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느닷없었다. 아무런 언급조차 없이 맞닥뜨리게 된 상황이었으니까. 이날 아침, 공안의 청사에 방문해 공안국장을 만났다. 한국으로 치면 경찰서장과 같은 직책과 만나는 중이었다. 그에게서 사건의 진행 상황을 듣던 중에 내 오른편에 있던 공안국장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생각 없이 마주친 그의 눈. 이 갑작스러운 대면에 나는 분노와 안심, 좌절과 패배, 그리고 승리와 허탈한 감정 같은 것들이 마구 섞인 상태가 되었다. 융(Dung)과 르엉(Luong). 그들이 이 문으로 들어왔다. 둘 다 고개를 숙인 채 교도관의 손에 이끌려 내가 앉아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융(Dung)이 먼저 들어와 내 앞에 마주 앉았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나는 가슴이 떨렸고 주체할 수 없을 것만 같다. 통역으로 들어온 여자 공무원이 내 어깨를 손바닥으로 살며시 눌렀다. 뒤이어 들어온 르엉(Luong)은 사무실로 들어오는 그 작은 문을 다 통과하지도 못한 채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그는 안경을 벗었고 팔뚝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 녀석의 가식적인 가여움이 눈앞에 펼쳐졌다. 난 그러지 않으려 하는데,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내 눈이 붉어졌고, 난 그에게 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호치민의 시내 카페에서 리우(Lieu)와 만나 희망의 미팅을 가진 지도 이제 1년이 지났다. 이곳에서 나는 우기를 지나 건기를 보냈고, 이제 또 새로운 우기가 돌아왔다. 그 사이 모든 것은 다시 희미한 구름 속으로 들어간 듯 지지부진했다. 영사관의 도움도, 한국 대사와의 미팅도, 현지 국회의원의 지원도 모든 것이 다 희망적이나 결론이 없었고, 그저 노련한 핑퐁 플레이어들의 경기처럼, 누구도 이기지도 지지도 않은 채, 공만 오가고 있었다. 나는 법원, 검찰 또 공안을 다니며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으며, 다들 그저 일상의 일을 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모든 것이 언제 그랬냐는 듯 회사의 매니저들은 원래 그들의 업무로, 본사는 본래의 본사 역할로, 나는 나의 원래 업무에 법률 업무가 하나 더 늘어난 것과 같아졌다. 이 비정상의 상황이 일상이 되어버리고 있었다.
감기를 지닌 채 살아가는 일상.
나는 회사의 업무를 마치고 광야 로펌으로 가서 미팅을 하고, 전에 작성한 것과 비슷한 서류를 작성한다. 이렇게 1년이 넘게 지나가고 있다.
그러다 이번 일요일 아침. 리우(Lieu)에게 걸려온 전화.
"법인장님, 지금 바로 회사로 나올 수 있나요?" 다급한 목소리였다. 다급함과 희망이 묻어있는 말투다. 그녀와 오래 일을 해서 난 그녀의 말을 더 깊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리우(Lieu)는 회사로 나올 때 내 차를 타면 안 된다고 했다. 운전기사에게 말하지 말고 택시를 타야 한다며 회사를 비롯한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나는 그랩(Grab) 어플을 켜고서 바로 택시를 잡았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예상 시간이 표시됐다.
[왜 무슨 일이에요?] 그랩으로 부른 회색의 이노바 뒷자리에 앉자마자 리우(Lieu)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건이 해결될 것 같아요. 저도 출발했으니까 이따 회사에서 만나요.] 그녀의 문자. 나는 다시 가슴이 뛰었다.
경비실 앞에는 리우(Lieu) 변호사와 두 명의 사복을 입은 남자 공안들이 서 있었다. 나는 그들, 그리고 경비와 함께 사무실로 향했다. 쉬는 날이라서 사무실 입구는 쇠사슬이 채워있고 이 쇠사슬은 커다란 자물쇠로 잠겨있다. 사무동의 불도 다 꺼져있어서 어둡다. 나는 복도의 불을 켠다. 리우(Lieu)는 사무실 문에 걸린 두꺼운 쇠사슬이 신기한지 오른쪽 손바닥으로 한번 무게를 재듯 들어보기도 했다. 이제 경비는 자물쇠를 풀었고 드르륵하고 쇠사슬을 벗겨낸다. 텅 빈 사무동에 울리는 쇳소리는 지난 1년간 닫혔던 문이 열리는 소리인 것 같았다. 우리는 어두운 사무실로 들어왔다. 냉장고 옆의 스위치를 찾아 사무실 불을 켜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생수를 몇 병 꺼내 리우(Lieu)와 공안들에게 나눠주었다. 무언가 희망적인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제 그들, 융(Dung), 르엉(Luong)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다가 대질 심문에서 중요한 증언이 나왔고, 이를 근거로 긴급 체포했다는 설명이다. 현재는 구속된 상태라고 한다. 지난 새벽 내내, 각자 다른 장소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했다. 특히 융(Dung)은 아침 무렵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했다.
리우(Lieu)는 나에게 여기까지 설명한 뒤에 사복을 입은 형사과의 공안들과 베트남어로 무언가 더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공안에게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여기 공안들은 그들이 증언한 내용이 맞는지 그 증거서류들을 찾으러 왔는데, 관련된 부서의 매니저들만 불러들여서 자료를 찾아 복사하면 된다고 한다. 혹시나 지금 병원에 있는 융(Dung)과 연락할 직원이 있을까 봐 비밀 작전처럼 나를 불렀고, 관련 부서만 확인해서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자, 이제 우리 커피 한 잔 할까요?" 리우(Lieu)는 모든 설명을 끝낸 뒤에 바퀴가 달린 사무실의 아무 의자 하나를 끌고 와서 내 앞에 앉더니 이젠 좀 쉬면서 하자고 했다.
"네, 내가 커피 한 잔 타고 있을 테니까 필요한 서류 적어줘요." 나는 우선 총무 매니저인 로안(Loan)에게 문자를 보내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이렇게 오늘, 그들은 잡혔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형사적으로 문제가 생겼다. 죄목은 사기, 횡령, 사문서 위조.
이날의 긴급체포 이후에 검찰로부터 정식 구속 영장이 청구되고 구치소에 들어갔다. 현재는 구치소에서 조사받으며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리우(Lieu) 변호사와 공안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은 최소 15년 이상 최대는 사형까지도 선고될 수 있는 상태라고 한다. 모든 금전적 손해를 복구했을 때가 최소의 상황이고 아무런 복구가 없는 경우는 최대의 상황이다.
다행히 그들은 그 돈으로 토지나 주택과 같은 자산을 매입해 놓았고, 현재 남은 가족들이 이를 매각하여 상환하고 있다. 최대의 형량은 받지 않을 것이지만, 최소도 만만치 않은 형량이다. 중산층 정도의 삶을 살 수 있는 급여가 있었고, 또 한 명은 이제 막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젊은 사람이었다. 도대체 이런 큰 위험을 무릅쓰고 도박을 벌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아이의 아픔? 노모의 봉양? 과연 그랬을까? 그저 인생을 맡긴 큰 도박을 한 번 한 것은 아닐까?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야? 내가 너희들에게 잘해주지 않았어?" 무릎 꿇은 그에게 감정을 눌러 말을 하고 있는데 기침이 섞인 낮은 목소리밖에는 낼 수가 없었다. 기침을 않거나 낮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눈물이 나올 것 같기만 하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법인장님은 저희에게 정말 잘해주셨습니다." 르엉(Luong)이 중간에 몇 번 말을 끊어가며 울음이 가득 섞인 대답을 한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거야? 넌 이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었잖아? 난 너의 앞길이 다 보였는데, 넌 그게 보이지 않았던 거야? 난 이 일이 벌어지고 여러 생각을 해봤다. 혹시 본사에서 내가 한 소리 들은 후에, 그러고 나서 너희가 내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그럴 때 혹시 너희들한테 눈을 찡그린 적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런 이유로 말을 안 좋게 한 적이 있었는지 말이야. 그런 것 빼고 다른 건 생각나지 않았어." 내 말을 통역하던 베트남 여자 공무원이 눈물을 흘렸다. 공안국장은 자기 책상에 있는 티슈를 그녀와 나에게 밀어주었다.
"법인장님! 저는 정말 이게 다 꿈이면 좋겠습니다. 저는 왜 그 일을 한 건지 너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일같이 하고 있습니다. 매일 그날의 꿈을 꿉니다. 이런 생각을 하기 전 날, 아니 회사를 도망치던 날, 아니 법인장님이 모든 것을 없던 일로 할 테니 회사로 들어오라고 문자를 보내던 날. 모두가 후회스럽습니다." 르엉(Luong)은 동그란 안경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계속 눈물을 닦고 있다.
공안국장은 이제 얘네들을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고 했다.
"국장님,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두 개의 검지 손가락으로 양쪽 눈을 만지던 나는 하나만 더 물어보자며 그들이 나가는 것을 잠시 멈춰 세웠다. 공안국장은 그들을 일으키던 교도관에게 멈추라는 손짓을 했다.
"그 일이 터진 날, 그날에 융(Dung)이 자기 집으로 등기 우편을 하나 보냈던데, 내용이 비어있었잖아? 그건 왜 그런 거니? 무슨 이유가 있던 거야?" 사건 초기에 나와 총무 매니저, 그리고 변호사들을 모두 혼란스럽게 했던 그 일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건, 그냥 그날까지 제가 근무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고개를 숙인 융(Dung)이 대답했다. 그 대답은 이 사건을 송두리째 무의미하게 만드는 듯했다. 마치 내가 겪은 이 사건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듯.
서울의 한 카페. '또 오해영'의 OST가 흘러나온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혼자 노래를 듣고 있다. 사건의 경과를 보고하기 위한 한국 방문인데, 약속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본사 근처의 한 카페에 앉아 있다. 여기는 봄. 우기와 건기뿐이던 곳에서, 나는 지금 봄에 앉아 있었다.
날이 따끔하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분다.
약속된 시간. 이제 들어가서 비 오던 나라의 이야기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