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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Nov 19. 2023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진즉에 했다

결단이 필요한 시기

4주간의 신병 교육을 받고, 자대에 배치받던 날. 다행히 신병교육대에서 동기로 만나 친해진, 같은 고향 출신의 동갑내기가 나와 함께 차를 타게 되었다. 이 친구는 이름 세 글자에 동그라미(이응)가 여섯 개나 들어있었는데, 이응(ㅇ)이 이름의 모든 음절마다 두 개씩 들어있어서 발음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거의 간장공장공장장 수준). 그래서 자대에 가서도 선임들이 계속 관등성명을 대라고 하면서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본인이 얘기하기로는 볼펜으로 이름을 쓸 때 이응을 조금 크게 쓰면 귀엽게 된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꼭 안경점 로고 같이 보였다.


아무튼 우리가 탄 트럭에서 중간중간 한 사람 두 사람씩 내리고 나서는 나와 이 이름에 동그라미가 여섯 개인 친구만 남게 되었다. 이 친구와 함께 국방색 포장(갑바라고도 알려진)이 씌워진 트럭 뒷자리에 앉아, 어느 지역에 있는 부대로 가게 될지를 예상하며 도로에 붙어있는 이정표를 보고 있었다. 7월 한낮의 도로는 뜨거웠지만, 한적한 시골의 지방도로를 막힘없이 달리는 탓에 트럭의 짐칸을 덮고 있는 두꺼운 국방색 방수포(갑바라고도 불려지던)의 빈 틈으로 바람이 훵훵 들어오고 있었다.


"이거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네. 이제 포천을 지나고 연천으로 가고 있어. 우리는 최전방으로 떨어지나 봐." 이름에 동그라미가 많은 동기 녀석이 말을 건넸다. 난 그 녀석에게 어찌 그리 지명을 잘 아냐며 칭찬을 해주었다. 나는 포천, 연천이 어디에 붙어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냥 '이 시골 도로를 달리는 트럭이 멈추면, 어떤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까?'라는 생각만 하면서 잔뜩 긴장되어 있었다. "야! 뭐 어디로 가던 시간은 지나가겠지. 너무 걱정하지 말자. 이제 신교대도 끝났는데, 오히려 자대 배치받으면 신병훈련받을 때보다는 조금 편해진다고 하더라. 너도 그만 긴장 풀고, 이거나 한번 피워볼래? 신교대 들어올 때 몰래 숨겨놓고 있던 거야."


이 친구는 나에게 '겟투'라는 보라색 포장의 담배를 건넸다. 한 달 동안 어디에, 어떻게 숨기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꼭꼭 숨어 겨우겨우 지내고 있었다는 것은 그 형태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담배는 잔뜩 압축되어서 원래의 원통 모양 담배 개비가 아니라 거의 마시마로의 찢어진 눈처럼 납작한 형태로 변해있었다. 그것도 담뱃갑에서 꺼내는 것마다 옆구리가 터져있어서 온전한 형태의 담배를 찾느라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나는 모서리가 둥글게 각져있지만 옆구리가 터지지 않은 담배를 한 개비 넘겨받았다. 그리곤 양 손바닥 사이에 끼워 넣고서 빙빙 돌려 다시 동그랗게 모양을 만들고, 필터 부분을 트럭 바닥에 탁탁 쳐서 맛있게 피울 수 있는 준비를 했다. "진짜 오랜만이네. 안 그래도 너무 긴장됐는데, 고마워." 난 아무런 망설임이나 죄책감 없이 홀랑 그 담배를 받아 들었다. 군대에 가면 어차피 갇혀있게 되어 끊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스스로도 끊겠다고 다짐을 하고 들어왔으니 조금의 미안함이라도 느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처음 신병교육대에 들어가게 되면 한 달의 훈련 과정을 거치는 중에 담배나 술을 할 수 없다. 그래도 이때는 금단 증상이 왔었는지 아니면 없었는지 알 수도 없을 만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시달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른 채 금연과 금주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담배나 술 생각보다는 '우리 아버지는, 그리고 삼촌들은 이 힘든 군생활을 어떻게 하고 나온 거지?' 또 '저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경규, 김국진 같은 사람들도 나와 같은 과정을 거치고 저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심지어 웃으면서 지내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들을 하며 보냈다. 그들 모두가 존경스러웠다.


이렇게 지내면, 반드시 효도하고 술도 끊고 담배도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신교대 훈련 기간인 한 달 동안 생각하며 지냈던 것 같다. '노땐쓰(윤상과 신해철의 프로젝트 그룹)'의 '달리기'라는 노래도 머릿속으로 얼마나 불러댔는지 모른다. 군대를 다녀온 윤상이 불러주는 노랫말처럼 어떻게든 이 지겹고 힘든 생활이 끝날 거라고 생각하며 한 달을 버텼다. 그리고 자대 배치를 받던 날, 트럭 안에서 동기가 준 겟투 담배를 받아 피우는 순간 다시 처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인 것처럼 머리가 핑하고 돌았다. 이처럼 한 달이라는 금연 기간을 지켰던 나는, 이 한 개비를 통해 담배 중독이었던 이전의 상태로 곧바로 리셋되었다.



'군대에 온 김에 이제 끊어보자.'라는 생각을 하며 입대했다. '경험상 1년 정도 피워봤으면 됐다. 이제 그만하자.' 웃기는 소리였다. 나는 중독자였고, 내 마음대로 쉽게 끊을 수 없었다. 제일 처음 담배를 시작했을 때 몇 번은 좋은 기분을 느껴서 피우게 되지만, 그 이후에는 다른 이유로 담배를 피우게 된다. 중독된 이후엔 담배를 피우면 평상심을 가지게 되고, 피우지 않으면 평상심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없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피우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불안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고, 오직 담배를 피워야 되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해진다. 불안을 느끼지 않기 위해 억지로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어있는 구조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잠들기 전에도, 또 휴식할 때마다 항상 담배를 피우며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고 있었다. 단지 불안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어처구니없게도 원래 정상이었던 몸의 상태를 담배를 피워야만 정상으로 돌아오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쉼 없이 음식을 먹는데 계속해서 배가 고픈 상태라고 해야 될까? 절대 만족스럽게 채워지지 않는 의미 없는 행위만 반복만 할 뿐이었다.


자대배치 이후엔 매달 개인별로 보급 담배 '디스'가 지급되었다. 시중에서 파는 것과 같은 것이었고, 담뱃갑 상단의 은박지 가운데 부분에는 국방부 문양이 찍여있었다. 우리 포대의 100명가량 대부분은 담배를 피웠지만, 평균적으로 그중 10~20% 정도는 비흡연자들이었다. 하지만 행정반에서는 그들도 모두 흡연자로 기록하여 본부에 제출하고 매월 서류상 흡연자로 보고한 숫자만큼의 보급 담배를 할당받아 각 내무반에 배급해 줬다. 그리고 그 비흡연자를 흡연자로 보고하여 남게 되는 담배는 선임들끼리 나눠 피우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보급 나오는 담배는 항상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보급 담배가 떨어지면 PX에서 추가로 담배를 사야만 했다. 1만 원도 되지 않던 나의 소박한 월급은 이렇게 담뱃값으로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한편, 군대에서 담배를 나눠준다는 것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국가에서 인정해 주는 정상적인 활동에 나도 동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또 어이없게도 어차피 신청된 거 그냥 피우겠다고 하는 흡연자(군대 오기 전에는 비흡연자)들도 발생하게 된다.


항상 부족하던 담배를 사기 위한 돈까지 다 떨어져 버리면 담배를 피울 수가 없다. 선임들은 후임들에게 빌려서(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실제로 다시 갚아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며칠 피우기도 하지만, 짬밥이 없으면 이마저도 어렵다. 그러면 쉬는 시간에 재떨이 주변을 돌며 조금이라도 기다란 담배꽁초(일명 장초)를 찾아 헤매기도 한다. 그런 장면을 보기도 하고, 내가 직접 하기도 했다. 비참하다. 조금이라도 기다란 담배꽁초 두 개를 찾으면 나름의 수술을 통해서 온전한 것과 비슷한 담배 한 개비를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일과 시간 이후에 내무반 막사 뒤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수술하고 있다 보면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짓인가?' 하는 현타 시간이 찾아온다. 특히나 겨울에 꽁꽁 얼어 새카맣게 갈라진 양손을 입으로 불어대며, 또 콧물을 닦아내기도 하며 0.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정밀하게 담배를 붙이고 있던 내 모습은 정말 거지새끼나 다름없어 보였을 것이다. '다시는 이 짓거리하지 말아야지, 내가 기필코 이번엔 끊어보겠다.' 이런 다짐을 한 게 한 달에 한 번씩이었다. 그렇게 매월 다짐만 하며 26개월의 군생활을 보냈다.


군대에 오면 담배와 술을 끊게 될 줄 알았다. 군생활 내내 담배를 끊어서 사회에 나가겠다고 다짐하였으나, 남이 피우던 담배꽁초를 찾아다니는 나를 보며 중증에 다다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술도 마찬가지였다. 계급이 올라갈수록 술에 대한 접근도 쉬워졌다. 이처럼 술과 담배는 절대 쉬운 녀석이 아니었다. 결국, 아무리 군대에 갖다 놓아도 외부의 강제로는 끊을 수 없었다. 군대에 갇혀 강제로 끊어질 수 있는 환경에 놓였음에도 스스로의 결단이 없이는 어려운 것이다. 하긴 어떤 일이라고 강제로 될 수 있을까? 

오히려 모든 환경이 나의 결단, 내 의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금주 24일 차. 회식을 많이 줄였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그간 불필요한 회식을 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대신 요즘에는 헬스장에 자주 다니고 있다. 뿌듯하게도 일주일에 3~4번은 간다. 러닝 머신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면서 시간이 가버리기 때문에 술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하프마라톤을 신청해 보는 건 어떨까 생각 중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금주 관련된 책도 열심히 찾아서 읽고 있다. 사실 내용은 여러 번 들어본 것들이라 알긴 하는 것이고, 인터넷 찾으면 다 나오기도 하는 정보들이긴 하지만 그냥 이런 것들을 옆에 두고 관심 있게 보기만 해도 도움이 된다. 헬스 유튜브를 계속 보면 어느 날 헬스장 앞에 서있는 나를 보며 놀라게 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그간 소주 한 병에 7~8천 원씩(베트남에서 팔리는 한국 소주 가격) 일주일에 몇 병을 마셨는데, 몸에 도움을 주기 위한 전자책 몇 권 못 살까?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벌써 네 번째의 연재 글을 발행하게 되었다. 뿌듯하다. 여기저기서 술 잘 끊었다며 칭찬하는 소리가 들린다. '와! 대박이다. 그 어렵다는 술을 끊다니.' 누가 이렇게 실제 칭찬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마음의 소리로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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