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에필라 Aug 10. 2023

심장소리에 생명력이 가득했어

엄마 저 임신했어요

남편과 함께 난임병원에 갔다.

남편은 진료실 바깥쪽 의자에 앉고, 난 바로 초음파를 보러 진료실 안쪽에 있는 초음파실로 들어갔다.

초음파를 보시면서 의사 선생님께서 아기집 위치가 안정적이고 좋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초음파를 볼 때면 노심초사했었는데 처음으로 아기집을 보게 되었다.

구름 위로 하늘을 동동 떠다니는 기분 좋은 설렘이 가득했다.


초음파를 보고, 옷을 정돈하는데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정말 아기집이에요?"

처음으로 놀이동산에 가는 어린아이처럼 잔뜩 기분 좋은 말투였다. 그걸 들으면서 나도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아기집 안에는 동그랗게 빛이 나는 난황이 들어있었다.

까만 우주에서 밝게 빛나는 토성처럼 하얀 테가 보였다. 신비로운 색깔이었다.



일반적으로 아기집을 먼저 보고, 그다음 난황, 그러고 나서 심장소리를 듣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나는 아기집과 난황을 함께 보게 되었다. 이제 심장소리만 들으면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다.


심장소리를 듣기까지는 임신극초기이기 때문에 몸조심을 했다.

그리고 7주 차에 심장소리를 들었다.

쿵쾅쿵쾅 쿵쾅쿵쾅-

글로 담을 수 없는 매우 빠른 심장 박동소리는 비로소 내가 임신했다는 게 조금씩 실감이 나게 해 주었다.

지구 전체가 흔들리는 듯 큰 심장소리는 가슴속에 큰 울림을 주었다.

그저 감동적이었다.



심장소리를 듣고 나서는 마음을 좀 놨던 것 같다.

임신을 위해서 달려왔던 데스크에서 쉼터에서 잠시 쉬는 기분.

금요일에 심장소리를 듣고 나서, 2주 뒤에 난임병원에서 마지막 진료를 보고 나서 분만병원으로 전원 한다고 했다.


마음 편히 주말에는 푹 쉬었다.

이제 정말 마음 놔도 되겠다.

심장소리를 들었으면, 이제 괜찮을 거다.


부모님께 전화해서 임신했다고 전했다.

"엄마, 저 임신했어요. 지금 산부인과에서 심장소리 듣고 나서 나오는 길이에요."

핸드폰을 통해서 엄마아빠의 흥분한 목소리가 다 전달되었다.


심장소리를 들은 날은 너무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그리고 2주 뒤,

난임병원에서 내가 유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류유산.

아이는 심장소리를 들려주고 떠났다. 그렇게 건강하고 크게 뛰던 심장이 멈췄다.


지구와 우주에 가득한 생명력이 다 사라졌다.

이제, 나는 모든 생기를 빼앗긴 것처럼 무기력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처럼 허망하고 허탈했다.


행복.

불행.

한 번에 왔다.




유산한 후, 죽은 아이를 배출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쓴 글입니다.


이전 13화 가장 임신에 가까이 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