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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 Sep 22. 2023

06_사랑이라 착각하지 마세요.

불륜은 더러운 환상일 뿐.

  남편과 외도를 한 상간녀를 만났다. 드라마에서처럼 표독스럽거나, 혹은 미인이 아니라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연예인 수준은 아니어도 나보다는 훨씬 예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전투력이 상실될 만큼 못생겼다. 태어나서 내가 여자를 보고, 대놓고 못생겼다고 말해본 것도 처음이다. 물론, 대상이 상간녀라 그랬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전혀 아니다. 아무리 내 안의 이성을 온통 끄집어내서 객관화하면 할수록 와.... 정말로 더럽게 못생겼다. 진짜 어디서 굴러 떨어져 찌그러진 호박도 저거보다는 예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는 삼자대면을 통해 누가 거짓인가를 확인하고, 만약이라도 내가 우려했던 일이 있었다면 위약벌을 넣은 각서를 받으려고 작정하고 남편이라는 작자와 그 상간녀와 오밤중에 삼자대면을 했다. 의욕에 차 전의로 불태우며 위약벌 각서를 작성하던 나는 온데간데없었다. 앞에서 얘기했던 드라마에서처럼 상간녀의 뺨을 날리지도 못했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며 드잡이도 못했다. 욕도 한 마디 나오지 않았다. 

그냥 너어무 못생겨서 상실된 전의와 함께. 정말 저렇게 못생겨도 (불륜상대로) 가능하다면 고이 보내드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또다시 눈물만 줄줄 흐른다. 비참하다. 

저렇게 못생긴 여자와 한번 놀아보려고, 20년 된 가정을 버리고, 가정을 위해 무던히도 애쓴 부인과 건강하고 착한 아이들을 버렸단 말인가. 

내가 알던 남편이란 작자가 그런 인간쓰레기였나,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앉아 이런 우스운 삼자대면을 만들었나 후회스러웠다. 그 순간만큼은 무엇이 진실인 것이 중요하지 않았던 거 같다. 저 못생긴 여자가 진짜 상간녀여도 상관없고, 아니고 그냥 시시덕거리고 농담 따먹기를 하던 상대여도 상관없었다. 그냥 제발 저 못생긴 여자를 내 눈앞에서 치우고, 내 옆에 남편이란 작자도 치우고 싶었다. 빨리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너무 멀리 와있었다.

 둘 다 아무 일도 없었다 했다. 만난 적도 없고, 따로 얼굴 본 적도 없다 했다. 어차피 그렇던 아니던 증거가 없다. 그냥 촉 좋은 나의 촉을 확인해보고 싶어서 만났는데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머리가 마비된 거 같았다. 


 우리가 중요한 순간에 잊게 되는 것은, 이런 극한 상황 속에서 남의 일이라면 객관적이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생각을 해낼 수 있지만 그것이 내 문제일 경우에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릴만한 이성과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나는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너무 멀리 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돌아갈 수없을 것만 같이 너무나 먼 길을 온 것이다. 우리 집에서 상간녀 집은 두어 시간쯤 걸린다. 차가 안 밀려도 한 시간 반은 훨씬 넘게 걸리는 먼 거리다. 내가 뭐 하러 이 먼 거리까지 이 여자의 저 못생긴 얼굴을 보러 왔을까, 현타만 가득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잘 모르겠다.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와 살 수 있냐는 질문들에 한 번도 가능할 거라 생각해보지 못했다. 결혼생활에서는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했었는데, 내가 겪어보며 알게 되었다. 사랑, 믿음, 소망 중 제일은 사랑이 아니라 믿음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되돌릴 수가 있다. 다들 자주 비유하는 깨진 그릇으로 보자면 사랑이 무너진다면 금이 간 그릇 정도. 불안은 하지만, 잘 아끼면 어디가 더 이상 깨지거나 금이 가진 않는 수 있다. 소망은 이가 나간 그릇쯤. 쓰는데 불편할지는 몰라도 새것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쓸 수는 있다는 것. 

 그러나, 믿음이 깨진다는 것은? 그릇 자체가 깨어진 것과 같다. 불륜을 저지르는 일은 상대배우자를 죽이는 살인 행위와 같다는 표현을 한다. 그것은 당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이다. 대게 불륜은 도파민의 쾌락적 중독으로 인해 강렬한 쾌감을 주기 때문에 바람을 안 피운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피운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만약, 주식으로 전재산을 날린 남편과 하룻밤의 딱 한 번의 외도를 저지른 남편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주식으로 전재산을 날린 남편을 택할 것이다. 적어도 돈이라는 것은 다시 벌 수 있고,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지만, 외도라는 상처와 없어진 믿음은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 타임머신이 진짜 생긴다면, 나는 외도를 알기 전의 나로 돌아갈 것이다. 적어도 모르는 게 약이라는 것은 이번에 분명히 배웠다. 

알면 바로 이혼하기 위해 알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했지만, 알고도 당장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것이 힘들다. 혹자들은 경제적인 이유나 아이들을 위한다는 이유가 핑계라고들 하는데 정말 사람일이라는 것은 장담할 수가 없다. 나도 이런 일을 겪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가정을 깬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나 자신이 정신과 약 없이는 하루도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데도, 당장 가정을 정리할 결심을 굳건히 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전에는 상상도 못 해보았다. 


 지금의 나는, 아침 다르고 점심이 다르다. 저녁이 다르고 한밤중이 다르다. 정신이 불안정하여,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기억이 힘들다. 그렇다고 내가 누구인지 잊고, 우리 집이 어딘가를 잊어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전처럼 집중해서 독서하기를 하거나, 지금 내가 뭘 하려고 했지? 하는 생각을 자주 해야만 한다. 나의 정신 건강 상태가 정말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다. 정신과 원장님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시지만,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겪는 일들이 과연 나아지기는 하는 것인지. 아이들이 있으니 우선 약을 먹더라도 견뎌지는 만큼 견디고 있다. 올해는 유난히 힘들다. 사사건건 시비가 붙고, 하더니 결국 믿었던 남편에게 배신도 당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하지만, 우선은 할 수 있는 것을 해본다. 그것이 어떻게 결정 날지, 어떻게 정리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모든 것들이 정리되고, 결정 날 때쯤 이 이야기의 끝을 말할 수 있을 텐데 나도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태이다. 


 오늘 밤도 급하게 처방받은 약 여러 알을 입에 털어 넣고, 잠이 들려 애써본다.

우선은 죽지 않고 살아야만 마지막을 알 수 있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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