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
예뻐 보이지만은 않은 그 단어가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하는 유일한 단어가 될 때, 이렇게 사는 게 내가 원했던 것인가 자문하게 된다. 물론 속으로만...
사실 경단녀가 되기 위한 조건은 까다롭다.
일단 여자로 태어나야 한다. 그리고 초, 중, 고를 성실하게 나와서 또는 대학까지, 또는 대학원까지, 또는 박사학위까지 얻고 나서 직업을 얻어야 한다. 그때부터 경력이라고 할만한 것이 생기지만, 사실 4대 보험에 그럴듯한 직업 아니면 어디 가서 경력이라고 말하기도 뭐 하고, 또 1년도 안 한 일이라면 경력으로 쳐주지도 않는 것 같긴 하다. 어쨌든 이렇게든 저렇게든 경력이 생긴다. 아직 안 끝났다. 사직이든 퇴직이든 해야 했다. 그 사유는 다양할 것이다. 적성에 맞지 않아서, 회사에서 나를 탐탁지 않아 해서, 다른 직업으로 가기 위해서, 그리고 대개는 결혼해서, 아이를 가져서, 남편을 따라 어딘가로 가야 해서... 이렇게 많은 단계를 거쳐야 드디어 경단녀라고 불릴 수 있는 거다. 함부로 가질 수 있는 타이틀이 아니란 말이다.
간단히 설명해서 그렇지 자세히 들어가 보면 더 하다. 우리가 12년 동안 공부한다고 책상에 앉아있었던 그 고통스러운 시간, 수능 보겠다고 한 겨울에도 학교에 갔던 시간, 재수나 삼수, 또는 면접... 스타킹은 왜 이렇게 잘 찢어지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 사랑에 미쳤었나? 그게 뭐라고... 이제 와서 제정신이 드는 것 같지만 무를 수도 없는 일이다. 눈앞에 아이를 뱃속으로 다시 집어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이가 뱃속으로 나온 뒤에 알게 됐다. 하여간 인생에 치열한 전투란 전투는 다 거치고 나서 끝내, 생각지도 못한 나이에 퇴사. 누가 자른 거면 억울하기라도 하겠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결정한 퇴사다.
아니다. 지금부터 마음만 먹으면 다시 일할 수 있다. 누구나 결혼과 출산을 기점으로 일을 그만둔다 하니 힘을 내본다. 내가 문제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버린 것 빼면. 이런 꼴을 보면 젊은 애들이 더 결혼 안 하고, 출산은 더더 안 할 것 같으니 비밀로 할까 보다. 몇 년의 갭이 있긴 하지만, 그 부분은 감당할 생각이 있다. 세상이 나를 다시 받아주기만 한다면...
인터넷을 켜고, 검색한다. "경단녀 재취업" "경단녀 자격증"...
하나같이 눈에 차지 않는 내용들 뿐이다. 12년 정규과정을 성실히 마치고, 대학이란 곳까지 나온 사람에게는 도대체 가당찮은 것뿐이다. 이런 게 요즘말로 자의식 과잉인가? 그나마 관심이 가는 몇 개의 자리들도 갑자기 영어 공부를 해야 하거나, 손재주가 좋아야 하거나, 운동이라도 잘해야 하는 것인데...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12년간 성실히 받아온 평범한 나는 공부에도 그다지 재능이 없긴 하지만 다른 것에는 더 재능이 없다. 내 눈이 높은 걸까? 경단녀를 위한 취업 시장이 형편없는 걸까? 우리나라는 이런 고급인재들을 왜 방치하고 있는 건지에 대해 국가척 차원에서 논의를 하고 싶을 지경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 좋을까? 고민이 된다. 그러나... 일단 밥 해야지. 근데 내가 밥까지 해야 해? 짜증이 올라온다. 일단 오늘은 시켜 먹고 생각해 봐야겠다.