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2. 아들의 죽음 (2)

by 진우


기별을 전한 남자가 멱살을 잡은 내 손을 겨우 떼놓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첫돌이 불과 두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들이 죽다니.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이건 뭔가 잘못된 기별이야. 절대로 그럴 리 없어.'


내용을 전해 들은 박반장과 김목수도 펄쩍펄쩍 뛰면서 애먼 사람을 그렇게 놀리는 것 아니라며 그 남자를 나무랐다. 그리고 내게는 우선 고향에 전화부터 해보자고 했다. 한참 만에 연결된 장거리 전화 속에서 마을 이장 종태 형님이 한숨을 쏟아냈다.


“아이고, 이 문디 자슥아. 와 그리 왕래가 없었노. 설에는 다녀갈 줄 알았다. 퍼뜩 온나. 그래도 장례는 아비가 치러야 할 거 아이가.”


아들의 돌 때 입히려고 사둔 한복과 딸아이의 장난감들을 가방에 쑤셔 넣는데 눈앞이 자꾸만 흐려졌다.


“아이고, 머이 어드래, 머이 어드래. 불쌍한 우리 간나, 어쩜 좋으니.”


주인집 어머니의 곡소리가 골목 어귀까지 따라왔다.




꼬박 하루가 걸려 고향에 도착했다. 동네 조무래기들이 뒤를 따라오며 웅성거렸다. 돌멩이를 던져 아이들을 쫓았다. 인사를 건네려는 사람들도 애써 무시하고 집으로 달려갔다.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툇마루에 쓰러져있던 어머니는 울다 지쳤는지 나를 보고도 반가운 척을 하지 않았다. 겨우 힘을 짜낸 어머니가 한 마디 툭 던졌다.


“배낭골에 올라가 봐라.”


소꼴을 베러 오르내리던 험한 고갯길을 단숨에 올랐다. 저 멀리 풀숲 사이로 딸의 모습이 보였다. 나를 발견한 딸이 ‘와아, 아부지!’ 하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엄마는, 엄마는 어데 있노?”


딸을 안아줄 정신도 없었다. 딸이 손을 들어 가리킨 곳으로 조그만 돌무덤이 있고, 그 옆으로는 누군가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바로 아내였다. 천천히 다가갔다.


“왜이라고 있노? 도대체 무슨 일이고? 말을 해라, 말을!”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제발 정신 차리 봐라. 멀쩡한 얼라가 갑자기 왜 그리 됐나 말이다!” 아내의 팔을 잡아 흔들었다.


넋이 나간 듯한 아내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내가 죽였소. 무식한 여편네가 아들을 죽였소.”

커억커억 흐느끼던 아내는 곧 악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내가 이 무식한 년이 멀쩡한 자식새끼를 죽였단 말이오!”


아내가 왈칵 피를 토했다. 진달래보다 더 붉은 피가 아내의 하얀 소복 위로 쏟아졌다. 사월의 하늘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어지러웠다.




어떻게든 한마디라도 거들려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서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죽은 놈은 죽은 놈이다. 울고 있다고 죽은 자식이 살아서 돌아와? 주저앉아 울면서 죽은 자식이나 그리워하라고? 그럴 순 없지. 그래선 안되지.’


다시 가방을 들쳐 메고 집을 나섰다. 아내와 어머니에게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딸이 장난감을 내팽개치더니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뿌리쳤다. 딸이 저만치 나동그라졌다. 악을 쓰며 울었다. 돌아보지 않았다.


반나절도 안되어서 이렇게 떠나는 법이 어디 있냐고, 정녕 아비 맞냐고, 성난 형님들이 길을 막고 주먹으로 얼렀지만 그들을 밀쳐내고 신작로를 향해 달렸다. 부지런히 가면 부산행 막차는 탈 수 있을 것이다. 읍내로 가는 오후 네 시 버스가 막 삼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차에 오르면서 아들이 묻힌 배낭골을 슬쩍 쳐다보았다. 창자가 끊어진다는 것은 이런 아픔을 말했던 것일까? 눈을 질끈 감았다.




하루 만에 다시 부산으로 돌아온 나를 보고 용길 형님이 길길이 뛰었다. 만종 형님은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네가 사람이냐? 매정한 인간이랑은 같이 못 살겠다. 나가라. 돈만 밝히는 너 같은 놈은 사람새끼도 아니다. 주인집 어머니도 울음으로 거들었다.


“간난이 잃은 에미나이라도 보살펴주고 와야지, 이렇게 오면 어드러케 하니. 독한 종자 따로 없다더니 네가 그런 잡놈이었구나. 죽은 자식이 저승에라도 편하게 갈 거 같으니?”


저승이란 말을 듣자 이틀 동안 억지로 참고 있던 눈물이 갑자기 터졌다. 용길 형님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타들어가는 소리가 힘겹게 목구멍을 기어 올라왔다.


“행님요, 미친놈처럼 돈 벌어서 죽은 자식 무덤이라도 잘 꾸며 줄랍니다! 소가 밟던 돌 밑에 자식새끼 대충 묻어놓고 왔으니, 빨리 돈 벌어서, 큰돈 많이 벌어서 고운 잔디 예쁘게 덮은 무덤 하나 만들어 줄랍니다! 제발 도와 주이소, 행님.”

"아무리 그래도 이 사람아..."

"아따, 워째스까. 이런 잡놈을 워째스까."


용길 형님과 만종 형님을 끌어안고 밤새도록 그렇게 울었다. 1970년 사월 육일, 음력 삼월 초하룻날의 일이었다.


Wacmn7TqPddX50Vq5fIrp4OIh0k 1972년(임자년) 어머니 회갑연. 앞으로 이야기할 큰일들을 몇 차례 치르고 난 뒤의 모습이다.


keyword
이전 01화아들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