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까마귀를 만날 때

나의 그릇의 크기가 작다면

by Summer Breeze

검은 깃털에 ‘까악 까악’ 울음소리.

공포영화에서 항상 죽음을 뜻해서 오싹하게 느껴지는 새.

‘까마귀가 울면 재수 없다’,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등의 속설까지 있을 정도로 까마귀는 대표적인 흉조로 여겨진다.

하지만 까마귀 입장에선 억울하다. 도구를 쓸 정도로 지능이 높은 편이고 부모를 보살피는 새로도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쁜 줄 알아서 미워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문제는 회사를 다닐 때도 가끔 까마귀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다.


피할 수 없이 여러 가지 이유로 함께 일하기 싫어지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리고 그 이유가 객관적이지 않을 때도 있다.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인정하기 싫어지지만 사실이 아님을 부정하기엔 양심에 찔린다.

한번 엇나가게 된 사람들은 좋은 점들보다는 나쁜 점들만 보이게 되고 미워하는 감정은 걷잡을 수 없게 더 커진다. 그리곤 행동 하나하나에 그 사람이 싫은 이유 아니, 싫어해야 하는 이유들을 계속 찾게 된다.

하지만 막상 그들과 깊게 오랜 시간 대화를 하다 보면 이해되기 시작한다. 내가 나쁘다고 생각했던 단점들이 ‘그럴 수 있지’란 생각으로 점점 변화하게 되고 미움은 사그라들고 미안한 감정이 생긴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자면 인간은 ‘나’보다 ‘남’을 더 나쁘게 볼 수밖에 없도록 태어났다. ‘관찰자-행위자 편향’이란 말로 설명할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의 행동의 원인을 설명할 때 관찰자는 행위자의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행위자는 상황적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처럼 똑같은 행동이라도 내가 하면 상황 탓이고 남이 그러면 남 탓이라는 것이다. 이런 편향이 생기는 이유는 보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인데 행위자 입장에서는 상황이 더 잘 보이지만 관찰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유를 추론하는 것에도 차이가 생긴다고 한다.


이런 타고난 한계를 극복하고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들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 종교 교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고 위대한 사람들 대부분도 수련 끝에 달성한 걸 보면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난 소시민이라서 이런 진리를 실천하기엔 그릇이 터무니없이 작다. 작은 그릇에 긍정 어린 시선까지 담기엔 버거워서 미움만 채웠다. 미움이 곧 미안함으로 변할 텐데 눈앞의 상황만 보고 성급하게 판단을 내려버렸다.


그릇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뚝딱 당장 새롭게 만들어 낼 수도 없고 그릇을 키우는 수련 시간도 오래 걸린다. 아마 할머니가 되고 세상의 지혜를 어느 정도 깨달아야 조금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릇에 구멍을 뚫어보려고 한다. 부정적인 시선이 100% 채워지지 않도록, 욕조에 물 빼듯 흘려버리고 따뜻한 시선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보려고 한다.


찰랑찰랑 미움이 꽉 차오를 때 인지만 하고 버릴 준비만 하면 되니까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보단 쉽겠지.



언젠가는 미워하지 않고 끌어안는 멋진 어른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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