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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유 Oct 17. 2024

육개장

"웬일로 육개장이야. 컨디션도 안 좋으면서."

부글부글 갖가지 재료들을 넣고 정성스럽게 육개장을 끓이는 엄마에게 내가 물었다.


"응, 그냥 내가 먹고 싶어서. 뭐 부침개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이정도야 뭐."


엄마가 건넨 뜨끈뜨끈하고 빠알간 국물이 담긴 넓은 국그릇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문득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먹었던 육개장이 떠올랐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정말 이상하다. 분명 방에 들어가기 전까지 복도에는 온통 환한 전구 불빛들이 가득한데, 이상하게 굉장히 어두운 느낌이 든다.

그리고 무언가가 텅 비고 무언가가 떠난 것 같은. 어딘가가 결여되어 있는 것만 같은. 이상하리만치 공허한 느낌이 든다.

어색한 초상화와 그 앞에서 풍겨오는 향냄새에는 슬픔이 가득 배어 있다.

검은 양복과 검은 정장을 입은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참 낯설었다. 천방지축인 조그마한 아이들마저 검은 티셔츠를 입고 있다. 당시 어렸던 나는, 뭘 모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육개장 그릇을 받아들였다. 육개장은 따뜻하고 맛있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자신의 옥수수 아이스크림마저 먹으라고 손녀를 위해 내어주신 당신을. 알츠하이머라는, 머리에 텅 빈 구멍을 만드는 무서운 병 때문에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고 자주 다시 물어보곤 하셨던 당신의 모습을 이젠 더 이상 보게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당신이 떠나가고 난 후에 그때의 소녀는 자라서 지금 이렇게 아가씨가 되어 있고. 이 아가씨는 무언가 비밀번호를 설정해야 할 때 자주 9012를 쓴다. 당신의 생일과,당신과 함께했던 몇 없는 소중한 기억을 추억하기 위해서이다.

한량없는 은혜를 자식에게 베푸시고도 손자와 손녀에게까지 물려 주셨던 당신을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가만히 생각에 잠겨 따뜻한 육개장을 뒤적거리다 나는, 왜 장례식장에선 육개장을 먹는가, 이제야 깨달았다. 숙주나물, 토란 나물, 대파, 소고기. 갖가지 영양소가 고루 갖춰진 재료들이 가득 담긴 이 육개장 한 그릇에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슬픔에 잠겨 목이 메고, 폭포수처럼 쏟아 내린 눈물에 지쳐 기운이 빠진 사람을 위한 따스함이, 배려가 숨겨져 있었다.

밥 위에 콩나물과 숙주나물, 갖가지 재료들과 함께 빠알간 국물을 부어 비비며 생각했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과 아픔에 잠겨있는 사람들에게, 육개장 한 그릇 같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투적인 위로를 건네지 않아도. 따뜻한 온기를 전할 수 있는, 그런,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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