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마라, 반드시 살릴테니

#9. 기적은 있다 (1)

by 진우


미동도 없었다.


아내는 통곡을 하다가 기절했고 깨어나 울다가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주인집 어머니가 울면서 옷고름에 물을 적셔 아내를 달랬다. 만종 형님은 무당을 잡아 죽이겠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용길 형님이 동네 사람들을 서둘러 쫓아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나는 뜬금없이 허기가 느껴졌다. 미칠 듯이 배가 고팠다.


나도 모르게 제물祭物이 차려진 굿상을 향해 무릎걸음으로 기어갔다. 떡이며 과일이며 눈에 보이는 대로 정신없이 집어먹기 시작했다. 아기 아빠마저 미쳐 버렸다고 마당에서 밀려나던 사람들이 또 웅성거렸다. 내 멱살을 잡고 만류하는 만종 형님까지 뿌리치고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입에다 음식을 욱여넣었다. 그것은 분명 내 의지가 아니었다. 무언지 모를 강한 힘이 내 손을 움직여 입 속으로 음식을 밀어 넣게 했다.


그러기를 십여분. 갑자기 혜자가 소리쳤다.


“아지매! 새댁이 아지매요. 눈을 떴습니다. 얼라가 눈을 떴다고예!”




그날의 일을 우리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눈으로 보았으나 믿지 못한다.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들은 그 이야기가 거짓말이라며 코웃음을 친다. 숨이 멎어 죽었던 아이가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냐며, 소설 쓰지 말라고. 그러나 주인집 어머니는 아흔셋 나이로 돌아가실 때까지, 만종 형님과 용길 형님은 지금까지도 무용담처럼 그날을 회상하곤 한다.


“내가 봤당께,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당께, 안 그라요 성님? 아따, 혜자야, 니가 증인이랑께.”


내가 신神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된 것도 이 날부터였다. 하지만 게걸스러웠던 그날의 허기에 대해선 도무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미련이 남았던 것인지 아들은 기적적으로 숨을 붙여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그렇다고 병으로부터 완전히 회복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며칠이 지나고 겨우 정신을 수습한 아내와 함께 이번에는 부산대학병원을 찾아갔다. 인자한 외모의 의사가 아들을 진찰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어렵기는 하겠지만 한 번 도전해 봅시다. 세상에 고칠 수 없는 병은 없으니까요. 아들을 고칠 수 있는 기계가 사흘 후면 병원에 도착합니다."


아내와 나는 드디어 희망이 생겼다며, 아들이 아프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웃을 수 있었다. 입원 보증금으로 25만 원을 예치하라고 했다. 막막했지만 이번에는 주인집 어머니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은혜를 베푼 사람이 내겐 너무도 많았다.


"보호자분, 아기 이름이 뭡니까?"


접수처의 간호원이 우리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여태 아들의 이름도 짓지 않았음을 새삼 깨달았다. 주인집 어머니가 용한 작명소를 알려주겠다 해서 그 말을 기다렸던 때문이었다.


"아직 이름이 없습니더."


알겠다는 답을 하며 간호원이 무엇인가 적는 듯했다. 수속 서류에 또렷하게 적힌 아들의 이름 세 글자는, 임, 아, 기.




입원 수속을 마친 다음날 오후, 담당 의사는 자기를 따라 어떤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임 아기를 내려놓고 뒤에 서서 지켜보라는 것이었다. 잠시 후에 젊은 의사 십여 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의사는 아들을 칠판 앞에 있는 철로 된 탁자로 옮겼다. 차가운 바닥에 살이 닿으니 아들은 또 힘든 숨을 헐떡였다. 의사가 하는 말은 영어가 대부분이어서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희귀병이니 어쩌니 그런 말이 섞여 있었다. 젊은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시로 대답을 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진료가 아니라 인턴 의사들을 위한 수업이었던 것이다. 의사는 마치 개구리 다루듯 내 아들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다리를 들어 올렸다가 팔을 비틀어 잡곤 했다. 그러기를 꼬박 세 시간. 아들은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듯,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생울음을 토했다. 그것을 눈뜨고 지켜보기란 정말 힘들었다.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선생님, 고마 하입시더. 안 되겠습니더.”


젊은 의사들이 일제히 나를 돌아보았다. 의사는 내게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아들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서 기다리던 아내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는 않았다. 접수처로 가서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하니 보증금에서 5만 원을 공제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들을 안고 병원을 나섰다. 가을 하늘은 푸르기만 했다.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피골이 상접했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아들은 살려도 내가 살리고, 죽여도 내가 죽인다. 그리고 다짐했다.


"죽지 마라, 반드시 살릴 테니."


용하다는 한의원이나 병원이 있다고 하면 시간과 거리를 따지지 않고 찾아갔다. 그러나 답은 한결같았다. 범내골 로터리의 김희상 소아과를 찾아갔을 때였다. 진찰을 마친 김 원장님이 조용히 내 손을 잡고 공손하게 말했다.


“애기 아빠, 의사로서 할 소리는 아닙니다만 이 아이는 불치병입니다. 혹시 종교가 없어서 미신을 믿는다면 차라리 굿을 한 번 해 보십시오.”


또 굿을 하란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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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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