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앞만 보고 달리진 않았지만
안녕, 나 양벼락이야.
몇 시간 전까지 근로자의 날이었어. 근로자는 아닌데 쉬는 날은 다 챙기는 망나니 대표이긴 하지만 마음 속에서 "너 정말 이럴거야?"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아서 새벽 같이 덕업일치를 꺼낸다. 사실 이거 일 아니고 내 취미인데, 이걸로 일 했다고 하기는 좀 그렇다. 그치?
4월 한 달 내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던 단어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과 피봇팅(pivoting), 그리고 리스크테이킹(risk-taking)이었어. (리스크테이킹은 지난 덕업일치 No.4, No.5를 걸쳐 열심히 써놨으니 여기선 생략할게.) 어려운 시장을 헤쳐나가면서 피봇팅은 늘 있었지. 새로운 브랜드,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상품... 그런데 4월은 내가 그동안 성공적으로 해오던 많은 일들이 중단되고, 거절되고, 탈락되면서 이게 바로 하늘의 뜻인가 싶었다. 여러 고민을 해봐도 존버는 승리한다는 외침은 여전하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하는 내 인생이... 인과응보라는 생각도 들었어. 퇴사하고 내 카톡 프로필 문구는 늘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이었거든.
.... Seriously, 말한 대로 살아지는 양벼락 인생 진짜 어디까지 이럴까?
어차피 말한 대로 될 거라면 오늘도 또 말해보자. '내 인생 반드시 성공한다'
사적인 듯 예술적인, 덕업일치 - Issue No.6
보이지 않는 손을 영접하는 자세
비록 앞만 보고 달리진 않았지만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지. '앞만 보고 달렸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창업 후 내내 두리번거렸어. (제길 이렇게 써놓고 나니 진짜 망나니 같네 ㅋㅋㅋㅋㅋㅋ) 내 동료들한테 이런 이야기하면 '엔티제 특.' 한 마디 던지고 관심도 안 줄 것 같긴 한데 실제로 그래. 밤샌 적, 야근한 적 있지만 기본은 칼퇴야. 놀 거 다 놀았고, 만날 사람 다 만났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었고, 공부든 독서든 운동이든 하고 싶은 거 일 때문에 포기한 적 없어(육아 때문에 포기한 건 많아). 심지어 애도 창업 후에 둘 씩이나 낳고(그나마 한 번에 둘 낳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대표 주제에 하루의 절반은 일, 절반은 육아하고 있으니 앞만 보고 달렸다고 말하기는 참 어렵다. 그래도 좀 변명을 하자면 나는 일 하는 것 자체를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내 뇌는 늘 엘디프 생각으로 꽉 차있긴 해. 만나는 사물, 사건, 사람에 대한 해석이 시작된다면 해석 툴의 70%는 엘디프라는 무생물인 것 같아. 뭐 그래봤자 동료들 퍼포먼스에 얹혀가는 신세인 건 틀림 없고, 엘디프 멤버들 중에서 제일 두리번거리는 사람은 바로 나란 것도 부정할 수 없어.
그런 주제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PIVOT!!!!!!!!!!!!!!!!!!!!!!!!!!!!
한 사이클 돌고 나니 강산이 변한 건가
2017년 9월에 개인사업자로 엘디프를 시작하고 2018년 9월에 법인사업자 엘디프 주식회사를 등록했으니 엘디프라는 것을 창업한지는 7년이 다 되어가. 시쳇말로 강산이 변할 시간은 아직 안 지났지만 우리 강산 변하는 속도가 워낙 빨라졌으니 일단 10년 겪었다고 치고 얘기해볼게.
내가 처음 창업했을 때는 아티스트의 작품 저작권을 이용해서 아트포스터를 만들어 판매하는 시장이 거의 전무했던 것 같아. 아주 고가의 판화가 있었다면 최저가 전쟁이 치열한 인테리어 액자 시장이 있었지. 중간 가격이 비어있었고 우리는 정통 판화는 아니면서도 고퀄리티의 아트포스터를 만들어서 비어있는 시장에 진입했었어. 처음에는 현재의 '엘디프 오픈에디션'에 해당하는 아트포스터 브랜드만 갖고 있다가, 인연이 되려면 될 것이었는지 우리들의 월드스타 김선우 작가님과 미팅을 하면서 선우 작가님이 '한정판 에디션을 만들고 싶다'한 의견이 적극 반영되어 한정판+캔버스 인쇄+에디션 카드를 골자로 하는 '엘디프 콜렉터즈에디션'이 생겨났지. (Shout out to 선우킴!) 처음 브랜드명은 '엘디프 럭셔리에디션'이었는데 지금의 엘디프 공동대표인 나현수 선배님(실제로 고등학교 선배님)이 엘디프에 합류하게 되면서 여러 아이디어들을 논의했고 '콜렉터즈(collectors 혹은 collector's)'라는 브랜드명이 채택되었어. 자연스럽게 정통 판화보다는 저렴하지만 그래도 가격대가 꽤 있는 시장에도 참여하게 되었지.
경험도 지식도 센스도 없이 막무가내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좋은 작가님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우리 회사는 서서히 성장했어. 2019 London Design Fair(런던디자인페어), 2022 Design London(디자인런던) 같은 해외 박람회에 두 번이나 참가하면서 K-ART를 해외 시장에 소개하기도 했지. 모두들 집콕하던 코로나 시기에는 인테리어 시장이 호황이라 꽤 좋은 성적도 나왔었지만 2022년 하반기부터는 '어라어라 잠깐만...?' 싶은 시간도 보내면서 호황과 불황도 경험해봤어. 그 사이에 '엘디프 더굿즈'라는 인테리어 오브제 브랜드도 새로 생겼고, '엘디프 오리지널'이라는 원화 브랜드도 만들어냈어. 원화까지 도달하게 되니까 꽤 기분 묘하더라고. 시골쥐가 상경해서 대기업에 취직한 느낌이랄까? 대기업하니까 자랑 좀 해야겠는데 롯데월드, LX하우시스, 카카오메이커스 같은 큰 회사랑 일도 했었네.
이젠 아티스트와 콜라보 안 하는 회사가 없고(덕업일치 No.3에 이거 관련해서 주절거려놨어), 아티스트 작품으로 상품 만들어서 파는 회사들도 정말 많아졌어. 명화 프린트나 해외 프린트만 취급하던 회사들도 아티스트와 협업해서 아트포스터를 만들고 있는 경우도 많아졌고, 마플 같은 굿즈 제작 플랫폼이 폭발적인 성장을 한 것도 그 방증이지. 무엇보다 2015년 처음 시작한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가 이제는 붐비다 못해 기차놀이를 해야하는 초인기 박람회가 되었다는 점은 아트포스터 시장, 좀 더 나아가서는 상업 예술 시장이 그 동안 꽤나 커졌다고 봐야 할 중요한 현상인 것 같아.
엘디프도 그리 대단하진 않지만 그래도 한 사이클 신명나게 놀았다. 강산이 변해가는 걸 보면서 말야.
보이지 않는 손님을 영접하다
나 사실 대학 입학할 때는 경영학과로 입학해서 경제학에서 약간의 재미를 느꼈는데 회계원리에서 손절 치고 고등학교 내내 내 마음 속 1순위 학과였던 정치외교학과로 전과했었어. 정외과 공부하다보니 경제학에 대한 재미가 또 올라오기 시작해서 경제학과까지 부전공을 하려했지만 미시경제학에서 뚜까맞아서 정외과만 전공하고 졸업했지. 내가 경험한 경영학과 경제학과는 물론이고 정치외교학과에서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성경급 위상을 가지고 있는데,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올라가고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내려가면서 시장은 스스로 e값(equilibrium, 균형값)을 찾아간다는, 자유시장경제의 복음 같은 거야. 시장 참여자들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보이지 않는 손께서 좌정하사 알아서 다스려주신다는 거지.
그 분이 오신 것 같아. 너무 실시간으로 느끼는 느낌이라 글로 남기기가 좀 두렵긴 하지만 그래도 맞아. 오셨어. 한 아이템을 잡아서 삽질도 해보고 성장도 해보고 수정도 해보고 그렇게 7년을 지내며 강산이 변해가는 걸 보니까 계시가 오더라고. 내가 손대는 일 마다 다 죽 쑤니까, 원래 잘 하던 것도 연달아 실패하니까, 열 받아서 오기로 더 열심히 했더니 더 결과가 안 나오니까. 아무리 내가 무능력해도 이 정도는 아니잖아??? 싶은 거야. 에라 모르겠다 하늘에 대고 짜증을 부렸어. "이렇게 까지 막을 일은 아니잖아요!?"
덕업일치를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은데, 내 생각이 헤쳐모여를 가장 격렬하게 하던 시기가 3~4월인 것 같아. 존버! 피봇? 존버! 피봇? 존버! 피봇? 생각만 겁나게 하다가 어느 날 저녁 결단이 내려지면서 용기가 나더라고. 그 다음 날 회사 일 하다가 판교 현백 '낙원테산도'에서 돈까스 먹으면서 말했지. "우리, 이 '그림'이라는 아이템 정말 열심히 했어. 대단하게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많은 기회들 잡아서 저비용고효율로 잘 돌린 것 같고, 우리 힘이 많이 들어가지 않아도 어느 정도 돌아갈 수 있게 시스템화도 되어서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캐시카우(cash cow)는 만들어진 것 같아. 이제 우리가 첫 발을 내디딘 예술 시장, 긴 시간 동안 파고 파던 K-ART라는 정체성을 베이스로 유지하면서 A 영역이랑 B 영역을 본격적으로 피봇팅 하자. 그래야 시장에서 살아 남을 것 같아."
Pivot?
피봇은 '중심축'이라는 사전적 단어를 가지고 있는데, 창업씬에서는 스타트업이 시장의 반응에 맞춰서 기존의 비즈니스 전략이나 방향을 변경하는 것을 피봇(pivot)이라고 해. 처음의 피봇이 맞았더라도 시장은 살아 숨쉬기 때문에 언제나 기업에게 변혁을 요구해. 그래서 스타트업은 피봇을 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거나 새 제품을 만들어서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 스타트업은 규모가 작지만 역동적으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여러가지 가설들을 테스트하면서 생존 방법을 찾아내는 거야. 내 삶 속에 깊숙이 침투한 Youtube가 시작할 때는 데이팅 웹사이트였는데 지속적인 피봇팅을 통해 지금의 사업모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피봇의 대표적인 예시가 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