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님의 인맥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던 어느 날의 식사 시간이었다.
삼선 국회의원이 우리 결혼식의 주례를 해 주셨으니, 지역에서는 어느 정도 손꼽히는 인맥을 자랑하는 시아버님 이야기를 하면서 감탄을 하던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편의 눈빛이 마치 딸깍 소리라도 나는 듯한 한 번의 눈 깜빡임과 함께 차갑게 바뀌었다.
"그러니까. 그 주례사가 말이지. 나를 소개할 때는 서울에 있는 00대를 졸업해서 국영 방송국에 다니는 신랑이라고 소개했잖아. 그런데 너를 소개할 때는 어땠지? 그냥 대학교를 졸업해서 초등학교 선생을 하고 있다고만 말했잖아. 왜 그런 줄 알아?"
"무슨 말이지? 그건? 서울 00대는 무슨 대단한 대학이란 뜻인가? "
"아니, 그러니까 네가 나온 대학은 어딘지도 모르는 지방에 있는 대학이니까 주례가 말을 못 했단 말이잖아."
"그러니까...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화를 내지? 난 그냥 있었던 일을 말하는 건데 사람 참 이상하네."
평소에는 온화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쾌해지곤 했다.
그런 날이 쌓이고 쌓이다 결국 알게 된 것은 나만이 아니라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어떠한 사람들이라도 마지막에는 거의 대부분 '별난 사람 다 봤네'라는 말로 마무리지어지고는 했다는 것이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못난 대화를 이어가게 하다가 결국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외면을 받게 만드는 스위치인지 몰랐지만 그런 이해 못 할 장면들이 쌓이고 쌓여가면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그 기전들이 천천히 데이터화되어갔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지나 드디어 알게 된 그의 '빈정거림'과 '이죽거림'의 스위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상대방이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 주려고 할 때'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모인 사람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며 차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려 할 때 그의 눈빛은 주저 없이 바뀌곤 했다. 예를 들어 일가친척이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다 보면 대화의 도입부에서 이미 그의 양 미간은 날카롭게 주름이 잡혔고, '그건 다 잘못 알고 계신 겁니다' 하는 말과 상대를 내려다보는 눈빛과 약간 거만하게 손목을 움직이는 듯한 손사래가 스위치를 누르는 시작점이 되고는 했다.
명절날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장 쉬운 화젯거리인 정치 이야기를 할 때, 우파 성향의 가족이 반대편 성향의 정치인에 대해 비판을 하면 그는 말했다.
"그건,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는 노동자들을 너무 소모품 취급을 해서 안됩니다. 있는 ㄴ들이 도무지 나누려고 하지를 않으니, 외국처럼 있는 ㄴ들의 세금을 올려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르게 분배해야 하는 겁니다."
그 자리에서 남편의 말에 동의를 하는 좌파 성향의 가족이 반대편 성향의 정치인에 대해 비판을 시작하면 그는 또 얼굴 표정도 바꾸지 않으면서 말했다.
"뭘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는 독재가 답입니다.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데 자꾸만 자유를 주니까 너도나도 자기주장만 하는 국민성은 정말 문제입니다."
그는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방이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차마 더는 말을 못 하고 고개를 돌릴 때까지 하나도 어긋남이 없는 순서로 대화를 이어가곤 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 백발백중, 천하무적의 단어는 '뭘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였다.
전셋집을 계약하러 간 부동산 사무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우리가 살 집의 전세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부동산 중개인이 계약서에는 계약 기간을 일 년으로 했지만 그 무렵 막 법제화 된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2년의 계약 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하는 중에 그가 중개인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뭘 잘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임대차보호법이 말입니다, 임차인을 보호해 주기 위한 법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 법 때문에 집주인은 2년 치 임대료를 받으려고 전세금을 올리고 있지 않습니까? 임대인을 보호해 주기 위한 법이 아닌데 마치 우리를 보호해 주는 것처럼 말씀을 하시네요. 그런 것도 모르시면서 부동산 사무소를 운영하고 계시다니 참 답답하네요."
"젊은 사람이, 왜 이리 꼬여있어?"
중개인은 계약서를 적고 있던 볼펜을 집어던지며 화를 냈다. 하지만 그 중개인은 프로였으므로 집어던진 볼펜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마치 실수였던 것처럼 얼른 집어 들었고 말의 높낮이를 약간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는 음조로 재빠르게 가다듬어가며 부드러운 눈빛과 함께 하는 자연스러운 농담조의 말 끝을 기어코 완성해 내어서는 그날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노트북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전의 어느 날 나는 노트북 컴퓨터를 중고로 살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다. 천리안 피시 통신의 중고 거래 장터에서 검색을 해서 용산 전자 상가의 한 매장에 매물로 올라온 s사의 초기 모델 노트북을 사기로 했다. 그 매장에서 오토바이 퀵서비스로 컴퓨터를 보내주면 상태를 확인한 뒤 돈을 지불하기로 했는데 퀵서비스 오토바이가 용산에서 경기도에 있는 우리 집으로 오는 것보다는 여의도에 있는 남편의 직장으로 가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 같아서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전화가 오면 잠깐 밖으로 나가서 노트북 컴퓨터를 받고 나에게 연락을 해 주면 판매자에게 대금을 송금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퀵서비스가 남편 회사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나는 판매자에게 송금할 준비를 하면서 남편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었다. 40분 정도가 지나서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남편의 목소리는 화가 나있었다.
"아니, 이거 말이야, 이거 포장도 안되어 있고 작동도 안 되고 말이야..."
나는 퀵서비스 기사를 바꿔달라고 했다. 그 기사는 전화를 받자마자 나에게 황망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예요? 이 사람?"
나는 중고 노트북 컴퓨터를 사는 것이라고 남편에게 미리 설명을 했었다. 남편도 몇 번이나 확인 대답을 했었다. 그러나 퀵서비스 기사에게 노트북 컴퓨터를 넘겨받은 순간부터 남편은 포장 박스 상태와, 가방이 없는 것과, 겉 표면의 흠집에 대해 따져 물었고 그가 처음 만져보게 되었기에 작동이 생소했던 노트북 컴퓨터의 덮개를 열어서 전원을 켜는 법에 대해서, 부팅 속도가 느린 것에 대해서, 전원 코드의 볼트와 와트 수치와 사용 흔적에 대해서, 판매한 사람의 무성의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여기까지 온 배달 기사의 무지에 대해서 40분이 넘는 시간을 붙잡고 빈정거리기와 투덜거리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남편과 통화를 하면서 중고 컴퓨터이니 물건 흠집은 당연한 거고, 배달기사는 그냥 배달 심부름만 하는 사람인데 벌써 오랜 시간을 붙잡아 두었으니 컴퓨터 전원이 켜진 것만 확인했으면 어서 돌려보내라고 말을 해야 했다.
늘 그런 식으로 일상을 벗어나서 진행되는 익숙하지 않은 패턴의 대화의 마지막 단계는 불쾌함이었다.
"제발! 그 소리를 왜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거지?" 하고 물으면 그는 말했다.
"왜?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화를 내고 그래?"
두고두고 나는 외로웠으나 어디에서도 그 외로움을 말할 수가 없었다.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 그저 농담으로 돌리면 될 일을 마음에 묻는다며 옹졸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직장 좋고, 집안 좋고, 외모 좋고, 생전 언성 높이지 않는 좋은 성격인데 복에 겨워서 고마운 줄을 모른다고.
말하기가 조금 서툰 것 정도로 너무 예민해하면 안 된다고 지적을 받고는 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도박을 하지 않아도, 바람을 피지 않아도, 약에 취해 있지 않아도 비바람을 혼자 맞도록 놓아두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그였다. 내 남편. 결혼식 전날 기어이 버리고 돌아서지 못했던.
그림 형제의 동화 '개구리 왕자'속의 공주는 무례한 개구리를 벽에 집어던진다. 벽에 부딪힌 개구리는 못된 마법이 풀려 멋진 왕자가 된다. 모든 동화의 마무리가 그렇듯 결혼 한 두 사람은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남편과 나, 둘만의 이야기였다면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날마다 괴팍스럽거나 날마다 별나지만은 아니하였으니 그가 가진 내면의 가난함이 모두 드러나버리기 전까지는 분명 사랑도 있었다. 화가 많은 아버지를 둔 나의 가난함은 많은 부분에 대해 선량하게 대하고는 하던 그의 한 부분의 모습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기도 했다.
'사람에겐 숨길 수 없는 게 세 가지가 있는데요, 기침과 가난과 사랑이에요. 숨길수록 더 드러나기만 한대요. 사랑한다는 건 스스로 가슴에 상처를 내는 일인 거 같아요. 우리가 고통스러운 건 사랑이 끝나서가 아니라 사랑이 계속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영화 '시월애' 중에 나오는 대사이다.
얕은 사랑과 위안의 시간 가운데로 그의 가난한 부분이 파도가 되어 조금씩 밀려 들어왔다. 파여가는 흔적들은 복구되지 않았고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그런 파도가 훑고 지나가는 자리마다 메마른 가시덤불의 숲이 생겼고 기어이 그 가시가 우리 사이의 간격을 온통 뒤덮어버리게 된 한가운데에 아들과 딸이 있었다.
영문도 모르게 날마다 가시에 찔리며 새 상처가 헌 상처를 덮어버리는 반복 속을 걸어가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고통이었다.
가난이었다.
숨길 수가 없었다.
남편과의 사랑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으나 아이들과의 사랑은 내가 살아있는 한, 아니 그 후로도 오랫동안 끝내지지 않을 것이었다. 바로 그 사랑만은 영원히 계속되어야 하기에 고통 또한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어떤 순간에 그의 못난 기질이 드러나게 되는 지를 아직 모르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이 된 두 아이들과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어느 날 저녁, 마침 그 해 겨울 예정되어 있던 해외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는 나누었다. 연말연시와 휴가철에는 휴가를 낼 수 없는 남편이었고 여름과 겨울 방학 때에만 휴가를 갈 수 있는 나였기에 방학이 되면 가끔 나는 아이들과 셋이서 해외 여행지를 찾아 짧은 여행을 하고 왔다.
집에 혼자 남게 될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 조금, 그리고 곧 가게 될 해외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아이들과 한껏 들뜬 대화를 하던 중이었다.
'엄마랑만 가는 여행이니 엄마를 잘 따라다녀야 해. 행여나 엄마를 놓치게 되면 근처에 보이는 경찰서로 가서 여권을 보여주면서 도와 달라고 하고. 영어 못해도 그냥 한국말로 네 상황을 계속해서 설명하면 통역을 부르던 대사관에 연락을 하던 도와줄 테니까'
'중요한 건 여권을 잃어버리지 않는 거지만, 행여나 여권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해도 대사관이나 영사관 통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경찰서를 꼭 찾아가는 게 중요해.'
우리 셋의 대화를 멀뚱멀뚱 지켜보면서 피자를 먹고 있던 남편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할 말 있어. 아들! 본래 해외여행이란 말이야, 무전여행이 정석이지. 무전여행이 뭔지 알아? 자기가 여행지에서 일하면서 돈 벌면서 다니는 거야. 그리고 아들! 여권을 왜 잃어버려? 아빠가 여권 잃어버리지 말랬지?'
평소에는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떤 순간이 오면 아들에게는 유독 큰 목소리와 따지는 말투로 대화를 시도하곤 하는 것이었다. 그가 갑자기 그렇게 큰 목소리로 시작하는 말은 대부분 맥락이 없었다. '뭐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의 눈빛을 부르는 발화였다.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던 아들이 어느 날 집에 들어오면서 가방에서 시험지 한 장을 꺼내 '엄마, 나 백 점 맞았다'하며 자랑을 하던 날에도 그랬다. 아들의 웃는 얼굴이 너무나 예뻤고 그 얼굴 보는 것이 더 할 수 없이 기뻤던 나는 잘했다고, 엄마가 너무 좋다고 말을 했다. 아들은 퇴근하는 아빠를 기다리다가 아빠가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얼른 그 앞으로 뛰어가서 펄쩍펄쩍 뛰며 시험지를 자랑스럽게 눈앞에 펼쳐 보였다.
"아빠, 나 백 점 맞았어!"
그 아들을 보는 남편의 눈길이 샐쭉해진 듯싶더니 미간에 주름을 모았다. 그리고 곧바로 불쾌함이 담긴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 아빠가 백 점 맞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지?"
아들은 머쓱하게 아빠 얼굴을 쳐다보다가 시험지를 접어들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남편이 아들에게 언제 어떤 단어로 '백 점 맞는 것보다 중요한 것'에 대해 말을 했는지에 대한 기억을 찾느라 그 둘을 보면서 잠시 서 있었다. 나는 그게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아들은 저녁을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메이플 스토리' 게임을 했다.
'아빠가 여권 잃어버리지 말랬지?'라는 말을 할 때의 표정과 억양은 '아빠가 백 점 맞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했지?'하고 말하던 그날의 표정과 억양과 다르지 않았다. 한치도. 과거형으로 말을 마무리했지만 그 과거의 어느 지점에서도 그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한 번도.
그러니 대화의 어느 지점에서 '덜커덕' 또는 '딸깍' 소리가 나는 것 같은 정지 버튼이 눌려지게 되면 그 순간부터 그의 이해 못 할 말 마무리에 대한 간격 메우기를 하느라 내 머릿속은 관련된 기억들을 추슬러 내는 작업으로 분주해졌다.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씩 작업 속도가 빨라지기는 했지만 그때는 아직 당황스러운 순간에 대한 데이터가 덜 쌓여있던 때였다.
아이 둘과 나는 멀뚱멀뚱 아빠를 쳐다보며 피자를 먹었다. 얼기설기 마무리된 이후의 대화 내용은 기억에 없다. 아니다.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그 말이 지금 상황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나는 화를 냈고 아이들은 조용조용 대화를 나누다가 돌연 화를 내는 내 얼굴과 상기된 목소리에 어깨를 움츠리면서 더 이상의 말을 멈추었다. 그때, 아이들의 표정은 나를 보며 묻는 것 같았다.
'엄마! 지금 엄마가 아닌 것 같아. 누구야?'
아빠가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소통하는 말을 하는 방법을 모르고, 엄마는 그 아빠와 이야기를 하다 종종 길을 잃어 화를 내고는 한다. 그런 부모에게 길을 묻지도 못한 채 정서적으로 좌충우돌하며 학교 생활을 했을 아이들이었다.
아빠는 지도가 없고, 엄마는 길을 잃고. 그런데도 사랑만은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부모의 모습으로 곁에 있어 주기는 하는, 종종 제 얼굴을 잃고야 마는 엄마를 보면서 헷갈리지 않고 자기들의 길을 찾아가야 하는 쓸쓸한 아이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