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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돌 Dec 31. 2023

찐득대는 담배와 쿨하게 헤어지기

금연은 외국어 배우듯이

"임 대리, 다른 사람은 다 끊어도, 너랑 나랑은 못 끊을 것 같다. 그렇지 않냐?" 회사의 흡연실에서 만난 김 과장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김 과장은 회사에서도 소문난 골초로 흡연실에 올 때마다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 '너와 나는 못 끊을 것 같다.'며 나를 그와 동일한 집단으로 묶어버리는 말을 했다. '뭐? 난 이거 금방 끊을 건데, 저 사람 무슨 얘기하는 거야?'라는 반발이 생기면서도 '이걸 왜 시작했지?'라는 생각도 든다. 김 과장의 물음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담배라는 놈은 10년의 기간 동안 수없이 다짐하고 노력해도 도저히 끊어낼 수가 없었다. 그 처음으로 돌아가서 제발 말리고 싶기만 하다.



이제 막 서른 정도였던 나는 병원을 굉장히 편하게 생각했다. 다른 말로 하면, 별것 아닌 일로도 병원을 자주 가는 편이었다. 술을 마시고 발가락이 빨갛게 되어 통풍을 의심하고 병원에 갔더니, 그냥 어디에 부딪친 것 같다고 진단을 해 주기도 했고, 혓바늘이 났다고 병원에 갔다가 엄청 센 약을 발라주는 바람에 의사 선생님 팔뚝을 잡고 비명을 지르기도 하던 나였다. 나중에는 의사 선생님이 "선생님, 이 정도는 다 아프고 살아요."라는 말을 해주기도 했으며, 너무 자주 오는 것 같냐는 나의 질문에 "아뇨, 또 오세요. 제가 같이 말동무해 드릴 수 있습니다."라는 말로 대답을 해주던 의사 선생님도 있었다. 건강염려증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도 이런 생각을 했다면, 아마 이것도 치료받으러 병원에 갔을지도 모른다.


이러던 시기에 뉴스에서 담배 끊는 약이 나왔다는 소식을 보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회사 근처의 병원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뉴스에서 보니까 '챔픽스'라고 담배 끊는 약이 있던데요?"라고 묻자, 의사 선생님 본인도 얘기는 들어봤는데 처방을 해본 적은 없다고 대답해 주었다. 또다시 날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내가 컴퓨터에 검색을 좀 해달라고 요청했고, 의사 선생님은 내 말대로 컴퓨터에 약품명을 검색해 보기 시작한다. "처방 가능할까요?" 내가 물었고, 그는 처방전을 출력해 주며 나에게 부탁했다. "약 드셔보시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 얘기해 주세요. 부작용도 있다니까 몸이 이상하다 싶으시면 바로 오시고요." 이렇게 받은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 가도 바로 약을 받아볼 수는 없었다. 약국에서도 이 약은 주문해 본 적이 없다고 했고, 주문 후에 연락을 주겠다며 내 연락처를 받아갔다. 내가 이 동네의 첫 번째 투약자였다.


회사 골초인 김 과장으로부터 자극을 받은 후에, 나는 담배를 끊겠다고 이미 회사에 여러 차례 공지를 했다. 그리고 계속 실패를 이어가던 중에 회사 직원들은 그렇게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냥 피워도 된다며 날 토닥여줬다. 금연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해악이 담배 피우는 것보다 더 크다며 위로하는 다른 흡연자들도 있었고, 내가 지하주차장에서 몰래 담배 피우는 것을 봤다면서 그냥 실패했다고 커밍아웃하라며 놀리는 동료도 있었다.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 금연 카페에도 가입하고 여기저기에 다 얘기해 놨는데, 이번에도 실패하면 정말 다시는 못 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게임 체인저가 나타난 것이다. 금연약이라는 물리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젠 끊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제압할 신비의 명약 '챔픽스'를 받아 들고서 이제 됐다며 하얗고 작은 타원형의 약을 찬물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겨버렸다. 온몸에는 담배를 이길 수 있는 특별한 힘이 흐르기 시작한다. 정말이었다. 이 약을 먹으니까 담배를 생각하면, 부정의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담배의 맛없는 부분만 강조되어 다른 모든 긍정의 기억을 다 덮어버렸다. 흡연자를 담배로부터 구하기 위해 백일기도, 아니 천일 작정기도를 하고 만든 약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 약을 먹으면 담배를 피우기 싫어진다. 놀랍게도 나에겐 뚜렷한 약효가 있었다.


그래서 결국 약을 끊었다. 웃기게도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 약을 끊게 되었다. 그만큼 담배가 독하다. 독한 내 마음보다 더 독한 것이었다. 약을 버리고 담배를 피우며 수많은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난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가?', '이번에 또다시 실패한 김에 그냥 쭉 실패해 버릴까?'라는 생각도 다. 아니다. 나는 다시 금연 카페에 들어가 본다.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평생 참는 것입니다.'라는 말이 보이고 많은 공감을 얻고 있었다. 나도 그 글에 공감과 응원을 보냈다. 하지만 이 말을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소극적으로 금연에 참여하는 느낌이 들어서 싫어졌다. '참는 것'과 '끊는 것'의 적극성 정도는 분명히 다르게 들린다. 내가 끊어야 한다. 나는 담배를 끊기 위해서 금연 카페에 가입하고, 회사에도 나의 금연 사실을 알렸다. 수영을 하고, 병원까지 찾아간 정도가 되었으면, 정말 적극적인 금연 활동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까지 해놓고, '의도적으로 금연을 한 것은 아니에요. 그냥 참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말한다면 어떤 배심원도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끊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다시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결국엔 나의 의지를 가지고 내가 끊었다. 남아있던 마지막의 담배는 연두색의 종량제 비닐봉지 속에 던져 넣고 15년이 지난 지금도 피우지 않고 있다. 너무 급하게 마무리되어 어색한가? 하지만 이게 진짜다. 여러 노력들을 하다가 내가, 나의 의지로 끊게 되었다. 물론 주변에서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그리고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끊어야 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본인이 나설 때 끊어지는 것이지,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참아질 수는 없다. 담배는 그렇게 젠틀하게 멀어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찐득대며 엉겨 붙어 진흙탕에서 싸워야 끊어낼 수 있다.


실망스럽게도 담배를 끊는 어떤 비법은 없다. 금연 카페를 가입하면 담배가 끊어진다거나, 운동을 하면, 또는 약을 먹으면 편하게 흡연과 바이바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세상의 많은 일들은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교과목으로 따지자면 수학이 아니라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과 더 비슷하다. 일어난 결과를 가지고 문법이라고 부르며 어떤 규칙이 있는 것처럼 말을 만들기는 하지만 참고만 해야 할 뿐이다. 그 문법을 따르지 않는 수많은 말들이 존재한다. 문법책을 보면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뿐, 그 언어와 실제로 부딪치며 실패하면서 배워야 하는 것이다. 언어를 배우며 비웃음을 샀다고 포기해선 안된다. 더 나아지는 과정에 있는 것이지 실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기 전까지는 절대 말하지 않겠다고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에겐 금연이 그랬다. 이것저것 해보며 비웃음을 사기도 하고, 문법책을 보며 이 규칙이 왜 적용되지 않는 것인지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끝나고 보니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었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도하고, 실패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추가로 금연과 관련한 자료들, 활동들을 계속 주변에 두고 관심을 가지는 것도 함께 해주어야 한다.




금연한 지 5,429일, 그리고 금주한 지는 이제 66일째가 되었다. 금주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금연의 시기를 떠올린다. 역시 성공의 경험은 또 다른 성공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성공의 경험을 차곡차곡 모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 금연 카페 가입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금주 카페에 가입했고, 금연과 관련한 책을 읽은 것처럼 이번에도 그렇게 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회사와 가족에 알렸고, 수영을 했던 것과 같이 이번에는 달리기를 하고 있다. 이전의 일을 참고해서 이번에도 착착 금주를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금연과 마찬가지로 나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짧은 한국 출장을 마치고 나서 베트남으로 돌아와 피곤한 일주일을 보냈다. 운동도 하는 둥 마는 둥 쉬는 것에 더 집중했던 한 주였던 것 같다. 이제 하프 마라톤은 2주일밖에 남지 않았기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대회 전까지는 매일 달리기를 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의지가 있더라도 몸이 받아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몸을 먼저 만들기로 한다. 이렇게 몸이 피곤하여 이번주에는 장거리 달리기는 연습하지 않았다. 짧게 뛰거나 걸으면서 몸이 적응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핑계가 아니라 그런 기간도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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