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pe is the only love of life.
희망만이 인생의 유일한 사랑이다.
- Henri Frederic Amiel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나는 결혼을 하면서 작은 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예비신랑이었던 남편은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타 지역으로 발령이 났다.
나는 정년이 보장된 직장을 포기할 수 없었다.
우리는 신혼생활을 하며 자연스럽게 아이를 갖고 싶어 했기 때문에 주말부부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남편의 직장이 있는 곳은 대도시 한가운데에 있어서 출퇴근 시간이면 IC에서만 1시간이 지체될 수도 있었다.
반면 내 직장은 IC와 가까운 외곽지역에 있어서 출퇴근 거리가 길어도 막힐 확률이 적었다.
서로의 직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중간에 있는 도시들 여럿을 비교해 본 결과 우리는 한 도시를 선택했다.
그렇게 두 직장의 중간지점에 신혼집을 구했다.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남편의 직장과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내 직장과는 거리가 좀 되었지만 고속도로로 출퇴근하면 전혀 차가 밀리지 않아서 쾌적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출퇴근하며 듣는 음악과 명상의 시간은 나의 내면을 더 다질 수 있게 해 주었다.
다만, 생각지도 못한 단점이 있었다.
임신 준비를 위해서 산부인과를 다니려고 알아보니 신혼집이 있는 지역에는 산부인과가 딱 하나밖에 없었다.
하나라도 있어서 감사하긴 했지만 야간진료를 하지 않아서 퇴근하고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토요일까지 기다려서 산부인과를 가야만 했다.
회사 근처에도 산부인과가 하나 있었다.
문제는 우리 회사도 외진 곳에 위치했다는 것이다.
하나 있는 산부인과는 일주일에 한 번 야간진료를 하긴 했지만 예약도 받지 않았다.
퇴근하고 가면 10명 이상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순서조차 받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일이 많았다.
회사 근처와 집 근처의 산부인과 둘 다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은 하지 않는 작은 개인 산부인과였다.
회사 다니면서 새벽진료와 야간진료로 난임치료를 받는다는 사람들의 후기를 인터넷에서 읽을 때마다 부러웠다.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에 틈틈이 산부인과를 다니며 과배란 약을 받았다.
작은 소도시에 하나 있는 산부인과 원장님은 날 위한 사탕발림은 전혀 하지 않으신다. 직설적으로 나이가 있어서 빨리 시험관 하는 게 낫다는 말을 하시면서도 나의 편의를 많이 봐주셨다.
시골에서 볼 수 있는 따뜻한 인심이 느껴진다.
간호사 분들과 의사 선생님께서 너무 친근했다.
시골의 산부인과는 환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대기시간이 없었으며, 진료도 더 세밀하게 봐주셨다.
대신 진료비는 도시보다 약 1.5배 정도 비쌌지만 기다리지 않는 값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나라고 해서 대도시의 산부인과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임신 시도를 하고 6개월이 넘어서도록 임신이 되지 않자 대도시의 대학병원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거기에서 기본 검사를 다 하고 좋은 교수님을 만나서 진찰을 받았었다.
하지만 직장에서 그 병원은 2시간을 잡아야 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교수님은 너무 바쁘셔서 예약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첫 진료부터 반나절 이상을 기다려야 했고, 그다음 진료를 잡으려면 한 달의 간격이 생긴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배란일을 맞춰서 진찰받기가 쉽지 않았다.
나 같은 상황에서 계속 그 대학병원에서 진찰을 받는 것은 오히려 시간낭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으로 배란만 잘 맞추면 큰 문제는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또 일 년 이상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배란일을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과배란 약 '클로미펜'을 계속해서 먹고 있다.
그래도 지금 내가 다닐 수 있는 산부인과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좋은 의사 선생님들을 계속 만나서 임신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의학적 도움을 받아서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많은 산부인과를 거치면서 의사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함이 커졌으며 사실 슬픔도 커지고 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왜 안 생기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의 커리어와 여러 가지 것들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인가?
나는 그만큼 임신이 절실하지 않아서 안 생기는 걸까?
두려움이 덜컥 들기도 한다.
고민 속에서 계속 이렇게 나아가고 있다.
항상 내 옆에서 내 손을 잡아주는 남편이 있기 때문에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바라볼 수 있다.
언젠가 꼭 와줄 아이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