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은돌 Mar 03. 2024

닿을 듯 말 듯 외국어 스트레칭

유연함은 덤이에요

베트남어 수업시간에는 베트남의 지명이 많이 언급되곤 한다. 베트남에 살면서 어떤 관광지를 다녀봤는지, 무엇을 타고 갔으며, 얼마나 걸렸고 무엇이 인상적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줄줄이 이어서 할 수 있기 때문에 타오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베트남어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질문인 것 같다. 수업에 참석한 여러 나라 학생들의 대답을 들어보면 어느반에 가든지 모두 다른 지명을 이야기하는데, 그만큼 베트남의 관광지는 너무나 많다. 신기한 것은 학생들의 국적에 따라 조금씩 선호하는 관광지가 다른 것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느끼기에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서 한국 사람들은 조금 더 리조트 위주의 관광지를 선호하는 것 같다.


주로 대답으로 나오는 지역은 오래전부터 사랑받아 온 하롱베이를 비롯해서 하노이, 호치민(사이공)과 같은 대도시, 그리고 그 주변의 관광지들이다. 또 다낭, 푸꾸옥, 냐짱(나트랑)과 같은 휴양지도 많이 나오는 지명 중 하나이다. 그중에 냐짱(나트랑)에 대해서는 조금 남다른 기억이 있는데, 관광지로서의 기억이 아닌 그 명칭에 대한 기억이다. 처음 베트남에 왔을 때 이곳을 냐짱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나트랑이라고 해야 하는지 망설였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수업시간에는 냐짱이라고 배웠는데, 막상 말을 할 때는 나트랑이라고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지금은 원래의 베트남 발음대로 냐짱이라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발음을 망설이고 있던 기간 중에 한국에서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니고 나서 베트남에 있는 우리 회사에 취직한 한 베트남 직원이 한국어로 물었다. "법인장님, 나트랑에 가보셨나요?", "엥?" 나는 다소 놀라웠다. "아니, 왜 냐짱이라고 안 하고 나트랑이라고 말해?" 나는 베트남 직원에게 되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나트랑이라고 하잖아요." 한국 사람인 나를 생각해서 일부러 틀린 발음을 한 것이었다. 외국인이 인천을 인체온이라고 발음할 수는 있어도,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인체온이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나에게는 베트남 사람이 냐짱을 나트랑이라고 발음하는 것 자체가 이상해 보였다.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는데, 나트랑이 아니라 냐짱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더라도 한국 사람들이 냐짱이라는 발음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나도 그러긴 했는데, 왠지 냐짱이라고 하는 발음이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발음값과 달라 보여 어색했기 때문이다. 베트남 알파벳 중 하나인 "TR"은 T와 R이 아니라 TR이라는 하나의 자음이다. 베트남 글자는 신기하게도 로마자(라틴 문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베트남 알파벳에서는 A, B, C, D처럼 TR도 하나의 글자로 되어있다. 이는 쌍지읒 발음과 비슷한 음가를 갖는다. 그래서 베트남어로 Nha Trang은 나트랑이 아니라 냐짱이 된다. 하지만 한국사람들(다른 나라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은 이를 발음하기 어색해한다. 아마 오랫동안 배워 온 영어식 알파벳의 영향을 받아서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비슷한 예는 많이 있다. 특히 베트남 사람의 이름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회사의 베트남 직원 중에 Tam이라는 이름을 가진 직원이 있다. 벌써 5년 넘게 우리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데, 한국 본사에서는 항상 틀린 발음으로 Tam을 부르곤 한다. 영어로 배운 알파벳을 머릿속에 넣고서 직관적으로 이 글자를 봤을 때 '탐'이 되어야 할 것 같지만, 베트남 발음으로는 '땀'이 맞는 발음이다. 마음이라는 멋진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인데, 한국 본사의 직원들에게 아무리 땀이라고 발음을 알려줘도 늘 탐이라고 부른다. 아마 땀이라는 베트남 발음 자체가 어색하거나 영어에 비해 촌스러운 느낌이 나서 그럴 수도 있다. 이제 매니저인 땀도 포기해서 본사에서 출장 온 사람이 탐이라 부르면 알아서 반응을 해주고 있다.


이처럼 언어는 어떤 고정관념을 우리의 머릿속에 심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여러 언어를 배워서 다양한 생각들을 키워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이 너무 많아서 자꾸만 예를 들게 되는데, 한 번은 회사의 윗사람이 Paris라고 쓰인 박스를 보더니, '아니 프랑스 사람들은 왜 파리스라고 쓰인걸 파리라고 읽는 거야?' 라며 의아해하길래, 그게 아니라 Paris라고 되어 있는 프랑스 글자를 미국 사람들이 자기식으로 읽은 거라고 얘기해 주었더니 도저히 이해를 못 하는 경우를 보았다. 이분은 모든 알파벳은 영어식으로 발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러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은 보다 유연한 사고를 하게 될 확률이 높은 것 같다.


베트남 알파벳_ 영어식 알파벳과 비슷하지만 생소한 글자와 두 개의 자음이 합쳐진 듯한 글자도 볼 수 있다.


과거 경영학 수업을 들을 때 회사의 비전에 대해 공부해 본 적이 있다. 비록 당장은 도달할 수 없지만 회사가 지향하는 곳을 비전으로 정하는 것이 좋은 방식이라는 것이다. 즉, 지금 당장은 내 손끝이 닿을 수 없는 곳이지만, 계속하여 스트레칭하고 유연성을 키우다 보면 결국에는 도달할 수도 있는 지점 정도를 비전으로 삼는 것이 좋다고 설명한 교수님의 부연 설명을 기억한다. 그러니 좋은 비전을 세우면 회사 구성원은 도달하고자 시도할 것이고, 비록 그 지점에까지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시도하는 그 과정에서 생기는 유연함이라는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베트남어도 마찬가지이다. 당장은 내가 유창하게 사용할 수 없겠지만 할 수도 있는 정도를 목표에 두고 계속하여 스트레칭하듯 노력하면 가능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생기는 생각의 유연함은 베트남어를 마스터하지 못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성과가 될 것이라는 희망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전 02화 직장인이 다니는 베트남 어학당의 풍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