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제 May 11.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은 것

아직도 코칭선생님과 민영언니의 정체는 정확하게는 모른다.

세상에 종교를 가장한 사이비가 얼마나 많겠는가, 코칭선생님은 그중 누굴 믿는 사람이었는지.


민영언니는 언제 어디서부터 그런 속내를 가지고 나에게 다가왔는지 같은 것들? 

그땐 진심이었나? 이때는 진심이었을까? 와 같은 질문들을 혼자 되뇌다가 조금 씁쓸하게 연락처를 지웠던 기억을 마지막으로 나는 그들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저 사람이라면 좋아서 미주알고주알 내 신상정보를 다 나불대고

쉽게 정을 주고 쉽게 마음을 주던 그 어리숙하던 과거의 나에 대한 후회와 어리석음에 자다가 이불을 뻥뻥 차대는 날들을 보냈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들 하지 않겠는가.

모든 일에는 배울 점이 있다고 했다.


10여 년 전, 신입생 시절 학생회에서는 새내기들에게 '캠퍼스 내에 설문조사, 과제등을 이용하여 개인정보를 묻는 사람들을 조심하라.'라는 공지를 내렸었다. 

매 새 학기가 되면 내려오는 공지였는데, 그만큼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스무 살 어린아이들을 타깃으로 잡는 거였다.

그리고 그들의 수법은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었고, 난 그 고일대로 고인 수법에 그대로 넘어가 버린 것이 아닌가. 

무려, 이제 스무 살 신입생도 아닌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는데,

내가 이 수법에 넘어간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나는 사이비 같은 거 당하지 않아'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떠한 나쁜 일도 그걸 알고 당하는 사람은 없다.

그 사람은 뭐, 당하고 싶어서 당했겠을까 


자신감 이라기보단 오만이었다.

'나는 사이비 같은 거 당하지 않아.'에서 시작한 생각은

'설마 이게 사이비겠어?'

'사이비들은 원래 카페 가자고 유도해서 얻어먹으려고 한다는데, 이 사람들은 안 그런 거 보니까 아닌가 봐'로 이어져 더 깊은 늪으로 끌고 가 버렸다.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힘들다면 내가 믿을 있는 타인에게 상담해 보는 것도 좋은데, 

저런 판단을 할 즈음에는 내 마음속 언저리에 고고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서른이나 넘어서 사이비에 당했다는 걸 얘기했을 때의 상대방의 반응 같은 게 예상이 되니까,


결론적으로 나는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빠져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사이비 예방주사 말고도 한 가지 개인적으로 얻은 것이라면,

생각보다 내 상처를 얘기하는 것이 쉬웠다는 것이다.


나에겐 2018년 사태라고 할만한 어마어마한 큰 사건이 있었는데,

처음 이 이야기를 엄마에게 털어놓을 당시 엄마를 앞에 두고 장장 20분간 입을 달싹거리며 말을 못 했었는데,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세 번째 만남에서 너무나 쉽게 툭 털어놔버린 '그 일'


나는 내 상처를 아직까지도 안타깝고, 기구하고, 힘들고

꽁꽁 숨겨야 할 고고한 존재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자기 연민을 너무 가지고 있는 것도 나르시시스트라고 했다.

뭐,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긴 하지만 그들을 통해 나름 얻은 것도 있기에 고맙...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고마울 거 까진 아니다.


그 일 이후로부터 나는 사이비라면 치를 떨게 되고, 주변 친구들에게 늘 '사람 조심해', '네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을 떠올려봐, 생각했어? 그 사람이 바로 사이비일 수도 있어.' 라며 사이비 예방주사를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내 이 경험담은 굉장히 사소한 경험일 수도, 새로운 경험일 수도, 바보 같은 경험일 수도 있겠지만

나 같은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며.


이전 10화 끝 그리고 다시 시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