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기적은 있다 (2)
시간은 어느덧 8월 말을 향하고 있었다. 아들이 발병한 지도 한 달 반이 지났다.
나는 지칠 대로 지쳤고 아내 역시 말할 것도 없었다. 혜자가 일곱 살 딸아이를 돌보긴 했지만 거지꼴이나 다름없었다. 우리의 매일을 곁에서 지켜보던 주인집 어머니는 항상 옷고름이 축축했다. 용길 형님과 만종 형님은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폐인처럼 방구석에 틀어박힌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거나 위로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다. 한마디로 우리 모두는 사람 사는 꼴이 아니었다.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어느 날 친형이 찾아왔다. 형은 마당에 선 채로 집을 스윽 둘러보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가망 없다. 짐 싸라. 지금 네 꼬락서니를 한번 봐라. 고향 버리고, 선산 버리고 부산 오더니 이 꼴 보여주려고 그랬더냐. 고향으로 돌아가라. 얼라는 죽으면 땅에 묻어줘라. 그게 차라리 나을 거다. 그리고 농사나 지어라.”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요, 내가 이 꼬락서니 되니 보기 좋소? 춤이라도 추지 그러시오.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이상하게도 순순히 형의 말을 따라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체념이었다.
결국 우리는 일 년 반의 부산 전포동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땅을 살 돈을 마련해서 금방 돌아가겠노라 장담했던 나, 그리고 살아서는 두 번 다시 고향 땅을 밟지 않을 거라던 아내. 떠나올 때의 꿈과 잠시 느꼈던 희망 따위는 진작에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죽기 직전의 아들과 마음까지 깊이 상처를 입은 아내, 그리고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엄청난 빚뿐이었다. 용길 형님과 만종 형님, 그리고 주인집 어머니를 제대로 볼 낯이 없어서 죄인처럼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정들었던 루핑 집을 떠났다. 떠나올 때 들고 왔던 보따리 하나가 돌아갈 때의 짐의 전부였다.
밤배를 타기 위해 충무동 선창가에 도착했다.
형님 몰래 형수가 이번에도 우리를 따라나섰다. 순서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데 김밥 장수 하나가 우연히 아들을 본 모양이었다.
“아이고, 이게 짐승이가, 사람이가?”
그 말을 듣더니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저마다 한 마디씩 뱉었다. 저게 머꼬? 얼라가 병신인갑네. 아내는 그 말이 듣기 싫어 포대기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구경 났소? 저리 안 꺼지나. 죽고 싶나. 나는 그들에게 욕을 퍼부었다. 내 악다구니에 놀라서 물러나던 장사치 중 하나가 그랬다.
“하이고, 꼴에 애비라꼬 저런 거 편드나. 퍽이나 자랑스럽겠다.”
우리가 승선할 차례가 되었다. 표를 받으려다 말고 검표원은 아내가 안고 있는 포대기를 슬쩍 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배에 못 태워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삼등석 표 석 장을 보여주며, 표가 이렇게 버젓이 있는데 왜 안 되냐고 물었다. 검표원이 이죽거렸다.
“아이고, 보소, 이 양반아. 알면서 그라능교. 이렇게 재수 없는 거 태웠다가 배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짤라고. 좋은 말 할 때 퍼뜩 내리소.”
그때였다. 옆에 섰던 형수가 검표원의 뺨을 올려붙였다. 처얼썩. 제법 큰 소리가 났다.
“이런 개자식을 봤나. 이 썩을 놈아. 뭐가 어쩌고 어째? 좋은 말 하지 말고 어데 나쁜 말 함 해봐라, 이 시불 놈아. 다시 한번 씨부리 봐라, 엉?"
그러면서 형수가 허리춤에서 돈다발을 꺼내 검표원의 얼굴에다 집어던졌다. 또 퍼억 소리가 났다.
“받아라. 돈이다. 다 받아 처 묵고 제일 좋은 자리 내놔라, 이 자슥아.”
난데없는 공세에 머쓱해진 검표원이 그제야 주위의 눈치를 살피다가 지폐 몇 장을 뽑은 다음, 나머지를 조심스레 돌려주었다. 바뀐 우리의 자리는 일등석이었다. 딸아이를 재우고 아들을 옆에 눕혀 다독이는 동안, 김밥과 소주 한 병을 사 온 형수가 뒤늦게 옷매무새를 고쳤다. 그리고는 곧 아내를 와락 끌어안더니 작정하고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동서야. 우리 불쌍한 동서야. 미안타. 너희 시아지배를 용서해라. 아이고.”
부둣가에 도착하니 이미 날이 밝았다. 미리 기별을 받았는지 마을에서 택시를 보냈다.
고향집은 초상집이나 다름없었다. 어머니는 마당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발버둥을 치고 있었고, 이부異父 동생은 부산에서 큰 형님의 연락을 받았다며 삽과 곡괭이를 챙겨 무덤을 파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내는 몇 걸음 제대로 걷지 못하고 어머니 옆에 꿇어앉아 울기 시작했다. 곡哭이 담장을 넘었다.
“아이고, 자식 하나 죽인 것도 모자라서 또 하나를 죽여서 데리고 왔나. 나는 못 산다. 나는 못 산다. 나도 데리고 가라. 죄 많은 나도 죽을란다.”
오후가 되자 아들은 마지막 힘을 내려는지 또 돼지 우는 소리를 냈다. 구경하러 몰려든 동네 사람들에게 막내 동생이 참지 못하고 낫을 휘둘렀다.
“어데 구경 났소, 빨리 가소.”
한바탕 소동 끝에 결국 사람들이 물러가고 텅 빈 마당에 정적이 들어찼다. 어느 누구도 말이 없었다. 간간이 들리는 아들의 커억커억 소리가 그래도 아직은 목숨이 붙어 있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아직 죽지 않았으니 아직은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었을까. 그 힘겨운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차라리 아들을 따라 저 세상으로 가 버릴까 하는 못된 생각마저 들려던 참이었다.
“계시는가?”
대문간의 인기척에 동생이 낫을 들고 달려 나갔다. 한참 동안 이야기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후 동생이 돌아와 내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동생의 뒤로는 머리가 허연 어떤 할머니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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