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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Oct 29. 2023

넌 나의 친구가 될 줄 알았지

술담배와 만나고 또 헤어지던 날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하루라도 함께하지 않은 날이 없었던, 예전의 내 사랑이자 친구 같은 존재였으며, 또 실제로는 원수였던 담배 이야기를 해보자. 우선 학창 시절부터를 떠올려야 할 것 같다. 평범하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말이다. 평균 키와 평균적인 몸무게, 그리고 성적마저도 평균이었던, 나의 그 시절에서 그래도 평균보다 나은 것 하나를 꼽자면, 행동거지 하나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들 중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또는 중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우던 애들이 있었지만, 난 미성년자였던 그 시절 내내 절대 피워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에 처음으로 담배 맛을 보게 되었다. 목이 컥컥 막히고, 정신이 살짝 나갔던 것 같다. 이걸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 담배라는 녀석은 처음 몇 번의 기분 좋은 경험 이후로는 사실상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놈이었다. 그 후로는 악착같이 끊어보려고 수십 수백 번을 노력해도 절대 떨어지지 않고 나에게 끈적대며 질척거리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담배와의 첫 만남이 기억난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에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시내 한 커피숍에서 약속을 잡았다. 학교마다 축제가 있던 5월이었으니까 아마 살짝 얇고 긴 티셔츠나 가벼운 재킷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주말 오후에 시내에서 약속을 잡고 각자의 대학교 생활이 어떤지 한번 모여서 얘기 좀 하기로 했는데, 사실 커피숍에서 만나 잠시만 이야기를 나누고 바로 자리를 옮겨 술집으로 넘어갈 계획이었다. 복잡한 시내 한 건물의 계단을 뛰어올라 2층에 위치한 커피숍의 두꺼운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최신 유행하는 노래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당시엔 아마 솔리드나 R.ef 같은 가수들의 노래가 나왔을 것이다.


"와, 너희들 진짜 오랜만이네!" 나보다 10분 정도 먼저 도착해서 커피숍의 제일 구석진 자리 소파에 앉아있던 친구들과 몇 개월 만에 인사를 했다. 소파 앞의 나무로 된 테이블은 두꺼운 투명 유리로 덮여있었는데, 유리판 안쪽으로는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의 볶은 커피콩들이 가득 담겨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테이블 위로 노란색의 둥그스름한 플라스틱 전화기가 올려져 있었고, 친구들이 이미 시켜놓은 커피와 티스푼, 그리고 유리로 된 각 진 재떨이가 놓여있었다. 기다란 패브릭 소파에 앉아있던 3명의 친구들은 테이블 위에 담뱃갑을 올려놓고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테이블 위에는 서로 다른 3가지 종류의 담배가 올려져 있었는데 나도 대학교 친구들이 피우는 것을 봤기 때문에 익숙한 담뱃갑이다. 당시에는 담뱃갑에 경고문구 같은 건 없었고, 그저 어떤 담배 브랜드가 더 예쁘게 디자인하는지 경쟁하듯 깔끔한 외관을 자랑하곤 했다. 종업원에게 커피를 주문하고 삐삐를 확인한 뒤에 테이블에 올려놓고 있던 나에게, 한 친구가 검은색 담배를 하나 꺼내 권한다. "이거 '포인트'라는 외국 담밴데 구하기 진짜 어려운 거야. 너도 한번 피워봐." 그러게, 이건 처음 보는 담배였다.


'언젠가는 피우겠지.'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언젠가가 오늘이 된들 무슨 상관이랴? '이미 난 대학생이고, 지난 몇 달 동안 술도 진탕 마셔봤는데, 담배도 시작할 수 있는 거겠지.'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검은색 종이에 싸여있는 담배 한 개비를 친구에게 받아 왼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넣고 오른손으로는 커피숍에 비치된 라이터로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어힛! 그렇게 하면 불이 안 붙지. 입으로 담배를 빨면서 불을 붙여야지. 한번 봐봐. 이렇게 연기를 들이마시면 돼." 포인트라는 담배를 권해준 친구의 설명과 시범을 따라서 나는 불을 붙이며 숨을 슉하고 들이마셨다. "켁켁.", "야! 이거 뭐야?" 기침을 계속 한 뒤에 컥컥 대며 패브릭 소파에 누웠다. 살짝 몽롱한 기분이 든 것 같았다. 몸이 살짝 뜨는 느낌도 났다. 나쁜데, 좋은 느낌. 내가 맛 본 담배의 첫 느낌이었다.


중독이 된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현상이 없었고, 다음날에도 아무렇지 않게 학교에 다녀왔다. '난 중독되지 않고, 조절이 가능한가 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다. 며칠이 지난 뒤에는 내가 중독이 된 건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주민등록증을 들고 동네 슈퍼 중에 평소에 잘 가지 않던 곳을 골라 들어가서 담배를 시켰다. 매국노처럼 외산담배 말고 국산 88을 피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천 원 정도 하는 값을 계산하고 담배를 책가방 깊숙이 집어넣고서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난 방으로 들어가 창문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또다시 '켁'하면서 기침을 몇 번했지만, 뭔가 성인이 된 것 같은 뿌듯함을 크게 느꼈다. 그렇게 3~4번 빨고 버렸다. 들키지 않기 위해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리는 방식으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담배는 다시 책가방에 넣어 두었다. '일주일에 한 두 개비정도만 피워야 되겠다.' 난 의지가 박약한 애들과는 달리 조절해서 피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친구들이 피우고 있던 담배들(마일드세븐, 88, 포인트)


"임 대리, 다른 사람은 다 끊어도, 너랑 나랑은 못 끊을 것 같다. 그렇지 않냐?" 회사의 흡연실에서 만난 김 과장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뭐? 난 이거 금방 끊을 건데, 저 사람 무슨 얘기하는 거야?'라는 반발이 생기면서도 '도대체 이걸 왜 시작했지?'라는 생각도 든다. 지난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수없이 다짐하고 노력해도 도저히 끊어낼 수가 없다. 그 처음 시작으로 돌아가서 제발 말리고 싶기만 하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담배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 나는 금연에 성공했다. 이제는 그렇게 끊은 지도 15년이 넘었다. 끊는 과정이 너무도 힘들었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의 실패 과정을 반복해야만 했다. 스스로 의지가 없는 놈이라고 자책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또 끊기로 결심한다. 나중에는 끊는 결심 자체를 포기하려고도 해 봤다. 하지만 결국엔 포기하지 않았음에 끊을 수 있었다. 너무 비약일수도 있으나, 인생의 실패를 경험할 때, 종종 담배 끊던 시절을 생각하기도 한다. 인생에는 금연 과정과 같은 사건들이 많이 있다. 수없이 많은 같은 실패를 반복하며, 좌절하기도 한다. 그래도 뭔가 해결하려 여전히 노력하고 있음에 감사하다. 이번엔 실패할 수도 있다. 어쩔 땐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라며 자책하기도 한다. 수십 번, 수백 번 같은 상황에 쓰러지는 나를 보며, 똑같은 횟수만큼의 반성과 다짐을 한다. 반성 자체가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음엔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어려웠지만 담배를 끊어본 적이 있다. 이번엔 술도 끊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은 술을 끊은 지 3일째 되는 날이다. 이번 100일간의 금주 도전이 성공할 수 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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