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자리에 앉으세요." 난 통역 직원 투(Thu)의 입을 빌려 면접을 보러 온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한 날씬하고 똑똑해 보이는 남자가 내 맞은편의 검은색 인조 가죽으로 된 의자를 당겨 앉았다. 청바지에 흰색의 폴로셔츠를 입은 그는 긴장한 듯 보였지만 나와 통역 직원에게 작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뿔테 안경을 한번 만지작 거리더니, 두 손을 나무 테이블 위로 모아 내가 할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
"이름이 르엉(Luong)맞나요?"
"네, 맞습니다."
"반가워요. 우선 자기소개 먼저 해볼래요?" 호치민 법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졸업 후에 법무법인에서 반년째 인턴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장래에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었고, 기업 입장에서의 근무 경력이 그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면접에 오기 전, 우리 회사의 사업 내용에 대해서도 많은 준비를 했고, 심지어는 내 SNS에서도 많은 정보를 파악한 채 들어와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 회사에 다니면서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고 싶은 건가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업무에는 지장을 주지 않고 공부할 수 있습니다."
"이건 어때요? 근무 경력이 어느 정도 생긴 후에 결정하긴 하겠지만, 변호사 취득 후에도 일정 기간 회사에서 근무하는 조건이라고 하면, 회사가 시험 준비하는 것을 도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너무 감사하죠. 회사에서 도움을 주시면 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네, 오늘 면접에 와줘서 고맙고, 이번 주 중으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면접을 마쳤다. 이것이 5년 전, 법대 졸업생 르엉(Luong)과의 첫 만남이었다. 면접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악수를 하던 그의 얼굴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는 합격할 것임을 예감했고, 나도 악수하며 잡은 그의 손에 확신을 심어 주었다.
7년 전, 한국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나는 베트남 법인으로 파견받아 나왔다. 설립한 지 5년이 넘은 공장을 운영하는 해외 현지법인이었는데, 현지에 진출한 지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산 능력의 10% 정도만 가동하고 있는 공장이었다. 더 생산하려 해도 당장 매출할 수 있는 거래처가 없었다. 본사에서 볼 때는 그저 그룹의 골칫덩이인 공장이었다. "거기에 가면 돌아오지 못 할 수도 있어." 직장의 친한 동료들은 나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기도 하던 그런 곳이었는데, 결론적으로 난 그 법인의 책임자가 되었다.
책임자가 되자마자 판단했다. 공장을 돌릴 수 있게 우선은 매출처를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영업을 중심으로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100명이 훌쩍 넘는 현지의 직원이 있지만, 한국의 본사에서 운영하는 같은 사이즈의 다른 공장들과는 달리 한국에서 온 내부 관리자나 생산 책임자도 따로 없었다. "가서 법인 상태 확인해 보고, 가망 없는 것 같으면 청산 쪽으로 의견을 보내던지 해봐." 베트남 법인의 책임자가 되기 전, 본사의 한 임원이 나에게 해준 말이었다. 그 정도로 실적이 바닥이었던 회사에 나오게 되었다. 나 혼자만 한국인이었고, 100명이 넘는 현지의 직원들과 함께 회사를 운영해 나가야만 했다.
공장의 가동률을 높일 수 있도록 영업을 우선으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일주일에 3, 4일은 집을 비운채 영업부 직원, 그리고 통역직원과 함께 베트남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하루에 4, 5시간, 심하면 10시간 이상 차를 타고 다니며 거래처들을 만났다. 그나마 도로가 포장되어 있으면 감사했고, 시골길을 다니면 허리가 다 아픈 그런 이동이 많기도 했다. "법인장님, 안 피곤하세요?" 조수석에 앉아 내가 있는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린 통역 직원 투(Thu)가 물었다. "나보다 운전기사가 더 피곤하겠지. 넌 어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떤 때는 차라리 내가 차에서 자는 동안 다른 차가 우리를 박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병원에 가서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1년, 2년이 지나며 거래처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들의 주문에 힘입어 공장은 생산 능력의 50%를 넘긴 가동률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직원들은 더 늘어나 있었고, 업무는 더 많아졌다. 더 커진 조직에 맞는 인원을 확보하느라 각 관리 부서의 직원들, 그리고 영업 부서의 직원들을 뽑기 위해 사무실에 있는 날은 면접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내부에서 서류를 확인해야 할 사람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률팀을 만들어서 각 부서의 서류를 검토하게 만들어야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날 총명해 보이는 르엉(Luong)과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는 실제로 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