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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이고 비판적인 자기 평가의 힘-2

나답게 분석하고 나답게 해결하기

by 양벼락 May 07. 2024
보수적이고 비관적인 자기 평가의 힘


그건 내가 아니야.

약간은 어두컴컴한 거실에서 혼자 생각을 해봤어. 와, 이거 뭐지? 이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사실 2023년 상반기에도 '예상하고 있었던 탈락'을 경험했었는데 그 때는 주변의 긍정문에 동의하는 척 하면서 씁쓸하게 현실을 외면했었어. 낙담하긴 했었어. 떨어질 줄 알았는데도 떨어지니까 더더욱 내 잘못 같았어. 내가 퍼포먼스를 잘 내지 못해서, 내가 엘디프에 전심전력을 다 하지 못해서, 기획서를 대충 써서... 그래도 그 땐 딱 한 번이었어. 나는 동료들의 힘을 빌어서 긍정 주문 세뇌를 했고 씁쓸함을 잊어갔지. 다행히 2023년 하반기에는 다른 프로젝트들이 잘 진행되면서 덕분에 생각지 못한 결과물들을 만들어서 바쁘게 보낸 덕분에 긍정 주문 세뇌는 계속 될 수 있었지.


그런데 지난 월요일은 좀 달랐어. 약 2년 동안 강제로 골방에 들어가 있었던 원래의 내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


- 나를 제3자의 눈으로 평가하고 내가 내 편을 들지 않은 채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내 고유의 능력을 왜 외면해야 할까?

- 난 태생적으로 내 인생 자체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오던 사람이었는데, 오늘 내 눈 앞에 보이는 문제까지도 '긍정'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모른 척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 아니 그게 정말 내 입장에서 긍정적인 상태이긴 한 건가? 그렇게라도 내 마음이 편하기를 내가 원하는가?

- 집요하게 기획안을 수정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나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논리를 고치고 고치고 고쳐서 상대방을 설득하던 사람이 긍정 주문 외운다고 상대를 설득할 수 있어지나?

- 나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론을 내리고 방법을 고안해내서 그것을 실행하는 것을 기뻐하던 사람 아닌가?

- 타인과 경쟁 좀 하면 어떤가? 경쟁에서 스트레스 좀 받으면 어떤가? 그 끝에 거머쥐는 성취의 달콤함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아니었나?


긍정 주문을 세뇌하는 거 상당히 좋은 방법일 수 있고 나에게도 효과가 일부분 있었지만, 그건 내가 아니더라고.



나답게 분석하고 나답게 해결하기

난 그냥 나의 생각을 누르지 않고 내가 평생 살아왔던 방식대로 현상을 보기로 했어.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고, 원인을 찾으면 해결 방법을 모색하기로.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라고 믿으면서 실패한 것은 흘려보내고 그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방식은 내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 나는 실패를 분석하고 나 스스로 납득해야 그 다음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인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솔의눈 마신 것처럼 식도가 시원해지더라고. 그 길로 우리 회사 공동대표에게 카톡을 보냈어.


- 뭐, 뭔가 부족해서 떨어진 거겠지 뭐

- 나는 멀쩡한데 나를 몰라주는 니들이 이상하다 이렇게는 생각 안할란다 나는 ㅋ

- 그건 내 스타일 아니야 정신승리 하는 느낌 싫음

- 그냥 문제를 덮어놓고 가는 거 같아서 싫다 ㅋ

- 받아들이고 문제를 해결하겠음

- (그 뒤로 이래서 떨어진 것 같다 블라블라)

- (그래서 매출을 다시 정상화하고 더 다채로운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기획안은 날려쓰지 않을거고 내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수정할 것이며 블라블라)


나는 내 속의 냉랭하고 뻣뻣한 실 한 줄과 불로 촘촘히 소독한 뾰족한 바늘을 꺼내서 문제와 원인이라는 구슬들을 하나하나 찾아 내어 꿰어 갔고, 구슬이 잔뜩 꿰어진 실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서 매듭을 지어보았어. 그랬더니 투닥투닥 하지만 대충 차고 다녀도 부끄럽진 않은 팔찌가 하나 만들어지더라고. 그 팔찌를 보면서 생각했어. 그래, 이게 내 거지.



보수적이고 비판적인 자기 평가의 힘

토스 창업자 분의 강연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은 그러시더라고. 무슨 일을 할 때 하도 실패를 많이 해서 뭘 해도 잘 될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대. 처음에는 사용자가 1000명도 안 되는 서비스를 만들면서 '아~ 이렇게 좋은 걸 도대체 사람들이 왜 안 쓸까?'라고 생각했대. 그런데 계속된 실패에 너무 이골이 나다보니까 본인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볼 때도 '이거 누가 써주기는 할까, 그래도 한 번 해보자.'라는 마음이 드는 지경에 이르렀대. 늘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서 보수적이고 비관적인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는 거야. 그렇게 아무런 기대감 없이, 심지어 토스 서비스가 말도 안되는 미완성 상태일 때 온라인 프로모션을 시작했는데 광고 효율이 너무 좋았대. 토스 대표님은 '어? 이거 왜 이러지? 서비스가 완전 미완성인데 이상하게 데이터는 잘 나오네? 그럼 그냥 이 결과 값에 맞춰서 한 발 더 가보자.' 이런 식으로 토스 서비스를 발전시켜 나갔다는 거야.


어느 날 지인 분이 회사 근처에 놀러 오셔서 같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겼고 그 지인 분이 요즘은 어떤 아이템을 하고 있냐고 물어봤대. '아 요즘 뭐 그냥.. 이런 송수금 서비스를 만들어서 알리고 있는데 그냥 반응이 괜찮아서 그 반응에 맞춰서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습니다.'라고 겸손하게 이야기를 하게 되더래. 그 전에는 본인이 하는 서비스가 얼마나 좋은지, 앞으로 어떤 좋은 결과가 있을지를 말하는 것이 강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때의 본인은 본인의 약점도 솔직히 말할 줄 알고 결과에 대해서도 담백하게 전달할 뿐 군더더기를 붙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는 거야. 그런데 그 지인 분께서 초기 토스 서비스를 보더니 '돈 냄새가 풀풀 나네~'라고 말해주어서 처음 깨달았다는 거야. 토스가 사람들이 원하는 서비스였다는 걸.


그 강연을 들으며 어렴풋이 나의 상황을 대입해봤어. 너무 대단한 창업자 분이시고 그 분이 한 경험을 내가 해본 적은 없지만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었어. 맞아, 보수적이고 비판적인 것이 꼭 나쁜 건 아닐 수 있어. 하지만 많은 경우, 나나 회사가 만들어낸 것에 대해 보수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하다 보면 내 자신도, 상대방도 마음이 상하곤 해. 나를 비판하다 보면 '난 이 정도 밖에 안되는 인간인가' 싶고, 다른 사람의 결과물을 보수적으로 뜯어보고 있으면 상대방으로서는 '열심히 만들었는데 왜 맘에 안 들어하지?'라고 여길 수 있지. 하지만 그렇게 해서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면 신기하게도 그 고통스러웠던 과정이 다 추억이 되곤 하더라. 그런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서로 간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더 부드러워지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프로젝트 운영이 가능하게 된다는 점은 정말 짜릿하기까지 해. 우리 엘디프 속에서도 내가 나 자신을 힘들게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날카롭게 말하는 부분만 잘 컨트롤 할 수 있다면, 이런 나의 성격은 다른 긍정적인 엘디프 멤버들과 잘 어우러져서 더 완성도 있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아. 이건 내 장점이고 엘디프에 꼭 필요한 부분이었던 거야. (그렇게 생각 안 하는 멤버들이 있다면 미안해... 그래도 하여간 이 텐션으로 잘 해볼게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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