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엄청 새롭진 않다는 게 함정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사실 엄청 새롭진 않다는 게 함정
뭐 되게 대단한 피봇팅을 한 것 같지만 사실은 작년부터, 특히 올해 초반에 내가 입버릇처럼 말했고 추진해왔던 내용이기는 해. 나는 태생이 투머치토커인데다가 투머치띵커(too much thinker)인데 작년부터 공동대표 선배님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한 말이 있어. "a가 잘 팔리니까 a를 A라는 브랜드로 만들어서 엘디프랑 상관 없는 별개의 홈페이지도 만들고 굿즈도 만들고 그 자체로 새로운 사업으로서 A를 해야 해. 내가 봤을 때 이건 꼭 해야되는거야. 근데 선배가 주축이 되지 않으면 할 수 없어. 선배가 먼저 의지를 갖고 이런 거 저런 걸 꼭 해줘야 해. 그거 하는데 필요한 거 있으면 엘디프 돈으로 다 할테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말만 해. 마음의 준비가 되면 알려줘.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선배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한테 돈 주고 맡기더라도 꼭 하자. 그 이후로 일 벌리는 건 내가 아주 칼춤을 춰줄게."
그리고 올해가 땡 하자마자 이런 말도 주구장창 해댔어. "우리 멤버 b가 이런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거 바탕으로 B를 하나의 사업으로 만들고 키워야 돼. B가 속한 시장 자체가 규모가 크고 무체물로 결과물을 거래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큰 부가가치를 낼 수 있을 것 같아. 혹시 몰라서 b랑 얘기 해보니까 아주 의지가 있어. 그래서 내가 그걸 사업화 할 수 있도록 공고를 열심히 뒤지고 있고 곁다리로 껴서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지 알아보고 있어. 사업 하나 따내서 올해 한 번 해보는 게 나의 목표야. 한 번 해보고 더 키울지 말지 결정하자."
늘 해왔던 일, 늘 함께 했던 멤버의 능력을 바탕으로 확장이 되는 것이긴 해서 엄청 새롭진 않아. 그런데 그거 알아? 발 담글 시장 자체가 조금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엄청 새롭다는 거.
그렇지만 새롭다면 새로운 피봇팅
바로 지난 덕업일치 No.5 <보수적이고 비판적인 자기 평가의 힘>에서 토스 창업자 분 스토리를 잠깐 거론했었는데 그 분 말씀이 나한테는 되게 인상적이었나 봐. 오늘 한 번 더 거론해야 될 것 같아. 그 분은 토스라는 아이템을 만나기 전까지 하도 실패를 많이 해서 뭘 해도 잘 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대. 팀원들에게도 "이게 잘 되지 않을 수 있어, 그렇지만 해보자." 이렇게 말했다는 거야. 내 마음 상태가 참 그렇다.
나 원래 뭘 시작할 때 구름 사이로 삐져나온 황금빛 찬란한 햇살이 나만 조명해 주고 있는 듯한 붕 뜬 기대감으로 시작하는... 극한의 N이거든. 그런데 이 바닥에서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얼차려 받다보니까 사업이라는 것이 참 만만치 않고, 내가 해왔던 모든 것들 중에서 두 번째로 어렵고(첫 번째는 육아), 늘 예상할 수 없는 위험과 기회가 동시에 도사리고 있는 긴장감 넘치는 정글 탐험이라는 생각이 박혔나 봐. 스스로 새로운 정글을 파헤치자는 결정을 내리면서도 '나는 왜 일평생 사서 고생할까, 고생이 취미인가, 언제쯤 성공할까, 그런 게 있기는 할까' 투덜거리기도 해. '그래도 해보자, 잘 안 되더라도 일단 해보자, 어려움은 어김없이 또 올 것이지만 어떻게든 새로운 정글에서도 살아날 방법을 찾아내 보자.'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문장 자체가 나에겐 아주 새로워. (아, 아무도 안 읽고 있는 거 알긴 하지만 노파심에 몇 자 더 적자면, 내가 토스 창업자랑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고 해서 토스 창업자처럼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이런 느낌이 든다고 해서 뭐 내가 들뜨거나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거나 그런 건 아니라는 건 겸손하게 적어 놓을게!)
기존 사업이 실패를 한 것도 아니고 기존 사업을 버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피봇팅'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게 되어서 같아. 여태까지는 기존 사업의 자연스러운 확장이 이어져서 현 상태가 된 것이라면 이번에 우리가 새로 도전하는 일들은 기존의 흐름을 뛰어 넘어 우리 손으로 우리 운명의 길을 좌우로 돌려보겠다고 선언해버린 것 같다고 말하면 이 긴장감이 전달될까.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간 길인데,
늘 새로운 길, 그게 결국 나의 길인가 봐.
동주들에게
오늘은 이렇게 긴장하는 내 마음만 늘어놓다 가네. 서론도 본론도 결론도 없는 이런 글들이 쓸 때는 정신 사나운데 한참 시간이 지나서 읽다 보면 다른 글보다 더 재밌더라고.
아까 내가 글 시작할 때 마지막 회사 퇴사한 이후로 지금까지 카톡 프로필에 수정 없이 게시해 놓은 글이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이라고 한 거 기억나? 늘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기회,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세상의 모든 동주들아. 오늘 나랑 같이 이 시 읽고 툭툭 털고 또 걸어보자! (2024. 5. 2.)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1938. 5. 10.)
라무 - 별로 가는 길
덕업일치 Issue No.6의 커버로 선보인 작품은 엘디프 라무 작가의 <별로 가는 길>이다. 라무 작가는 엘디프의 초창기부터 오랫동안 함께 해 준 고마운 작가 중 하나이다. 신규 계약을 할 때 온라인으로 계약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했음에도 작가는 시간을 내어 직접 엘디프 판교 사무실로 찾아와 주었고 얼굴을 마주하고 계약을 했던 기억이 있다. 밝고 긍정적인 표정이 작가의 그림과 참 닮은 느낌이었다. 다행히 작가도 엘디프와 함께 하게 된 계기가 엘디프가 주는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느낌이었다고 하니 초록은 동색인가보다. 이 작품은 작가가 수채화로 고흐의 그림을 재해석하는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 시리즈 중 하나이다. 이젤을 한 팔에 끼고 화구 가방을 들고 콧노래를 부르는 듯 별 사이를 지나가는 고흐의 여유로운 표정은 무겁고 고단했지만 늘 희망을 가졌던 고흐의 인생 여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비단 사업가 뿐이랴, 아티스트를 비롯한 모든 진취적인 '직업인'들은 다들 사서 고생하지 않던가. 우리의 여정에 민들레도, 까치도, 아가씨도, 바람도 이 고흐처럼 눈 살포시 감고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삶의 지혜가 있길 바라본다.
작가 노트 - 별로 가는 길, 27.2x40.8cm, 2018
이 글을 보고 계신 당신! 고흐를 좋아하시는군요? 고흐의 편지를 기반으로 수채화로 재해석한 제 작품들이 마음에 닿았다니, 정말 기뻐요. 감사합니다. 현재 엘디프에서 판매되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 시리즈는 2018작업물입니다. 2016작업물들은 좀 더 '고흐의 고뇌와 고통'에 집중했다면, 2018작업물들은 고흐의 편지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인간적인 따뜻함'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림이 가게 될 모든 곳에 그 따뜻함과 행복이 퍼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