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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과 간호사 KokoA Dec 30. 2023

죽어도 되지만 죽기는 싫어

프롤로그_죽어도 되는데 죽어도 여한이 없지는 않다. 


모멘토 모리(Memento mori ):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


고대 로마에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는 말이라는데 개선 장군도 아닌 나는 매일 죽을 것에 대해 생각한다. '오늘은 승리했지만 언제 전쟁에서 패배해 죽을지 모르니 겸손하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인데  겸손? 그런 건 모르겠고 나는 그냥 매일 죽을 것만 생각했다. 겸손해야 될 만큼 익은 벼의 삶을 산 것도 아니고 쭉정이처럼 살았으니까. 

우울증 환자의 자살 사고란 이런 것이다. 숨 쉬듯이 자연스레 죽을 것을 생각한다. 


여느 날처럼 우울 속에서 나는 어떻게 죽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달리는 열차에 뛰어드는 것, 수면제를 한 번에 털어 넣는 것, 높은 건물에서 떨어지는 것 등등 생각하다 유명인들이 자주 하는 차에서 번개탄을 피우는 것이 떠올랐다. 그나마 제일 나아 보였는데 이런. 나에겐 죽을 차가 없다. 그렇게 죽으려면 인적 드문 곳으로 가야 하는데 나는 액셀과 브레이크 위치를 헷갈릴 만큼 운전을 못 한다. 서른셋이 되도록 운전도 못 하고 뭐 했나 싶어 분했는데 문득 한 손으로 운전하는 내가 섹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섹시한 나를 못 보고 죽는 건 여한이 남을 것 같아서 일단 더 살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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