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무일푼 출가.
4화의 이야기에 앞서 큰 변화가 하나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으로 거처를 옮긴 것.
이곳은 친구 Y가 남자친구와 함께 구한 집인데 둘이 헤어진 후로는 Y 혼자 살게 되었다. 사람이 사라지며 생겨난 공백에 Y가 부정적인 감정을 잔뜩 채우고 있을 즈음 그녀와 통화를 하게 됐고, 그게 이 동거의 시발점이 되었다.
지인의 차로 짐을 나르고 후에 침대와 책상만 트럭으로 옮겼다. 거실 중앙에 커튼 봉을 설치해 공간을 반으로 갈라 내 방으로 정하고 드레스룸으로 쓰던 작은 방을 집주인인 Y가 쓰기로 했다. 전셋집이라 매달 나가는 월세가 없는 대신 관리비와 가스요금을 내 몫으로 정했다.
손에 익은 물건을 채우고 나의 필요에 맞게 공간을 꾸렸다. Y와는 겹치는 생활시간이 없다시피 해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해져야 했다. 적막에 가까운 고요를 견디며 이곳에 나를 맞춰온 지 어느덧 10개월이 되었다.
원래 살던 동네엔 산이 많았다. 본가는 아파트의 꼭대기였고, 내 방에는 통창이 나 있어 주변의 산과 온 동네가 한눈에 보였다. 노을이 지면 방 베란다에 앉아 한참 동안 창 밖을 바라보곤 했었다. 그 풍경을 두고 오기란 쉽지 않았다.
혹자는 철이 없다고, 생각이 짧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불가피한 사정도 없으면서, 모아둔 돈도 없이 대책 없는 독립을 했대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유의미한 결정이었다. 혼자 해내야 한다면 정말 혼자인 게 나았다. 기대지 않는 만큼 목소리를 낼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