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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사람들의 생존 유전자

by 미 지

내가 존재하게 된 직후부터 쌓이는 것이 세계관이라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엄마와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것들로부터 세계관 형성을 시작한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와 아버지로부터 출발한 생애의 첫 기억.


내 생애 첫 기억과 관련된 엄마와 아버지의 모습은 늘 동어반복이다. 술 취해 동네가 떠내려가라 소리 지르며 대문을 열고 들어오시면 그 대문 열리는 소리가 스위치가 되어서 집안에 반복되는 소동. 그리고 집안 살림을 때려 부수다 기어이 엄마의 얼굴을 한 대 갈겨버리는 다부진 아버지의 손과 발. 그 공포와 고요와 눈물.

그렇게 출발하는 나의 세계 속에서 남자 어른인 아버지가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다가 충혈된 눈으로 무언가를 부수고 엄마를 때린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다가 쓰러진 채 더 이상의 소리를 멈춘다. 주섬주섬 고요해진 집안으로 어둠이 내리고 흐느껴 우는 엄마 옆으로 우리 삼 남매가 힘없이 누워 잠이 든다. 같은 방에서 코를 골며 잠을 자는 아버지가 무섭지만 그 방안에 흐르는 공기는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 엄마의 흐느낌 소리, 아무 말 없이 그냥 그 어두움을 이불로 덮은 채 이리저리 누워 잠든 우리 삼 남매의 움츠린 어깨와 펴지지 않는 무릎 위에서 똑같은 색깔과 냄새를 가지고 있다.


그 세계는, 그 공간에 흐르는 공기의 색깔과 냄새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저절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다른 선택지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의 일부분이다. 그대로 태어나 그대로 살다가 그대로 사라지게 되는 자연 그 자체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 그때, 남편에 대해 절망하던 그 지점부터였으니 그것은 삶에 대해 별다른 사색이나 상념 같은 것 없이 그저 살아내기 위해 시간을 살던 그때까지의 나를 종료하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된 출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시 설명하자면 내가 비로소 나의 존재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은 '남편'이라는 '내 거울'의 틀어진 일면을 깨닫던 순간부터였다.


분명 벼랑 위에 선 채로 비와 바람과 눈보라를 맞고 있다가 의외로 그 자신은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말끔한 모양새 그대로 그 비와 바람과 눈보라의 세상을 나에게 전달해 버리는 것만 같게 느껴지는, 모든 분야에서 사실 전달 자로서 그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것 같지 않았다.


사위에게 맛있는 저녁 식사를 사 주겠다며 오리 고기 집으로 우리 내외를 부른 아버지 앞에서 미간에 세로로 주름을 깊게 만들어가며 젓가락으로 불판 위의 고기를 뒤적이던 그는 분명 틀리지는 않은 말을 했다.

"이거, 이거, 이런 기름... 이런 게 몸에 얼마나 안 좋은지 아십니까? 뭘 잘 모르시는군요!"

손수건 같은 건 챙겨 다니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식탁 위의 물수건을 손에 꼭 쥐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으며 평소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연신 머리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아이고야! 이거, 이서방이 안 좋아하는 걸 내가 먹자고 했구나! 크게 실수를 해 버렸네! 미안하네!"

바쁘고 힘들게 출퇴근하는 나를 도와주고 싶었던 엄마가 바리바리 싸 주신 음식을 끼니때 구색 맞춰 식탁에 올려놓으면 그게 어떤 것이든 젓가락으로 집어 내 눈높이까지 올리고서는 말했다.

"이거, 이거. 이거 봐라. 시금치가 하나도 신선하지 않은 걸로 만든 거잖아."

"배추도 재료가 하나도 신선하지가 않아. 가락시장에서 사다 만드셨나 본데, 저거 갈치랑 마찬가지야. 도대체가 서울에서는 신선한 재료를 하나도 구할 수가 없으니 영 맛있게 먹을 게 없어... "

다섯 가지 반찬이 있으면 색깔과 모양과 맛에 대한 다섯 가지의 품평을 마치고 '먹을 게 하나 없어'가 마무리 말로 남았다.

열 가지 반찬이 있으면 열 가지 품평을 마치고 '먹을 게 하나 없어'가 마무리 말이 되었다.


싫은 음식을 싫다 말하는 것을 틀리다 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의 찌푸린 미간을 조금쯤은 펴 주고 싶은 마음이 컸던 나는 엄마가 해 주시는 음식들은 그에게 내주지 않고 그가 편안해하는 음식 몇 가지를 돌아가며 만들어내곤 했다. 하지만 음식 맛이라는 것의 일관성을 지켜내기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이 둘을 낳고는 시장을 보러 나가는 일도 어려워져서 퇴근길 직장 근처에 있는 이곳저곳 맛있는 반찬 가게를 찾아서 그가 덜 투덜거리는 음식들을 사다가 식탁에 올렸다.


그러다 차츰 그의 식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의 식성은 전혀 까다롭지가 않다.

그는 '대화'에 까다로웠다.

대화는 '주고 받는 이야기'를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스몰 토크'에 까다로왔다.


식사 자리에 두 사람 이상이 앉아 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스몰 토크를 시작할 때 대부분은 식탁 위에 올라온 음식을 최초의 주제로 삼아 그날의 이야기를 이어가곤 한다.

그는 그 '여는 말'에 대해 무조건 '아닙니다'로 방향을 잡을 뿐이었다.

"당신, 지난번에 두부 부침을 잘 먹는 걸 보고 엄마가 두부 부침을 만들어주셨어" 하고 말하면

"그런데 두부는 간수가 중요한 건데 말이지, 이건 두부 맛을 모르는 사람이 만든 거잖아"

하고 미간을 모은 그는 말했다.

모든 음식에 대해 다양하고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듯 해 보이는 지적이었지만, 모든 지적은 '재료가 신선하지 않다'로 끝이 나는 그야말로 백전백승의 지적 만능키를 매번의 식사시간 주제어와 맺음말로 사용했다.

식사자리의 '여는 말'이 필요 없는, 그저 일하기 위해 끼니를 때우는 자리에서는 어떠한 품평도 나오질 않았다. 단무지 한쪽, 된장찌개 한 그릇, 계란말이, 김밥, 라면, 국수, 청국장, 떡볶이, 순대국, 김치복음.... 말없이 식사를 하면 아무 말 없이 잘 먹었다.


오랜 세월을 '어쩐지 틀린 것 같지는 않은' 남편의 반응에 혼자 덤비고 쓰러지고 부딪히고 울며 아우성을 치는 가운데 나의 세계관이 천천히 형성되어 왔다.


그를 있게 한 둘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나를 있게 한 둘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듯이.

내가 나를 있게 한 둘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엄마의 모습과 아버지의 반응을 나의 생존 시스템에 입력한 것이라면 남편도 그를 있게 한 둘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그 부모님의 모습과 반응을 그의 생존 시스템에 입력한 것이 틀림없었다.


나 자신에게만 머물던 생존 시스템이 남편의 생존 시스템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이 되기 시작할 때에서야 비로소 나와 타인의 관계와 그 관계가 내포하고 있는 '살아 남는' 혹은 '살아 내는' 일에 대한 각성이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그런 생존 시스템을 입력시켜 준 엄마에게도 그 세계관을 전달해 준 둘이 있었고, 아버지도 역시 당신 부모님에게서 각각 두 개의 생존 시스템을 입력받았을 것이니, 나의 세계관에 가장 근접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존재는 나의 부모님 둘, 내 엄마의 부모님 둘, 내 아버지의 부모님 둘이었다.


그리고 내가 나를 있게 한 둘, 둘, 둘에게서 받은 것들이란 게 대부분 상처였다.

게다가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사실이었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위험해요! 그들은 살아남는 법을 알고 있거든요'

제레미 아이언스와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1992년 영화 '대미지Damage'에서 줄리엣비노쉬가 연기하고 있는 안나의 말이다.


인간관계에서 상처가 많은 사람을 경계하고 피하라는 조언이 넘쳐나고 있는 시절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상처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상처 없이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상처를 상처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대부분의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하나씩 던져보며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상처는 이미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새겨진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엄마의 몸에서 분리되어 탯줄이 잘려나간 순간 생기게 되는 최초의 상처를 가진다. 그럼에도 잘 치유된 잘린 탯줄의 흔적을 상처라고 하지 않는다. 모체와 연결되어 있던 탯줄이 끊어진 순간에 생긴 배꼽으로 이름 붙여져 어머니와 아버지가 물려준 삶의 기원의 흔적이 되어 생명 활동에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 연약하고 민감한 부위로 남아 개인의 평생을 함께 한다.


우리는 얼마나 보잘것없이 연약한지. 살아 나온 세월의 구비구비마다 눈 깜짝할 한 순간에 피해 나온 죽음의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있다는 것을 홀연 깨닫는 순간의 전율을 몇 번 지내다 보면 상처 투성이로 살아남는 법을 알아낸 선대 유전자들의 생존 시스템에 대해 무던한 놀라움을 느끼게 될 때가 있다.

나에게 그런 세계관을 전해 내려 보내 준 소유자들.


역사의 한 줄만 들여다 보아도 그런 비참한 현실 속에서, 그런 비루한 선택을 해서 비로소 살아남은 경험을 대대로 전승시킨 선대의 조상들이 기어이 내게 알려주는 보잘것없는 그 유산들이란 게 지금의 나를 살아있게 한 상처들의 집합이다. 살아남는 법을 알게 한 상처들의 집합체. 그 유전자를 이어받은 오늘의 내가 다른 상처들의 집합체로 살아남은 유전자를 이어받은 오늘의 남편과 살면서 좀처럼 말이 안 되는 하루하루를 이어나갔다. 나를 있게 한 둘, 둘, 둘이 남편을 있게 한 둘, 둘, 둘을 만나 가정이라는 걸 이루고는 아이를 낳아 또다시 살아남을 둘, 둘, 둘의 생존 시스템을 생성하고 있었다. 굴레처럼 반복될 상처받은 사람들의 생존 유전자를.


말이 통하지 않는 남편을 매일매일 들여다보며 잠이 들고 잠에서 깼다. 밤마다 마신 술로 아픈 머리를 한 채 날마다 상처를 핥으며 눈을 떴다. 내일은 또 내일의 눈물이 기다렸다.


장애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행동 분석을 배웠고, 상담 공부를 하면서 내가 오랜 세월에 걸쳐 알아가게 된 것은 DSM(정신 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의 분류에서 남편과 같은 성격 유형의 사람들을 명확하게 '성격장애'로 분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 뿐만이 아니라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격 및 행동 변화 양상을 너무도 세밀하게 분류 해 놓은 그 안의 서술들을 보면 세상엔 정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사람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업데이트되는 성격의 유형으로 인해 고통을 주고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 또한 그 분류 안에서는 '장애'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으며 내 아버지도, 내 어머니도, 내 형제들과 내 친구들도 그렇게 세밀한 현미경같은 분류 속에서는 분명 한가지 이상의 '장애'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직업생활을 하면서도 일상을 살면서도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들이 하나하나가 고통스러운 개연성을 드러내고 있었으나 죽을 수도, 병들 수도, 미칠 수도 없는 유전자를 나는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이제 나는 내가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도대체 왜 그들이 그런 얼굴을 선택했어야 했는지를 하나하나 알아가야만 했다.


'장애'는 '정상'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 어둠은 밝음과 같은 얼굴인 것 처럼 둘 사이의 경계를 걸어가며 사는 것이 결국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5단계까지 개정판을 낸 정신의학협회의 전문가들이 들려주고 싶어하는 말이라고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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