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남고 싶지 않은 마음
팀의 리더로 사역하는 교회의 누나로부터 문자를 받은 건 바쁘게 일하는 중인 월요일 오후였습니다.
"아, 어제 왔었다고 들었어. 오면 미리 연락하지! 다름이 아니라, 우리 지난달부터 개근상 시상을 하는 중이라 출석 체크하고 있거든. 혹시 오늘 퇴근하고 시간 괜찮으면 출석 표시해주러 들려줄 수 있을까?"
지난주부터 밀려있던 업무들과 주말 사이에 온 이메일들을 처리하느라 한참을 바쁘게 일하고 있던 터라 오랜만에 온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반갑지 못했습니다.
"개근상은 괜찮습니다. 다음에 기회 되면 들려볼게요"
"아 개근상도 물론 개근상이지만, 우리가 출석 표시를 안 하고 가면 예배를 드리고 간걸로 인정이 안될 수 있거든. 기껏 시간 냈는데 안 드린 걸로 되면 좀 그렇잖아......"
누나의 문자로 인해 여러 복잡한 마음이 몰려왔습니다. 억울함, 서러움, 짜증, 답답함 등의 감정이었습니다. 별거 아닌 문자지만 몰려온 감정의 크기는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꽤나 무거운 마음들이었습니다. 결국 그 누나의 번호를 차단하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내가 무겁고 버거운 마음으로 신앙을 해야 하는 거지? 그리고 곧 어릴 적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목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머릿속에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예배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게 아닌 우리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우리가 아쉬워서 드리는 것이다,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목사님의 그 가르침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사람과 일을 위해 이렇게 부단히 노력하는데 내가 위안받고자 하는 신에게도 너무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구나, 하며 말입니다.
끝내 누나의 번호를 차단하는 것을 시작으로 때마침 제게 연락을 하던 사람들의 연락도 모두 차단해버렸습니다. 누나와의 대화를 시발점으로 다시 한번 주변 관계를 정리하며 소위 말하는 동굴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주변 관계를 좀 정리해야만 숨을 쉴 것 같았지만 마음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고 왠지 모를 무거운 부담감만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사랑은 조건부 사랑이라고 여겨왔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투정을 부려도 짜증을 내고 어깃장을 놓아도 받아줄 수 있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랑을 원했지만, 바쁘고 편찮으신 부모님의 상황과 장남이라는 현실은 제 마음을 편하게 터놓을 수 없는 환경으로 만들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부모님의 부모가 된 것처럼 부모님이 힘들고 제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도 오히려 제가 그들을 이해하고 챙기고 그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열심을 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학교에 들어가서도 일을 하면서도 부모님과의 관계는 습관으로 남아 사람들을 대할 때 타인의 감정과 마음을 먼저 살피고 그들에게 짐이 되거나 부담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오래된 친구들과 지낼 때에도 내가 어렵고 힘든 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그들이 나를 버겁게 생각하진 않을지 혹은 내가 이런 행동을 했을 때 나를 싫어하진 않을지에 대한 불안이 늘 따르게 되었었습니다.
마음엔 늘 사랑을 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런 상황 속에서도 사랑받고자 하는 노력. 이 두 가지가 항상 같이 존재해왔던 것입니다. 이 마음 중 하나만 갖고 살아가더라도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감정입니다. 그리고 교회 누나의 연락을 차단한 것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써왔던 제 체력이 다해서였습니다. 그래서 누나와의 연락을 시작으로 제가 그동안 일방적으로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해왔던 관계들은 모두 차단을 해버린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들고자 그들과 가까워지고자 내가 혼자 남겨지지 않기 위해서 애써왔던 노력이 너무나 큰 체력소모였고 그 체력이 다해버린 지금 더 이상 관계를 위해 쓸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아 그래 그냥 혼자 남아버리는 걸 택하겠어, 라는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관계 유지를 위해 애써왔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네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3가지 정도만 얘기해줄래?라고 물으면 2가지 이상을 말하는 게 어려운 경우가 많으며 답답함, 속상함, 당혹스러움 등 감정을 세분화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그냥 짜증, 분노 등 크게 포괄적으로 설명을 해버리는 경우 또한 많습니다.
타인의 감정을 살피고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해오려고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왔고 그것이 지금 지쳐버렸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내 감정에 조금 더 귀 기울여 보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생각해보는 것이며, 뭉뚱그려 표현하는 게 아닌 짜증과 분노 행복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감정을 더 세세하게 나눠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전후 상황과 함께 꼭꼭 씹어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날씨가 습한데 아직 오전 업무를 다 끝내지 못해 불쾌함과 함께 불안한 마음이 드는구나, 등과 같이 말입니다. 그렇게 내 감정을 내가 명확하게 알아주고 명확하게 표현해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내 감정과 내 마음에도 충분한 무게를 실어주며 중요한 것임을 스스로에게 일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일방적이지 않은 관계로써 상호적인 관계로써 한쪽이 지쳐 쓰러지지 않는 관계를 꾸려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