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했으나 치열한 삶의 기록

#13. 작가의 변명

by 진우


추억追憶은 기억記憶을 좇아가는追 과정입니다.


때론 추억醜憶같은 일도 섞여 있겠지만 설령 나쁜 기억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만큼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늘 출발해서 어제를 지나 처음을 향해 하나씩 되짚어가는 재미난 ‘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그 ‘놀이’를 함께 보는 것 역시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과정 속에서 찾아낸 흔적을 모두가 공감共感하기 때문입니다. 맞아, 나도 그랬지, 그땐 그랬어. 추억을 찾아가는 과정은, 그래서 우리 서로에게 응원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추억의 가치를 공감과 응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추억에는 언제나 아버지가 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만들어 주신 나의 첫 시작이 당연히 아버지니까요. 물론 등짝의 손바닥 자국에 기여한 바는 어머니가 더 클 수도 있겠지만, 동성同性에 대한 의리를 무시할 수는 없으니 오늘만큼은 추억의 시작점에 아버지를 앞세우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신파新派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릴 듯합니다. 흔히 말하는, 아아 눈물 없이 볼 수 없고, 콧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슬픈 영화라고나 할까요? 대를 이은 가난, 어릴 때 돌아가신 부친, 홀어머니의 고생, 이부異父형제들과의 갈등, 낯선 도회지 생활, 첫 딸의 소아마비, 첫아들의 죽음, 둘째 아들의 중병,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들의 연명延命, 계속된 가난과 도전, 그리고 실패. 물론 이 신파극의 여주인공은 당연히 저희 어머니겠지요.


앞서 읽으셨던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아버지가 마냥 걱정 없이 편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두 살 아래의 여동생이 태어날 즈음 또다시 일어난 석유 파동과 경기 침체, 끊이지 않는 저의 잔병치레. 비가 오거나 더위가 길어지거나 추위가 닥치거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자리가 없어지면 어쩔 수 없이 쉬어야 했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까지. 배움이 짧은 육체 노동자가 도시에서 살아남기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남의 집을 전전하면서 받았던 설움, 가장으로서 느꼈을 상실감, 고향에 남겨진 어머니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아버지의 인생에 생채기를 냈겠지요. 물론 당신이 먼저 입 밖에 낸 적은 없지만 말입니다.


기록되지 않는 것은 기억되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어느 날 문득, 그 구절에 꽂혀 어머니를 포함한 아버지의 기억을 기록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고향을 떠나 객지에 살다 보니 어쩌다 본가에 들르거나 아니면 안부를 묻는 전화를 통해서만 겨우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좀처럼 말씀을 하지 않으려 하시더군요. 굳이 그런 걸 알아서 뭐 하겠냐고. 그런 적 없다. 힘든 적 없다. 잘 거다, 전화 끊어라 등등. 조르고 졸라서 아버지의 팔십여 년 인생 메모를 정리하는 데에 대략 1년 정도 걸린 듯합니다. 그전까지는 산발적으로 들었던 에피소드였거나 퍼즐처럼 흩어졌던 기억의 조각들이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더군요.


타이틀을 우선 정리하고 각각의 사연은 따로 공책에 적어두었습니다


정리의 과정은 한편으로는 저와 아버지와의 화해를 의미했습니다.


사춘기를 핑계 삼지 않더라도 철없던 시절의 저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꽤나 많았습니다. 가장 단적인 것으로 제가 늘 아버지를 공격했던 말들이 생각납니다. 아버지는 왜 가난합니까, 아버지는 왜 돈이 없습니까, 그리고 아버지는 대체 나한테 뭘 해줄 수 있습니까. 할 수만 있다면 저 시절로 돌아가 저 버릇없는 녀석을 한대 쳐올려주고 싶습니다만.


매일같이 아버지를 원망한 때가 있었습니다. 절대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 다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억을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그런 제가 한없이 어리석었음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과연 내가 그때의 아버지라면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까. 죽어가는 아들을 앞에 두고 나는 무엇을 했을까? 분명 나는 아버지보다 더 배우고 아버지보다 더 편하게 컸는데, 나는 과연 그때의 아버지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아이를 낳아 저 역시 아버지가 된 지금, 과연, 나는 과연 그때의 아버지보다 더 좋은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결국 기억의 정리를 통해 그때의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낳은 아들이 다시 아버지가 되듯, 아버지는 아버지로 이어지고 아들은 아들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갑니다. 그것은 필연必然입니다. 절대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노라 다짐한 아들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느끼게 되고,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겠다 의절한 아버지의 지갑에는 아들의 사진이 늘 꽂혀 있습니다.


행여 여러분 중에서도 조금은 아픈 관계가 있다면 이제는 그 아버지를 조용히 안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억 속에서라도 말입니다.


나는 내 아들이 나의 아버지로부터 이어지는 좋은 유전자를 가졌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 유전자의 이름은 바로 희망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아버지, 그 변함없는 희망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음을, 그래서 비록 힘든 오늘이지만 멋진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해 주셨음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것, 그것은 내가 아버지를 존경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곁에서 비바람 몰아치는 운명의 바다를 함께 건너오신 나의 어머니. 마찬가지로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끝으로 저의 부모님께 이 말씀을 전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나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모두가 가망 없다고 하던 그 핏덩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모든 역사가 시작되기 전, 결혼 직후 첫 나들이 기념 사진입니다.



저와 함께 추억 속을 여행해 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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