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의 매일글쓰기 챌린지를 했었다. 100일 동안 매일 글을 쓰면 뭐라도 달라져 있을 것만 같았는데 오히려 완주하고 난 후 매일 쓰는 일을 중단했다. 그동안 매일 쓴다는 것이 즐거움을 주기도 했지만 스트레스 역시 같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이후로 편안해졌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다. 무언가를 써야 한다는 이상한 압박감이 들었다. 나는 쓰고 싶은 사람인 것이다. 약 1달 정도 고민한 끝에 그동안 해왔던 단어채집을 이어가야겠다고 결정했다. 그 결정에는 역시 김현시인이 다시 등장한다. 단어채집을 추천했던 김현시인을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다. 시인을 만나 100일을 완주한 이야기를 하는데 어쩐지 마음속에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올라왔다. 평범한 일상의 단어들이라 작아지는 마음을 전했는데 시인은 다정하게 나를 격려해 주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인 덕분에 새롭게 시작하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다.
100일 챌린지를 함께했던 글벗들의 글을 읽으면 나는 굉장히 복합적인 마음이 들었다.
'와,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쓰지?'
'왜 나는 글쓰기가 어려운가'
이 두 가지 마음에 매일 머리를 쥐어뜯으며 글을 쓰곤 했었다. 그중에 B의 글을 읽으면 샘이 나곤 했는데 내가 모르는 아름다운 단어를 썼기 때문이다.(제목도 잘 짓는다) B의 챌린지 마지막날 글에서 마음에 콕 박힌 아름다운 단어가 있었다.
'볕뉘'
어쩜 이렇게 예쁜 말이 있을까. 조용히 소리 내어 발음해 본다.
'볕뉘'는 쏟아지는 햇볕이 아니라 작은 틈 사이로 잠시 비치는 햇볕이란다. 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이라고도 한다. 커다란 나무 아래 빽빽한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볕뉘를 자신의 미래하고 하는 B. 잠시 비치는 햇볕을,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을 마주하고 그것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분명 다정한 사람이다. 볕뉘라는 단어에서 다정함이 느껴진다.
내가 다정한 사람을 좋아하고 다정한 사람이고 싶어 하는 이유도 볕뉘 같다. 화창하고 맑은 날 내리쬐는 햇볕은 누구에게나 따뜻하다. 작은 틈 사이로 잠시 비치는 햇볕은 순간이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따스하게 해주는 볕뉘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고 싶다. 볕뉘의 세 번째 뜻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보살핌이나 보호라는 뜻과도 연결된다. 완벽한 이상형의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보호하고 보살펴줄 수 있는 약함과 결핍이 있는 사람을 품어주고 싶다. 내가 그런 사람이므로. 서로가 서로에게 볕뉘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환한 빛에 눈부시지 않아도. 볕뉘 정도면 충분하겠다.
내가 쓰는 글이 밝게 반짝반짝 빛나는 글이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볕뉘 같은 글이 되기를 바란다. 평범하고 보통을 일상에서 반짝이는 순간을 찾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