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찾아서

by 미 지

어릴 때 본 영화 중 죽은 말의 머리가 나오는 영화가 두 편이 있다.


'대부'와 '양철북'


영화 속에서 말의 사체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충격적인 소품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의 죽음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그려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슬픔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고 잔인했고 괴이한 영화였지만 인생의 허무가 밀려오는 순간에 가끔씩은

'그런 사람들도 생을 사랑했는데.`

'그런 사람들도 결론은 성장하기를 선택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토록 잔인한 결말을 향해 가는 그토록 처절한 삶의 몸부림에 충격과 위로를 동시에 받았었다.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의 생가가 그단스크에 있다고 해서 아침 일찍 눈 오는 먼 길을 걸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는 집에는 문 위에 짤막하게 '귄터 그라스'가 살던 집이었다는 안내판 하나가 붙어있을 뿐이다.


돌아오는 길에 트램을 탔지만 첫 번째 칸에 있는 티켓 판매기는 랩으로 꽁꽁 쌓인 채 발권을 할 수가 없는 상태라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서 다시 걸었다.


숙소 근처에 귄터 그라스 갤러리가 있었다. 12시부터 문을 연다는 이 갤러리는 구글맵의 평을 보면 상당히 불규칙적으로 오픈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다행히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갤러리에 들어서니 제법 많은 수의 학생들이 진지하게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난 갤러리에 입장하려면 티켓을 사야 하는지 물었다.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가격을 묻자 프런트데스크를 손으로 가리키며 약간 길게 말을 했다. 10 즈워티 티켓을 사야 하는데 오늘은 학생들 한 그룹이 예약되어 있어서 지금은 관람이 어렵다는 말이었다. 미안하다는 말로 마무리를 하며 그녀는 다시 전시실 안으로 들어갔다. 난 전시실 입구의 사진을 한 장 찍고 밖으로 나왔다.


귄터 그라스는 그의 고집스러움과 불친절함과 독일 친위대 전력을 숨기고 반나치 노선을 걷던 이중성과 함께 정제되지 않은 정치행보, 서툴고 거친 작법 등등의 이유 때문에 폴란드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고 있었다.

구글맵의 평가를 보아도 귄터 그라스의 생가나 갤러리보다는 갤러리 옆 스테이크 하우스 La pampa 가 더 좋은 평점과 칭찬을 받고 있다.


'나의 이야기는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다.'


격변의 시기에 난잡한 시류에 휩쓸려 스스로를 잃어버리기 직전에 차라리 성장을 멈춘 채로 사는 것을 선택해 버린 오스카는 유아기의 순수함과 잔인함을 동시에 소유한 채로 유치하면서도 쓸데없이 잔인한 현실에 대해 아무 책임 없이 경멸하고 저주하고 책임지지 않고 도망쳐버려도 되는 시간을 살았다.


왜 부끄럽지 않았을까. 그의 무의식이 오스카의 시선을 따라가며 멈춘 성장과 다시 성장하기로 결심하는 순간에 다다르기까지 그의 부모와 그 주변의 역사적 사건들과 얽혀있는 사람들에 대해 애정의 시선을 가질 순간도 맞이하지 못한 채로 스스로도 경멸과 무책임으로 점철된 유년의 선택을 하며 살아야 했던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작가가 왜 아프지 않았을까.


자신과 자신 시대의 유아기적인 이야기들을 부끄러움을 감추지 않는 사실 전달자가 되어 적어 내려가는 그의 '거칠고 서툰 양심'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나는 가끔 그 영화를 떠올리곤 했다.


다시 성장하기로 결심한 다음에도 여전히 비루해야 했던 인생의 이야기. 그래서 어쩌면 더 그의 흔적을 보고 싶어서 왕복 10킬로의 눈길을 걸으며 그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낮에는 눈이 하염없이 내려서 세상을 덮었다.

밤에는 화려한 조명이 초라함을 덮었다.


난 여전히 새벽에 잠을 깼고, 불금의 밤을 보낸 서너명의 사람들이 그다지 소란스럽지 않은 이야기 소리를 공중으로 날리면서 눈이 내리는 거리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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