과 마음이 지칠 때도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희열이 정말 컸어.


그런데 2022년 하반기부터 2023년 하반기까지 우리 엘디프는 되게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 같이 작은 기업일 수록 경기 흐름의 영향을 크게 받더라고. 당장에 팔리던 것들이 팔리지 않았고 나는 여태까지 해왔던 것처럼 판매 추이, 마케팅 효율, CS 내용 등을 열심히 찾아보고 분석해 봤지만 문제점을 찾기가 힘들더라고. 원인을 모르니까 해결 방법을 도출해내기도 어려웠어. 그런데 하나가 달랐다면, 마케팅 설정을 바꾸지 않았는데 마케팅 비용이 줄어들었다는 거야. 노출 대비 클릭률이 낮아졌고 클릭 대비 매출액이 적어진 것이지. 덜 검색하고 덜 클릭하고 덜 결제하는 상황이었던 거야. 남들은 이런 걸 경기침체라고 하더라. 그런데 나는 그 원인은 받아들일 수 없었어. 경기침체라고 해서 내가 죽어버릴 순 없잖아? 그래서 끊임없이 고민했지만 점점 더 내 안에서 외치는 소리와 싸우느라 힘이 들기 시작했어. '너가 육아로 지쳤다는 핑계를 대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짬을 내서 열심히 일했더라면, 다른 팀원들이 하는 만큼이라도 집중했다면, 더 능력있고 더 치밀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결과는 없었을 거야!'



긍정 주문 세뇌하기

그래서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흉내 내기 시작했어. 위에서 말한 내가 닮고 싶어하는 낙관적인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주문처럼 외웠지.


- 이 모든 것은 과정일 뿐이고, 종국에는 좋은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 나는 타인과 경쟁하는 것이 아닌 어제의 나와 경쟁해서 더 나은 오늘의 나를 만들면 된다.

- 나는 이러저러한 장점이 있고 그래서 나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은 나를 선택할 것이고 못 알아보는 사람은 외면할 것이다.

-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나와의 경쟁만 생각한다.

-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올 것이다.


나의 동료들이 모두 나를 지지해주었고, 내가 잠시라도 저 주문을 외우지 못하고 있으면 그들이 나서서 다시 한 번 내가 좌절하지 않게 부축해 주었어(나는 정말 인복이 있어.) 나의 상태는 차츰차츰 좋아졌어. 나는 점점 내 마음의 여유를 찾아가기 시작했고, 육아와 사업을 병행할 수 있는 이 멋진 환경에 다시 한 번 더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지. 자잘한 실패의 나날들이 이어졌지만 #중꺾마 #존버는승리한다 를 외치면서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미래가 반드시 올 거라고 믿으며 살기 시작했어.


그런데 웬 걸. 어느 순간 내 퍼포먼스가 예전 같지 않더라. 문제를 발견하면 득달같이 달려가서 수정하려고 하던 불독 같은 성격이 어느 새인가 긍정을 넘어서서 '알이즈웰~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바뀌더라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한답시고 했던 노력이 지나쳤는지 올바른 균형을 잡지 못한 거야. 밤을 새서라도 맘에 들 때까지 제안서를 써내던 독한 양벼락은 사라지고 대충 재작년, 작년에 썼던 내용 복붙 해서 기한 맞춰 내보내기 바빴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새로운 제품 개발도 충분히 고민해보지 않고 내가 아는 선에서 쉽게 쉽게 쳐내면서 대충 때우려고 하더라고. 제안서 쓰면서도 난 알았어. '아 이거 논리가 부족한데, 데이터가 부족한데, 설득력이 부족한데...' 발표 준비 하면서도 난 알았어. '아 이거 대충 때우다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 나오면 답변 잘 못하겠는데...'


결과는 피할 수 없었어. 월요일 하루 동안 두 개 제안서가 서류 탈락하고 하나의 최종 발표 평가에서 탈락했다는 통보를 받았지. 이렇게 몰빵으로 탈락한 적은 처음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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