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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Dec 17. 2023

너는 어떻게 살고 있니, 주정뱅이가 되었다면서?

산다는 건 그런게 아니겠니? 응 아니야!

#에피소드 1

는 검은 우주를 정면으로 올려다본다. 밤하늘 저 너머에 있는 짙은 우주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시를 쓰지는 않았지만, 하는 말은 거의 시나 마찬가지다. 이 얼마나 예쁜 하늘인지 같이 바라보자고 우릴 끌어들이고 있다. "너희도 한번 누워봐!" 어려서부터 감수성이 높았던 그는 함께 누워서 이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누워있는 보도블록 옆으로는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어 꽤 시끄럽다. 이러다가 네가 진짜 하늘나라로 갈 수 있다며, 일어나라고 아무리 팔을 끌고 몸통을 들어 올려보아도 소용이 없다. 막무가내로 땅에 붙어서 일어나질 않는다. 술을 마시고 더 높은 차원의 중력에 잡혀 버린 것 같다. 이 친구는 이미 지구와 한 몸이 되어버렸다. 검은 우주의 신비한 모습에 빠져버린 그의 정신은 블랙홀에 흡수되는 일그러진 물질처럼 저 까만 우주와 기다랗게 이어지려 하는 것 같다. 이제 점점 그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게 되고 있다. 우린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그의 정신이 흡수되기 전에 어떻게든 되찾아 오고자 교신을 시도한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 제수씨, 이 친구가 술이 좀 됐는데, 집 주소가 어떻게 되는 거죠? 정말 죄송해요. 택시 태워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교신 성공. 다행히 그는 블랙홀에 빠져들기 전, 화가 난 와이프가 있는 집으로 무사히 흡수되었다.


#에피소드 2

'우리들은 여기서 왜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일까?' 방금 1분 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떠들고 있던 우리들이었다. 그러다 지금은 갑자기 조용해진 상황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에서 무릎을 꿇고 있다. 12명, 아니면 13명이나 되는 무리들은 얇은 한복 천같이 생긴 방석 위에 살포시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다. 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벌은 아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우리는 모두 양 옆사람의 손을 잡고 한 식당의 방에 둥그렇게 앉아 있다. 어쩌면 벌을 받고 있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우리가 있는 방에는 테이블 세 개가 있고, 각 테이블마다 불판이 올려져 있는데, 바닥은 기름이 튀어있어서 장판이 미끄럽게 맨질맨질하다. 삼겹살이 몇 조각씩 불판 위에 남아있고, 먹다 만 냉면 그릇까지 있으니 우린 거의 다 먹어가는 중이었다. 또 보자. 각 테이블마다 비어있거나 조금씩 남아있는 초록색 소주병이 한 두병씩 올려져 있고, 이 방의 한가운데 앉아있는 한 임원의 벽 뒤로는 더 많은 빈 소주병이 일렬로 줄지어 놓여있다. 그래. 저 사람이 범인이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사람. 술을 마시다 말고, 갑자기 기도하자고 했다. 장난인 줄 알았는데, 손 잡고 눈 감으라고 버럭 소리도 질렀다. 부서 간 화합을 위해 자리를 만들자고 했는데, 화합을 위해 갑자기 서로 사랑해야 된다고 기도를 통해 연설을 하고 있다. 저 임원으로 말씀드리면, 회사의 높으신 분이자, 부서 간 화합을 위해 봉사하고 계신 분이다. 분명히 저 사람은 오늘 본인의 주량을 한참 넘어선 음주를 하였다.


#에피소드 3

어둑어둑한 실내. 촥촥촥 소리가 나는 아날로그시계의 초침 소리를 들으며 누워있는 그는 머리가 아프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와이프가 1박 2일 출장을 갔다며 그를 불러낸 한 친구와 함께 초저녁부터 만나 삼겹살에 소맥을 말아 마시고, 2차로 소주까지 마신 기억이 있다. 그 뒤로 꼬치를 먹었던가? 아니 길거리에서 꼬치를 먹고서 노래방에 갔던 것 같다. 어디선가 하이볼도 마신 것 같은데, 아닌가? 기억이 제대로 배열되어 있지 않다. 가만있자. 그는 자기가 왜 이 거실 바닥에 옷을 입은 채 누워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그의 정신을 놓친 것인지 필사적으로 기억을 살려내려 노력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 했다. 머리가 아프지만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그 경계가 모호하고 도저히 선명하지가 않다. '아뿔싸.' 그는 아까의 기억을 되찾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여긴 그의 집이 아니었고, 현재 본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다 생각이 났다. 여기는 확실히 친구네 집이다. 아! 집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핸드폰을 보니 이미 새벽 2시가 다 되었다. 부재중 전화 표시도 여러 건이 있다. 미쳤다. 분명히 와이프한테 죽을 것이다. 왜 이 집에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친구는 본인의 와이프가 출장 갔으니 조금만 더 마시자고 날 여기로 데려왔을 것이다. 술 마시는 중간중간에 그런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서 여기서 나가야 한다. 후다닥 일어나 신발을 신으려고 현관 쪽으로 움직이며 친구가 있는 방문에 대고 소리를 질러본다. "야! 나 집에 갈게. 내일 전화할게!" 그러자 방 안에서 카랑카랑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야! 여기가 너네 집이야! 어딜 간다는 거야!" 이건 뭐지? 그의 와이프가 저 방 안에 있는 것 같다. 다시 한번 주변을 바라본다. 저 익숙한 시계와 소파. 이제 기억이 난다. '여긴 우리 집이었구나.'



확실히 말해두지만, 위의 에피소드 세 개는 모두 내 이야기가 아니다. 또 모두 내 친구의 이야기도 아니다. 내 친구의 아는 사람의 얘기도 아닌 것이며, 아마도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이야기일 것이다. 바람결에 들었는지, 아니면 모르는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듣게 된 것인지, 나도 이 이야기를 알게 된 경로를 모르겠다. 어쨌든 내 이야기가 아니고, 내 친구의 이야기도 아니란 건 확실히 해두고 넘어가자. 하지만 위의 이야기들은 나와 여러분이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술 마시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번역기를 돌려 읽을 수 있게만 해주면, 지구에 있는 모든 술 마시는 사람들이 다 이해할 수 있는 범지구적인 스토리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여기에 위와 같은 사례를 더 들지 않더라도 누구나 기억 중에 몇 개씩의 술 관련 에피소드가 있을 것이다. 본 기억, 한 기억. 그리고 들었던 이야기까지 포함하면 더 많다. 우리는 그렇다. 우리, 사람이라는 종이 가지고 있는 신체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저 사례에 나온 사람들을 낮춰 평가하듯 이야기할 의도가 전혀 없다. 우린 다 고만고만한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들, 조금 더 일반화된 의미로 지구상의 모든 인류 간 유전적 차이는 고작 0.1% 미만이라고 한다. 내가 문과 남자라서 의심스러운 사람은 인터넷에 찾아봐도 좋다. 그것도 최대가 0.1%다. 어느 인종의 사람이든 나와 99.9% 이상의 DNA 일치율을 보인다. 나에겐 이 말이 이렇게 들린다. '남이 그럴 수 있으면,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술 취한 사람을 (너무 심하게) 비난할 수 없다. 내가 저 상황에서 저만큼의 술을 마셨으면, 나도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선과 악의 구분이 더 명확했다. 영화를 봐도 저 놈은 나쁜 놈, 저 사람은 착한 사람, 이게 명확했다. 하지만 살아가며 수많은 일을 겪다 보니, 어떤 경우에는 뉴스나 영화를 볼 때, '그런 상황에서라면 그럴만하지도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성숙했고, 그만큼 어른이 되었고, 그만큼 인간사 많은 것이 모호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계속 생각하다가는 모두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일단 여기서는 술에만 국한시켜 보자.


우리는 적정한 주량 이상을 마시게 되면, 실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 주량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스케일을 너무 자세히 확대해서 그런 것뿐이지 사람이라는 종은 다 비슷할 것이다. 다들 주량이 고작 몇 잔에서 몇 병 사이이지 않은가? 특별히 한 번에 소주 1천 병을 마셔야 먹은 것 같다던가, 오직 알코올만을 순수한 에너지원으로 사용해야 하기에 절대 취하지 않는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러면 우리는 다 비슷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술을 마시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다짐하고, 신체적인 부담이 되지 않도록 적당히 마시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은 술을 마시지 않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이다. 또 우리가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알코올은 우리 인간들에게는 중독성이 있는 해로운 약물로 분류된다. 이 정의는 누구에게나 차별이 있지 않다. 모두에게 독인 것이다. 다시 한번 건조하게 말하자면 알코올, 즉 술은 인류에게 가장 해로운 중독성 약물 중 하나로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알코올은 마약과 같은 정도의 해로움으로 경고되고 있는 물질이다. 요즘은 '중독'이나 '마약'과 같은 단어가 너무 광범위하게 일상에 사용되어서 이 말에 대한 농도가 상당히 옅어진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어쨌든 술이 세다고 생각하던지 그 반대라고 생각하던지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에게 술은 중독성이 있는 해로운 약물이며, 이를 적용받지 않을 특별한 사람은 없다.




금주 52일 차. 이번주에는 한국 본사에서 나보다 높은 포지션에 있는 한 임원이 내가 관리하고 있는 베트남 법인에 방문했고, 나는 일주일간 그분을 수행했다. 그 임원이 베트남 사업장에 방문하기 전, 나와 함께 베트남에서 일하고 있는 회사 직원들이 말했다. "법인장님, 이번에는 술을 드셔야 되지 않을까요?" 난 그럴 일 없다고 말했고, 직원들은 아마도 나보다 높은 직급의 윗사람이 방문하는 만큼 이번엔 내가 술을 마셔야 할 일이 생길 것 같다고 다시 강조했다. 사실 나도 조금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임원이 베트남에 도착하고 나서 내가 술을 끊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몸을 생각해서 달리기도 하고 있는 중이라고도 말해주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난 식사 자리마다 음료수와 물을 마시고, 그 임원은 소주와 맥주를 마셨다. 요즘 한국 회사의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는 술을 끊겠다는 의지를 지키는 것이 엄청나게 어렵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신체에 무리가 되지 않는 수준에서만 술을 마시겠다는 다짐이나, 술을 마시더라도 꼭 정신을 차리겠다는 의지를 지키는 것보다는 쉬운 것이었다. 성공하기 어려운 다짐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보다는 아예 그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 현명한 방법인 것이다. 모든 인류는 99.9% 이상의 DNA 일치율을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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