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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 Oct 16. 2023

10_차라리 불같은 사랑을 하지.

무엇도 상처는 남지 않을 수 없겠지만,

 


신혼 때였나, 티브이를 보다 외도 이야기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다가 그런 얘기를 했던 거 같기도 하다. 마음이 없이 그저 정욕에 의한 몸을 나누는 것은 한 번쯤은 이해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몸이던, 마음이던... 애초에 말이 안 된다. 기혼자의 외도는 누구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배신감만 남긴다.





 어른들 말대로 말이 씨가 되어버린 것인가. 우리 집 유책이는 딱 한번, 그저 정욕에 의해 몸을 나눈 것뿐이었다(고한다). 그러기 위해 애정표현을 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내뱉는 것을 보면 신혼 때 우리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 오늘 같은 밤에는 그런 생각도 해본다.

차라리 너네 둘이 불같은 사랑을 한다고 했다면 내가 좀 더 쉽게 놓아버리고, 이런 아픔 겪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래, 우습지. 한번 즐기기 위한 몸을 섞은 행위로만으로도 자살기도를 하고, 자해를 할 만큼 힘들어하면서 둘이 불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고 사랑을 운운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보다 길길이 날뛸 핑계가 되어주었을까, 사춘기 아이들을 외면하고 이혼이 정당할 만큼 당당하게 해 주었을까. 남편의 외도를 겪으며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쉽게 공감하거나 쉽게 장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나는 제법 안다고 생각해 장담하는 부분들이 꽤나 있었는데... 인생이란 것은 역시 끝까지 살아봐야 한다. 내가 남편의 외도를 겪어보게 되다니. 그 무엇보다 장담했던 일이란 말이다. 정말 퇴근하면 집으로만 오는 사람도 외도가 가능해요... 여러분.... 하하하하하. 


 일교차가 심해지며 아이들이 감기가 심하게 들었다. 나는 이혼은 아직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그럴 수도 있을 만큼 큰 잘못을 아빠가 하였고 엄마는 그래서 많이 아프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힘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애써 아빠가 좋은 남편이거나 심각하게 (정신적으로) 아픈 엄마가 건강하다고 거짓 포장으로 안심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일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내가 정말 갑자기 자살에 성공? 해버린다던지, 헤어진 줄만 알았던 남편이 상간녀와 아직도 만나고 있다던지.. 하는 내가 상상도 못 할, 장담하지 못한 미래가 갑자기 나타난다면 아이들이 더욱 힘들 것만 같았다. 

 사실 지금의 나는 나를 잘 모르겠을 만큼 아프다. 정신과에서 선생님은 계속적으로 입원 치료를 권유하신다. 나도 사실 누구보다 내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을 만큼 아프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대부분의 시간 일을 하며 멀쩡한 척해야 하므로 나는 매일의 삶이 고달프다. 

 그들도 이런 일들이 다 일어날 줄은 모르고 불꽃같은 불장난을 했겠지. 차라리 진짜 사랑을 하지 그랬니. 한마디 변명도 들어줄 필요 없이 돌아설 수 있도록.

나는 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해본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성욕도 식욕 같은 기본적인 욕구이니까. 그보다 더 짜릿한 쾌락을 원하는 하급인간들은 몰래 먹는? 남의 떡이 더 맛있을 거라고 착각할 만큼 양심이 쥐콩만 하다.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눴으니 남아있는 유책이는 온전한 존재가 아닐 수밖에 없다. 이제 내가 알던 남편은 없다. 새로운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이 현재로는 긍정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존재라 할지라도 끝없이 의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면 현타가 온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가끔 여자들이 장난처럼 하는 이야기가 나이 들면 혼자 살고 싶다는 이야기인데, 나는 진짜 그럴 거면 젊음을 허비할 필요가 있나 싶다. 다 좋은 시절 가족들을 위해 희생과 봉사만 하고, 다 늙어 혼자서 외롭고,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기엔 내 가치가 그거밖에 안 되는 것은 분명 아닐 텐데 말이다. 



 위자료 청구 소송을 진행하며 나는 더욱더 아프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소송을 돈에 환장해서 하는 짓이라고 표현하던데, 돈에 환장해서 받기에는 진짜 쥐꼬리만 하다. 잘못했다가는 명예훼손, 스토킹, 협박죄 등 반대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오히려 상간녀에게 돈을 갖다 바쳐야 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참고, 형사도 아닌 민사로 벌을 줄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나도 현재 진행 중인데, 이것은 이 외도라는 아픔을 끝없이 복기하게 하기 때문에 소송이 진행되면서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원고인 나 자신이라는 아이러니 한 소송이다. 억만금을 준다 하니 들 현재 내 마음이 치료될 거 같지는 않지만, 의사 선생님께서는 시간이 지나며 약을 계속 복용하고, 치료하다 보면 안정기가 오기는 온다니까.... 우선 이만큼 아프지 않을 날까지만이라도 견뎌봐야겠다. 

누군가에게 간절한 내일이라 했는데, 내일이 오는 일이 이토록 고통스럽다니. 소송 관련 법정에 설 일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차가워진 밤바람만큼이나 내 마음이 더 추워진다. 견뎌내자.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견뎌내서 이겨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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