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기억, 엄마

#12. 에필로그 - 엄마의 기록

by 진우


1970년 2월, 아직은 우리 가족이 고향 남해南海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때였다. 남편은 땅을 살 돈을 벌어 오겠다며 부산으로 떠났고, 고향집엔 시어머니와 나, 다섯 살배기 딸, 그리고 돌이 채 안된 아들이 남았다.


가난했지만 고부姑婦 갈등은 없는 평온한 집이었다. 소작을 하며 살았어도 남들의 손가락질은 받지 않는 나름의 체면과 품위가 있었다.


어느 날, 아들에게 홍역이 찾아왔다. 내가 보기에는 아들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어무이, 얼라가 이상합니더. 병원에 델꼬 갈까 싶습니더.”

“아이고, 내가 어데 홍역 한두 번 겪나. 아직 아이다.”


고집 센 시어머니는 내 걱정을 억지로 덮었다. 나는 자꾸만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시어머니를 끝내 설득할 순 없었다.


사흘째 저녁이 되자 아들의 증세는 더욱 심각해졌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여전히 완강했다.


“그냥 있어라. 내가 애를 벌써 열 낳아봤다.”


그러나 그날 밤 열 시쯤, 아들의 목이 힘없이 뒤로 꺾이는 걸 보고선 나는 판단했다. 이러면 애가 죽는다. 가자, 빨리 병원으로 가자.


나는 무작정 아들을 둘러업고 마당으로 뛰어나왔다. 말도 더럽게 안 듣는다는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사립문 즈음에서 들었다.


그믐이라 달도 없는데 비마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병원까지는 40리 길. 15킬로가 족히 넘었다. 읍내에 달랑 하나 있는 택시는 그날따라 손님을 싣고 진주로 나가고 없었다.


나는 그냥 그대로 신작로新作路를 달렸다. 삼거리까지만 해도 4킬로가 넘는 거리였다. 경황이 없던 탓에 우산도 챙기지 못했다. 진흙탕에 빠지고 돌부리에 차여가며 큰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맨발이었다. 발가락 사이에서 피가 났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등에 업힌 아이의 몸이 또 파르르 떨었다.


비는 더욱 굵어지고 앞뒤 분간마저 되지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저 멀리서 트럭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팔을 저으며 길을 막아 트럭을 세웠다.


“상가商街 마을 병원까지만 갑시다, 아저씨. 돈은 그때 드리겠소.”


아이를 업은 여자가 처량해 보였는지 트럭기사는 오던 길을 돌려 차를 몰았다. 내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기사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병원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불이 꺼져 있었다.


“여그서 기다릴 테니 들어가 보이소, 퍼뜩.”


나는 아들을 업은 채로 미친 듯이 병원 문을 두드렸다. 한참만에 안쪽에서 기척이 났다.


“이 밤에 먼 일인교?”

“선생님, 선생님요. 우리 얼라가 죽습니더. 살려주이소.”

“얼라요? 어데 보입시더.”


침대에 놓인 아이는 이미 파랗게 식어있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던 의사가 말했다.


“애기 엄마요, 얼라가 죽었습니더 이미.”

“뭐라꼬요. 아입니더 선생님. 아입니더. 다시 함 봐주시오. 그럴 리 없습니더.”

“삼십 분 정도 됐다카이.”

“아입니더, 그럴 리 없습니더. 지금도 숨을 쉰다 아입니꺼. 보이소, 보이소 예?”


나는 미친 여자처럼 울부짖었다. 그러나 의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시 울면서 매달렸다.


“선생님요, 그라모 주사 한 대만, 주사 한 대만 놔주이소. 예?”

“죽은 사람한테 주사 놓는 건 불법입니더.”

“아니예, 선생님. 선생님한테는 절대 폐 안 가게 할 테니 한 번만, 죽은 얼라, 주사라도 한대 마차서 보낼랍니더.”


의사는 고심을 하다가 한참만에 주사를 꺼냈다. 그러나 약이 들어갈 리 없었다. 파랗게 식어 버린 살결이 약을 토해냈다.


“이제 그만 가 보소. 치료비는 안내도 되니까. 얼라가 이 지경이 되도록 뭐했능교? 무식하구로.”


나는 쫓겨나듯 병원 밖으로 밀려 나왔다. 트럭은 가고 없었다. 비는 더욱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아들은 그렇게 채 한 살을 살지 못하고 내 등에서 비 내리던 밤에 죽었다.


비가 퍼붓는 그믐밤 삼십 리 길, 나는 그 길을 다시 맨발로 걸으며 울었다. 등에 업힌 아이는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이 미친년, 무식한 년. 자식 잡아먹은 썩을 년.’


나는 울며 또 울며 소리치며 그 길을 그렇게 걸었다.


다음날, 거짓말처럼 날이 갰다.


집안 삼촌들이 뒷산 언덕배기에 땅을 팠다. 관도 묘도 없이, 그저 한 뭉치의 하얀 천이 전부였다. 땅을 다지고 술을 부으면서 삼촌들이 울었다.


“잘가래이 잘가래이, 저 세상 가서는 아프지 마래이.”


남편이 연락을 받고 부산에서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이미 땅 위엔 주먹돌 몇 개가 덮였고 술도 말라버린 뒤였다.


나는 그날부터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매일 아침이면 호미를 들고 아들이 묻힌 자리를 맴돌았다.


봄이었다. 고사리가 지천으로 뻗었고 진달래가 흐드러졌다. 다섯 살 철부지 딸은 진달래를 머리에 꽂고 들밭을 맴돌았다. 나비가 날고 구름이 날던 그 봄날에 말이다. 나는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노래만 미친 듯이 부르고 또 불렀다. 시집와서 처음 배운 노래였다. 노래를 부르다가 또 눈물을 적셨다. 딸은 그 노래에 맞춰 또 춤을 췄다. 둥실둥실 우리 아가, 내 품속에 잠자그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아가, 잘 살그라. 이 에미가 죽일 년이다. 이 에미가 곧 따라가마. 아가, 보고 싶은 내 아가...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피를 토한 듯 붉었던 진달래 밭. 그 해는 봄마저 또 그렇게 붉더란다. 그렇게 말이다.


RU_Dvj63b6ZruTaJV1TQmvqolfY 그해, 그 봄, 그리고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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